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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기름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밤새 골목을 메운다. 한로를 지나 초겨울의 문턱에 들어가는가 싶다. 10일 아침 기온이 3도다. 살짝 내리는 빗방울이 마치 싸라기눈처럼 보이는 칼칼하고 맛깔나게, 그리고 알싸하니 추운 아침이다.

여기는 봉화군 춘양면에서도 아주 깊은 산골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자연금이 나왔던 곳으로 최대 규모의 금생산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1970년대의 화려했던 영화는 과거가 되고 지금은 빈 가옥들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송이 버섯을 키우는 영자씨
 
춘양면 깊은 골짜기에 열린 다래다. 영자씨가 사는 마을이기도 하다.
 춘양면 깊은 골짜기에 열린 다래다. 영자씨가 사는 마을이기도 하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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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디 고운 손도 물에 닳아 거칠어진다더니 환갑이 넘은 우리 친절한 영자씨는 야생화와 버섯을 키운다. 산에 지천인 다래를 구경 한번 해 본 적 없는 나를 위해 우리 영자씨가 번개같이 달려가 한달음에 다래를 따다 준다. 대추처럼 생긴 것이 파란데 맛은 기가 막히게 달콤하다.

영자씨는 평생을 춘양서 살아온 마을지기다. 깊은 산 맑은 공기만큼이나 그녀의 미소는 해맑다.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에 영자씨는 난생 처음 들어본 쌍화유자차를 건넨다. 쌍화유자는 영자씨가 산에서 캔 약초를 쪄서 유자 안에 넣어 얼리고 말리고 하는 과정을 아홉 번 이상 거쳐 만든 것이다.
영자씨가 따다 준 열매다. 정말 달콤하고 기분좋은 맛이다.
▲ 다래 열매 영자씨가 따다 준 열매다. 정말 달콤하고 기분좋은 맛이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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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씨가 작년 겨울 직접 캔 약초로 만들어 쟁여 놓은 쌍화유자다. 주먹만큼 큰 유자가 찻잔에 들어갈만큼 쪼그라들었지만 오래 오래 달여서 마실 수 있다.
▲ 영자씨의 쌍화유자 영자씨가 작년 겨울 직접 캔 약초로 만들어 쟁여 놓은 쌍화유자다. 주먹만큼 큰 유자가 찻잔에 들어갈만큼 쪼그라들었지만 오래 오래 달여서 마실 수 있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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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영자씨는 추운 날씨에는 쌍화유자만한 것이 없다며 직접 만든 쌍화유자를 두 알이나 준다. 자두 알만큼 쪼그라들었지만 쌍화유자 하나면 2리터들이 한주전자를 끓여 마실 수 있다. 산에서 약초를 따서 쌍화유자로 만들어지기까지 영자씨의 손이 수천 번은 족히 닿았을 법하다. 귀하디 귀한 우리 영자씨의 쌍화유자다.

가을 내내 표고 따랴 송이버섯 하랴 분주했을 그녀의 미소 위로 오후의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미소 뒤로 보이는 주름살이 내용증명서라도 되듯 우리 영자씨는 올 가을 송이를 지키느라 많이 힘들었단다.

"고단해도 집에 돌아와 막 산에서 뜯은 송이에 묻은 흙과 갈비(솔잎)를 털어서 소금 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피로가 가셔. 그 향기가 그런 묘한 중독성이 있어. 그 맛에 송이를 따는 거지."

존재하기 위해 많은 힘과 에너지가 든다. 매일 일해도 표가 나지 않지만 놀면 금세 태가 난다. 그러니 끊임없이 존재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멈추면 되는 것이 없다. 송이의 향기와 맛도 끝내주지만 실상은 수고와 땀방울의 대가이기에 그 풍미가 일품일 것이리라.

송이버섯은 봉화뿐 아니라 울진, 영덕, 양양, 장수 등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다. 생산량은 타 지역에 못 미치지만 단연 품질과 향은 봉화가 으뜸이다. 해발고도가 높고 일교차가 큰 덕에 버섯의 육질이 매우 단단하고 향기가 강하다.

봉화 송이 중에서도 춘양 송이는 그 향기가 더욱 깊어 1990년대 만해도 봉화군 송이 물량의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산지였으나, 이제는 기후변화 등으로 춘양의 송이 구경이 쉽지가 않다.

신라시대 성덕왕 시절에는 왕에게 송이를 진상했고, 조선시대에는 명나라 사신에게 송이를 선사하기도 했으며 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송이 2톤을 선물하기도 했을만큼 송이는 매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1996년까지는 전량 수출품으로 고시되어 외화획득의 일등공신이었고, 덕분에 내수는 공식적으로 불법이라 약초상이나 수집상 아니고서는 일반 국민들은 구경조차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인기품목인 송이버섯, 품질만 좋다면야 백지수표를 써내어도 좋을 그런 송이였다.

올해 송이버섯은 키로당 100만 원이 넘어도 사기 힘들었다. 인공재배가 안 되니 희소성이 있는 것도 있겠으나 송이버섯의 맛보다 그 깊은 솔향이 너무 매혹적이니 등급 외의 송이라도 줄을 서서 사는 것일 게다.

송이버섯 이야기 할 때면 등장하는 가족들

철이 바뀌고 찬바람이 불면 춘양 사람들은 특히나 송이호박국을 끓여먹는다. 송이버섯이 호박이나 박과 찰떡궁합이라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호박과 송이로만 담백한 국을 끓인다.

가을걷이 막바지라지만 가을걷이 할 것도 없는 내가 덩달아 몸살이 난다. 윗동네 숙이씨가 송이호박국이라며 한 그릇 가져왔다.
  
"말하기 참 뭐하지만... 그렇게 먹고 싶었던 송이를 먹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네요. 이 버섯이 무어라고... 사느라고 바둥대다 보니 송이 한 번 못 먹어봤어요. 어릴 적 엄마가 끓여주신 송이호박국이 서울살이할 때 늘 그리웠지요. 마음속으로 언제고 꼭 다시 한 번 먹어봤으면 했지요. 그런데 웬걸요. 아는 지인이 송이를 먹어보라고 나눠주지 뭐예요? 소고기 사다 가족들이랑 같이 구워 먹었는데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없었어요."

순간 마음이 찡했다.

"요맘때면 엄마가 항상 송이호박국을 끓여줬어요. 우리 집은 형제가 8남매라 10명이 먹을 국을 엄마가 끓이시는데... 형제가 많아 두 그릇은 먹을 수가 없었어요. 한 그릇만 더 먹었으면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죠."

아무리 비싼 송이라지만 1킬로그램도 아니고 버섯 한두 개라도 사려면 살 수 있었을 텐데 그 그리움을 수십 년 동안이나 묻어놓고 있었다는 말에 팍팍한 서울살이 삶의 무게를 잠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숙이씨에게 송이버섯을 선물한 사람은 참으로 복 받을 일을 한 것 같다. 숙이씨가 나눠 준 송잇국 한 그릇은 그러고 보면 숙이씨가 수십 년간 그리워했던 마음의 양식인 것이다.

춘양면에는 송이버섯 수집상들이 여럿 있다. 아버지 대를 이어 송이버섯 수집을 하는 우리 동네 태백물산 사장님은 50년 가까이 송이를 접하고 살아오셨다.

"1980년대만 해도 집에서 온 가족이 송이를 손질할 때는 구둣솔(한 번도 안 쓴)로 버섯 밑동에 묻은 흙과 먼지를 박박 문질렀어요. 그래도 송이에 흠집 하나 안 갔어요. 얼마나 단단했는지 몰라요. 향도 그렇고요. 지금은 기후가 변해서 송이가 옛날 같지 않아요. 그때만 해도 송이를 따면 솔향이 대문 바깥까지 났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향이 강하지 않아요. 오히려 능이가 송이보다 향이 더 강한 걸요.

춘양 사람들은 산지다보니 그래도 다들 송이 구경을 하고 살았어요. 외화벌이를 위해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던 시절이지만 등급 외나 파지들은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고 또 산에 가서 따기도 했으니까요. 명절이나 집에 귀한 손님이 오면 소고기 한 근 끊어와서 갖다 주고 송이 몇 개씩 얻어 가시는 어르신들도 있었죠.

춘양 사람들에게는 송이가 고향의 음식이지요. 온 가족이 두루 앉아서 송이 한두 가닥 죽죽 찢어 넣은 호박국이라도 훌훌 마시며 온기를 느끼잖아요. 
지금 이렇게 송이를 흔하게 만지며 살지만, 어릴 적 어머니가 찢어주신 송이버섯을 고추장에 찍어먹던 그 맛이 너무 그리워요. 지금은 그런 송이 구경하기가 힘들거든요. 향기가 없어요."

한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던 '영혼을 위한 치킨수프'가 문득 떠오른다. 치킨수프는 닭죽인데 그 둘이 뭐가 다른고? 치킨수프하면 뭔가 근사해보이고, 닭죽하면 백숙이 떠오른다. 송이버섯도 그렇지 않나 싶다.

올해 작황이 좋지 않아 값이 더 뛰어버린 송이버섯도 닭죽처럼 맛과 영양도 좋지만, 송이는 치킨수프처럼 춘양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 속에 사랑으로 자리 잡은 영혼의 양식인 듯하다.

친절한 영자씨도, 숙이씨도, 그리고 태백물산 사장님도 송이버섯 이야기를 할 때면 부모님, 형제, 그리고 이웃이 항상 등장한다. 그렇다. 귀하디귀한 것은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는 것이다.

그 나눔이 있었기에 춘양면 사람들은 송이를 맛볼 수 있었고, 따뜻한 추억을 오늘에도 기억하고 현실에 복기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배불리 송이버섯을 먹지 못하여도 가슴속 깊이 자리한 송이의 향기와 맛이 영혼을 위한 치킨수프가 되어 다시금 새 힘이 돋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봉화 춘양에서 영혼을 위한 치킨수프 하나를 발견했다. 추위에 몸은 움츠러들지만 함께할 수 있는, 하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추위와 상관없으니 말이다. 오늘 저녁은 영자씨가 나눠준 송이로 끓인 호박국이 할매들의 밥상에 놓이리라.

아래는 사진으로 담은 송이호박국 만드는 법이다.
 
송이호박국을 끓일 재료를 준비했다. 호박, 소금, 송이. 끝이다
▲ 송이호박국 준비 송이호박국을 끓일 재료를 준비했다. 호박, 소금, 송이. 끝이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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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에 살짝 칼집을 낸 다음 손으로 두 쪽으로 쪼갠다.
▲ 송이호박국 준비 송이에 살짝 칼집을 낸 다음 손으로 두 쪽으로 쪼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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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를 잘게 손으로 찢는다. 육질이 참 단단해서 토종닭 고기를 뜯는 것처럼 잘게 결따라 찢어진다. 솔향이 솔솔 베어난다.
▲ 송이호박국 준비 송이를 잘게 손으로 찢는다. 육질이 참 단단해서 토종닭 고기를 뜯는 것처럼 잘게 결따라 찢어진다. 솔향이 솔솔 베어난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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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송이호박국이 완성되었다. 담백하고 맑은 송잇국이다. 이 송잇국에 대한 그리움이 수십 년이나 가슴속에 남아있다니 송이는 역시 사랑이고 그리움이다.
▲ 완성된 송이호박국 드디어 송이호박국이 완성되었다. 담백하고 맑은 송잇국이다. 이 송잇국에 대한 그리움이 수십 년이나 가슴속에 남아있다니 송이는 역시 사랑이고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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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영자씨는 환갑을 넘은 범띠입니다. 동안인 영자씨는 민증을 보여주며 환갑이 되었다고 환하게 웃습니다. 그러라고 환갑인가 봅니다. 젊은 영자씨 기분좋으라고 '선생님'대신 '영자씨'라고 불러드리기로 했습니다. 송이버섯 수확량이 올해는 많지 않고 출하 기간도 짧아 더 구경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송이가 주는 풍미도 일품이지만 송이와 함께했던 또는 함께할 수 있는 사랑하는 이들로 인해 그 향기는 잊혀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닭죽이 아니라 치킨수프처럼요. 내년 가을엔 송이호박수프를 끓여 함께 먹을까요? 이곳 춘양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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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공간구성을 위해 어떠한 경험과 감성이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하는지 연구해왔습니다. 삶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것이 저의 과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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