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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글씨 보고 계시죠? 그림을 보세요."

모임에서 그림책을 읽어 주는데, 다들 글씨를 보면서 눈으로 따라 읽는다. 글 읽기가 익숙한 성인 독자들이 그림책을 볼 때 흔히 하는 실수가 그림은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하나를 이루면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림책에서 그림은 글만큼, 때로는 글보다 더 중요하다.

강의를 몇 번 해보니, 가장 반응이 좋은 것도 이 '그림 읽기'다. 일단 당장 아이에게 써먹을 수 있으니 심 봉사가 눈을 뜬 것처럼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 들 테다(나도 그랬다). 그림 읽기가 익숙해지면 아이가 글 없는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와도 두렵지 않다.

그림책을 잘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여러 번 읽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글씨만 보면서 휘리릭 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글과 함께 그림을 꼼꼼히 읽어야 한다. 그래서 처음 성인 독자와 그림책을 읽을 땐 일부러 한 장면에 1분 가량 멈춰있는 연습을 한다. 그렇게라도 그림 속에서 뭔가를 발견하게 하려는 이유에서다.

처음 '그림 읽기'를 시키면 성인 독자들은 대부분 당황한다. 첫 번째는 어떤 걸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그리고 바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뒤따른다. 쓸데없는 걸 읽어내고 이상하게 해석할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나도 그랬다).

그림책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이런 걱정은 자연스레 없어진다. 글을 나침반 삼아 그림을 본다. 10번 읽으면 읽을 때마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어떤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감이 딱 온다. 아이들은 이 비밀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책장을 덮자마자 '또또'를 외친다. 그림 읽기는 아이들이 훨씬 잘한다. '또또'라는 무기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그림책 페어런팅>에서 저자는 '그림 읽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그림을 보며 그 안에 담긴 정보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로 풀어서 생각하는 '언어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그림 역시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읽어내야 하기에 '그림 읽기'라고 말하지요.

무엇인가를 분석하면서 대상을 보면 얻는 것은 많지만 재미는 떨어지게 마련인데, 그림책은 그 반대다. 표지와 면지에 왜 작가가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앞과 뒤의 장면에서 달라진 것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으면서 보면 그림책이 훨씬 더 재미있다.

하지만 아이와 읽을 때는 이런 분석이 때론 독이 되기도 한다. 한번은 유리 슐레비츠의 <새벽>을 보며 장면이 변화되는 과정을 설명하자 한 참여자가 당장 아이와 읽어보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나는 서둘러 당부했다.

"제발 부탁인데, 그림책을 설명하지 마세요."

처음 그림책 분석하기를 배운 엄마들은 아이에게 그림책을 설명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해진다. '이 그림이 왜 이렇게 점점 커지는지 알아? 그건 말이지.'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나도 그랬다). 이왕 읽었으니 최대한의 것을 뽑아내고(?) 싶은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제발 참아달라. 그저 아이와 그림책을 함께 읽고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달라. 때로는 그와 관련된 놀이를 해도 좋다. 아이에게 그림책 읽기는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

나는 왜 그림책을 공부하는가

내가 하고 있는 그림책 공부 모임은 이론서를 읽으며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대해 알아가는 모임이다. 좋은 그림책을 가져와서 같이 읽고 감상을 나누는 북클럽이 아니다. 공부하는 모임이니 스터디에 가깝다. 나는 왜 이런 모임을 열었을까?

좋은 그림책을 소개하는 채널은 무수히 많다. 출판사와 그림책 연구자는 물론 그림책 작가와 그림책으로 수업하는 교사, 그림책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일을 벌이는 활동가까지 너도 나도 그림책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렇게 잡아다 주는 물고기는 때론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할지 몰라 대충 익혀 먹다 배탈이 날 수도 있다. 그리곤 "역시 물고기는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물론 남이 잡아온 물고기를 열심히 먹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참맛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 내가 직접 잡은 물고기만 하랴. 

그림책 공부는 그림책이란 물고기를 맛있게 요리하는 팁을 준다. 그림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이코노텍스트가 무엇인지, 상호텍스트성이나 메타픽션과 같은 그림책의 장르적 특징을 알고 나면 그림책을 보는 눈이 훨씬 넓어진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그림책을 공부하는가. 그림책을 그냥 보면 되지 굳이 그림책과 관련된 이론을 공부하는 이유가 뭘까. 이걸로 시험을 보거나 새로 학위를 받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일단 어려운 그림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난해하고 어둡고 두꺼운 그림책은 선호하지 않는다. 세상에 그런 책들은 너무 많다. 그런데 굳이 그림책까지 그래야 할까 싶다.

실험적인 시도로 장르의 지경을 넓히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림책은 쉽고 금방 읽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한, 우리가 흔히 그림책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때 기대하는 그것에 부응하는 것이 먼저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 그림책은 이렇게 읽는 게 맞다는 정답을 찾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읽기를 하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시선을 통해 나의 생각을 점검하고 다시 바라보기 위해 공부한다.

무엇보다 그림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다. 작가의 세계관에 공감하고 그림책이 담고 있는 세상을 더 잘 만끽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도 이 '맛'을 알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모임을 열었다.
 
아이와 함께, 혼자서도 자주 들르는 작은 도서관
▲ 도서관 아이와 함께, 혼자서도 자주 들르는 작은 도서관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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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사람들이 종종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이건 거의 재능기부 아닌가요?"

사실 어떨 땐 내가 모임을 하는 건지 강의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혼자 떠들다 집에 갈 때도 있다. 

"모임 운영하는 거 힘들지 않나요?"

모임을 하면서 사람들을 챙기고 일정을 조율하고 이 도서관 저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관련된 책들을 빌리고, 모임마다 몇십 권씩 그림책을 들고 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나를 보며 안쓰러운 얼굴로 묻기도 한다.

물론 쉽지 않다. 뚜벅이로 무거운 그림책을 들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헉헉 댈 땐 '왜 사서 고생을 하나.' 멍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임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이 모임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나라는 것이다.

그림책은 나를 위로한다. 때론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혼도 낸다. 이렇게 사는 건 어떤지 제안한다. 그림책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 모임을 통해 나는 새삼 느끼고 있다. 애쓰는 만큼 제일 많이 배우는 것도 나다.

다른 수혜자는 어린 딸이다. 아이는 엄마와 매번 새로운 책들을 읽는 즐거움을 얻는다. 귀찮아서 그 흔한 문센(문화센터) 한번 안 가본 나는 매일 꾸준하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이상적인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다. 덕분에 아이는 하원할 때마다 "엄마, 도서관 가자"라며 손을 잡아끄는 습관이 생겼다. 태생적으로 타율적 인간인 내가 자발적 시민 모임을 열고 나를 꽁꽁 묶어 놓은 건 다 뜻이 있다.

그림책의 매력을 먼저 발견한 독자로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모든 교육이 '공부를 잘하기 위한 수단'으로 깔때기 되는 세상에서 그림책만은 오롯이 재미있는 세계로 남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이가 그림책과 함께 맘껏 웃고 상상하고 모험하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그림책을 더 재미있게 읽어주는(읽는) 엄마(어른)가 되고 싶다. 내가 그림책을 '공부'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그림책 페어런팅 - 1-7세 발달심리를 이해하기 위한 그림책 독서

김세실 (지은이), 한길사(2021)


태그:#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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