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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새로운 길에 섰습니다. 늘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고, 이제 온전히 '내 자신'을 향한 길을 향해 가보려 합니다. [기자말]
살아가는 목숨은 다같아/(중략)
사람도 나무도 새도 벌레도/ 똑같이 숨쉬고 꿈꾼다. 

<우리말 글쓰기 사전>의 최종규 작가가 쓴 시의 일부분이다. 올해는 춥다더니 10월 중순부터 시작된 찬 바람에 단풍도 들기도 전에 잎이 떨궈질 판이다.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가을을 맞이하는 나무들을 '묵언수행'이라고 했다. 붉어지고 노래지다가 결국은 잎을 떨구고 긴긴 겨울을 견뎌야 하는 나무들에게 이보다 더 '절묘한' 정의가 어디 있을까 싶다.

최종규씨의 시처럼 사람도 나무도 새도 벌레도 똑같이 숨쉬고 꿈꾸지만, 또한 그러기에 저마다 짊어지고 견뎌내야 할 삶이 있는 듯하다.
 
가을 풍경
 가을 풍경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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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방송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제는 기사님이 틀어주는 방송을 곁다리로 듣는 처지이지만, 그 전에는 아침이면 클래식 프로그램을 들었었다. 언제나 위로와 힐링의 '말씀'으로 넘쳐나던 시간,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변함없이 정감어린 목소리를 들려주는게 쉽기만 할까. 매일 듣노라면 때로는 피곤하고 때로는 묵직한 목소리의 감정이 미묘하게 전해지곤 했다. 저마다 사람들이 짊어진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라고 말하니 홀가분

'저녁은 아저씨랑 먹어?'

일 가르쳐주던 언니가 넌즈시 물어보았다. 늙수그레한 알바생의 신상이 궁금도 할 터이다. '저 혼자예요.' 덤덤하게 답해주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되었을 때, 어른들은 아버지가 외국에 계신다고 하라고 했었다.

나는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했다. '아버지는 외국에 계셔'라고 내가 말을 했을 때 친구의 빤한 표정에 속이 켕겼다. 그래도 차마 내 입으로 '우리 부모님 이혼했어'라고 말할 자신은 없었다.

그런 '유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가정'을, '가족'을 부등켜안고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 그런데 뭐, 큰 아이가 25살 이후에는 굳이 '부모님'의 존재가 자기 삶에 주요 변수가 아니었다는 마당에, 이 나이에 혼자 좀 살면 어떤가.

'혼자예요', 막상 그렇게 말하고 나니 홀가분했다. 말하고 보면 별 거 아닌 것을, 이 또한 해묵은 숙제를 푼 기분이었다. 작은 빵집에서 '소문'은 빨라 굳이 내가 만나는 이마다 설명하지 않아도 나의 이야기는 빠르게 전해진 듯했다.

그 또한 이제는 연연할 일도 처지도 아니었다. 일하는 곳만이 아니다. 함께 작업을 하고 스터디를 하는 분들과도 내 상황의 변화를 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이리저리 둘러대는 대신 그저 담백하게 '팩트'를 전했다.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어드밴티지'가 되었다. 누군가는 아직 '싱글'이라며 미소를 건넸고, 다른 누군가는 가장의 짐을 나눠져야 하는 처지에 대해 고민을 전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짊어진 모성의 무게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는 말한 적이 없다며 토로했다.

나의 사연이 그 사람들 사이의 허들을 낮춘 것일까. 사람들은 저마다 세상살이의 틀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려고 한다. 하지만 사는 게 어디 시험에 정답 맞추든 그렇게 될 수 있는가 말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학교 다닐 때는 열심히 공부하면 시험 성적이 잘 나왔고, 인생도 그런 줄 알았다. 당시엔 국민학교를 나오고, 중고등학교를 가고, 다시 시험을 봐서 대학교를 갈 수 있듯이 인생도 때가 되면 해야 할 일이 있는 줄 알았고, 시험 공부하듯 열심히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저 사람이 아니면 결혼을 못할 거 같아서 겨우 스물 다섯에 줄행랑치듯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남들 하듯 아이를 낳고, 남들처럼 아이를 키우려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남들처럼 되지 않았다. 두 아이는 제 각각이었고, 남들처럼 키우기에는 애초에 역부족이었다. 부자가 되고 싶었지만 돈이랑은 인연이 없었고,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백년해로를 하려니 했는데 이렇게 됐다. 

마흔에 이혼을 하시고 여든 후반에 돌아가실 때까지 한평생 이혼을 했다는 족쇄로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저어했던 어머니, 그 어머니를 보면서 결심했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이제 홀로 된 내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엄마처럼 살지 않는 게 무엇일까'라고. 

중고등학교 때 시험은 며칠씩 연달아 봤었다. 첫날 생각처럼 성적이 안나왔을 때, 선생님들은 말씀하신다. 지난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내일 시험 준비나 잘 하라고. 아쉽게 틀린 문제, 실수한 문제, 그 문제들이 나를 사로잡고 쉬이 놔주지 않는다. 엄마의 인생는 그런 거 아니었을까.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 자신이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로 인해 연연해 하는 엄마가 나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었다. 

인생의 시험지 푸는 사람들
 
나의 이혼이 그 사람들 사이의 허들을 낮춘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의 이혼이 그 사람들 사이의 허들을 낮춘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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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껄 붙들고 살 때는 내 꺼 밖에 안 보였다. 남들처럼 살겠다며 버둥거리며 살 때는 그저 남들만 하지 못한 부족한 '자존'이 늘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애써 붙들어야 할 내 꺼들이 없으니 애써 포장해야 할 '자존심'도 없다.

맛있는 외식을 시켜줄 남편도 없고, 퇴직 후 놀면 어쩌나 걱정할 남편도 없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외식 한 번 시켜줄까 전전긍긍했고, 가족 모임에 함께 해주지 않아서 서운했는데 이젠 그러고 말 것도 없어진 것이다.

내가 내 알량한 '자존'에서 놓여나니 남들이 보였다. 사람들 모두 저마다 인생의 시험지를 받아든 학생처럼 살아가는 것이 보였다. 제때에 맞춰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그러고 키워놓으니 제때에 맞춰 아이들을 출가시키려고 등등 그 '정답' 맞추기는 끝이 없다. 그러니 늘 애를 쓰며 살고, 맘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 고달프다.
 
해피엔딩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새드 엔딩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불안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애당초 인생이 행복과 불행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

박혜진 작가의 <이제 그것을 보았어>라는 책의 한 문장이다. 나만의 해피엔딩을 향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던 내가 그 활을 내려놓으니, 모두가 자신의 활시위를 당기느라 애를 쓰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경을 필사하며 깨달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하느님이나 예수님이 아니라, 인생사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 '명철'의 지혜란 결국 그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의미를 깨달으라는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불경은 '해탈'과 '내려놓음'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영화 <주디>에서 주디 갈란드로 분한 르네 젤위거는 런던의 마지막 무대에서 말한다.

자신의 노래, <오버더레인보우over the rainbow>처럼 사람들은 늘 꿈꾸는 어떤 곳을 향해 가지만 결국 인생이란 그 걸어가는 여정이 다가 아닐까라고. 모두가 저마다의 길에 서 있다. 나만의 길에만 연연했던 내가 이제 모두가 걸어가는 길을 볼 여유가 생겼다. 우리는 결국 이렇게 인생의 길을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https://brunch.co.kr/@5252-jh)에도 실립니다.


태그:#<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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