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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모임을 시작한 이후 남편과 다투는 빈도가 잦아졌다. 처음에는 나의 사회적 활동에 무한 지지와 응원을 보냈던 남편이었다. 태도가 달라진 건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어느 때처럼 야근을 하고 들어와 집안 꼴을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쉰다. 그도 그럴 것이 분리수거는 넘쳐나고 바닥엔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발에 치인다. 설거지 통과 빨랫바구니는 폭발하기 직전이고 냉장고엔 언제 만들어놓은 건지 모르는 음식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여보, 좀 적당히 하면 안 돼? 가정도 돌보면서 해야지."

평소 같으면 뭐라고 한마디 받아쳤을 텐데, 그날은 내가 봐도 너무 심했다. 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맞아, 내가 너무 심했지."

엄밀히 말해 가정주부 직무유기 사건의 핵심 배후는 그림책 모임이 아니라 책이다. 나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책벌레형... 은 전혀 아니다. 임신 이후 아이가 돌이 되기까지 나를 위해 읽은 성인 책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때문에 남편은 내가 밤에 항상 책을 읽으며 잠들었다는 친정엄마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적 허영심'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런 나에게 가끔씩 책을 폭식하는 시기가 찾아오는데 바로 그분이 온 거다. 모임을 준비하며 이 책 저책 조금씩 읽다가 그분을 건드린 거다. 지적 허영심. 

지적 허영심이 충만한 나는 예전부터 목침으로 쓰면 딱 좋은 두께의 책들을 읽기(읽기라고 쓰고 사기라고 읽는다) 좋아했다. 책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놓으면 뽀대(?) 나는 책들(현재는 종종 라면 받침으로 활동 중)을 보고 있자면 갑자기 막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비록 첫 장 이후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어도 말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책을 읽는 것도 지적 허영심 때문이었다. 세상엔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지. 이것도 저것도 너무 다 알고(안다고 자랑하고) 싶다. 그러니 이 책을 읽다가 참지 못하고 저책으로 눈을 돌린다. 지금도 우리 집 식탁 위엔 내가 읽다만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우리집 책상엔 모임을 준비하며 빌려 온 그림책들과 읽다만 책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 책상 한 쪽에 쌓여있는 읽다만 책들 우리집 책상엔 모임을 준비하며 빌려 온 그림책들과 읽다만 책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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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후 지적 허영심이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싱글일 땐 밥도 엄마가, 청소도 엄마가, 빨래도 엄마가, 분리수거도 엄마가 다 해주셨기에 나는 그저 책만 읽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내가 바로 그 '엄마'이기 때문이다.

내 밥도 먹고 아이 밥도 챙기면서 지적 허영심을 채우려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후다닥 밥을 챙겨 먹고 책을 읽다가 하원 시간이 촉박해 뛰어가는 날들이 계속됐다.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는 책에서 저자는 책을 읽느라 며칠째 못 하나를 안(못) 박고 있는 남편에 대해 불평한다.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는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물론 나는 평소엔 팔랑팔랑 날아다니다가 아주 가끔 책벌레가 된다는 큰 차이가 있지만.

남편의 일침에 쪼그라들어 주섬주섬 집안을 정리를 하고 있는데, 문득 내가 지금 '사치'를 부리고 있나? 현타가 왔다.

남편이 억대 연봉이거나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팔자가 좋은지. 한량처럼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고, 책 읽고 글 쓰느라 바빠 하루에 한 끼는 밖에서 사 먹고. 무일푼으로 결혼해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다달이 나가는 대출이자 갚기에도 빠듯한데 말이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해도 괜찮아

그림책 모임을 시작하면서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했다. 사실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덕분에 기사도 쓰게 되었고, 기사를 쓰면서 글 쓰는 게 재미있어졌고, 다시 책을 읽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땐 나름 그림이 있었다. 그림책을 공부하면서 육아로 잃어버린 업(業)에 대한 감각을 다시 찾고, 구체적인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려 했다.

하지만 이젠 2주에 한 번하는 모임 준비만으로도 벅차다. 가정을 돌보면서 내 일을 구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나 나와 같은 저질체력에 잠 많이 자는 타율적 인간형에게는 더더욱.

"여보, 내가 이 모임을 하면서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 해도 의미가 있는 걸까?"

남편은 갑자기 의기소침해진 나를 보면서 특유의 다정한 말투로 짧게 대답했다.

"그럼."

남편이 결혼하며 한 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은 자신이 할 테니,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그때 좀 반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남자는 아마 흔치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남편은 말로 천냥 빚을 갚는 스타일이다). 

회사에서 점심 먹다 쓰러져 119에 실려갔던 나의 과거사를 알아 그랬을까. 그렇게 말하면 청개구리띠인 내가 당장 일을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설 줄 알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물론 나도 남편이 매일 야근에 지쳐 좀비가 되어 들어올 때면 언제든지 일을 그만둬도 된다고 한다. 이제부터 돈은 내가 벌 테니. 참고로 남편도 청개구리띠다.

아무튼 남편은 정말 그랬다. 그래서 이 모임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반겼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얻게 되면, 자신은 언제든 '셔터맨'이 될 수 있다며 맘껏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은 뭘까. 서른 중반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40줄의 친한 언니에게 '아직도 그런 고민을 하면 어떡하냐'라고 핀잔을 준 적이 있는데, 마흔이 다 돼서 이런 고민을 시작하게 될 줄이야.

남편에게 던졌던 질문을 다시 곱씹어 본다. '이 모임을 하면서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 해도 의미가 있는 걸까' 좀처럼 마음이 납득할 만한 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남편의 짧은 대답이 떠올랐다. '그럼' 

남편의 응원이 없었다면, 당장 돈 버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이라도 했다면, 나는 금방 이 모임을 접었을지도 모른다(그 집안 꼴을 보고도 '당장 때려치워'라고 말하지 않는 남편의 인내심에 경외를 보낸다).

사실 가장이라는 짐을 지고 아내의 자아실현(?)을 응원하는 남편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육아도 쉽지 않지만, 조직 생활을 해 본 경단녀로서 밥벌이의 고단함 역시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 모임을 시작한 지 6개월, 이 모임으로 뭔가를 이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주에 갑자기 두 명이 모임을 이어가지 못할 것 같다고 연락을 해온 상황에서 앞으로 얼마나 모임이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편의 '그럼'이라는 말에 다시 힘을 내본다.

오늘은 지적 허영심을 떨쳐내고 저녁으로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여야겠다. 비록 남편이 언제나처럼 야근을 하고 늦게 들어온다고 해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그림책, #모임, #자아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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