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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편집자말]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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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네, 안녕하세요 여기는 한국심리학회 상담센터입니다. 저는 참사 이후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위해 도움을 드리는 전문사입니다. 무엇이 지금 가장 힘드세요? 어떤 것도 좋으니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정말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왜 전화를 받자마자 또 눈물이 홍수처럼 터져 나올까요.

저는 이미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남겨준 댓글로 빠르게 회복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많이 나아졌어요. 그런데 왜 전화를 받자마자 인사를 하시는 선생님의 안내 멘트에 갑지기 또 눈물이 터지는 걸까요. 

나 : "선생님, 저는 정말 이제 괜찮아졌어요. 이미 수차례 상담과 진료로 인해서 죄책감과 자책감 같은 것들은 많이 해결이 되었고, 충분한 애도를 통해 자력을 되찾았습니다. 많은 것들을 털어내었는데 딱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어요. 바로... 창피함이었습니다.

참사 다음 날 일요일(10월 30일) 아침, 제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뭔지 아세요? 바로 핼러윈 분장을 하고, 이태원에서 놀고 있던 인스타그램 스토리(24시간 동안 노출되는 게시물)를 황급히 삭제한 거였어요. 제가 창피함을 느끼고 있었던 거 같은 거예요. 거기 간 걸 창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상담 선생님 : "어떤 부분이 창피하다고 느꼈던 거 같으세요?"

나 : "핼러윈 분장한 것, 창피해. 이태원 간 것 창피해. 주변 지인들이 이태원 갔다는 것 몰랐으면 좋겠다. 갔다고 욕먹으면 어떡하지. 파티했다는 것 창피해. 파티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도 창피해. 이런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상담 선생님 : "욕먹을까 봐, 라고 하셨어요. 그 이유가 뭘까요?"

나 : "그냥... 작년에 코로나19 때 이태원에서 일이 있었잖아요(이태원 한 클럽에 방문한 시민이 코로나19에 확진되고 난 뒤, 언론보도가 쏟아졌던 일. - 편집자 주). 그게 생각났던 것 같아요. 무서워서 어딜 갔다고 말하지도 못하던 시절이요. 욕먹으면 어떡하지, 생각 없는 애라고 뒤에서 떠들면 어떡해. 그리고 '구조 현장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한 사람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글도 본 것 같아요."

상담 선생님 : "지금도 창피하다고 생각하세요?"

나 :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창피해하고 있어요 지금은. 내가 왜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삭제했지, 너무 후회돼요."

상담 선생님: "창피함에 대한 시각이 지금은 바뀐 거네요, 그때 창피해했던 이유와, 지금 창피함에 대한 이유가 달라요 그쵸?"

나 : "네, 맞아요. 저는 분명히 이태원 현장에 가서 충분히 애도하고, 가길 잘했다고. 오히려 이태원은 잘못이 없다고, 상인들도 잘못이 없다고 당당히 이태원에서 밥도 먹으러 가야지, 시간 내서 또 헌화하러 이태원에 가야지. 내년에 꼭 할로윈 분장 더 화려하게 더 세게 하고 이태원에서 놀아야지 그랬는데, 창피함이라는 감정이 탁 걸리는 순간…"

상담 선생님 : "본인에게 시간을 좀 더 주세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간이 아주 많이 많이 필요해요. 빠르게 일어나고 싶었나 봐요 정말로. 그리고, 오히려 새로운 관점이 생겨서 새로운 감정으로 창피함을 바라보고 있어요. 이건 좋은 현상이에요. 창피함을 창피해하고 있다는 것이요."

나 : "전화드리기 전까지는 이제는 친구들이 보고 싶더라고요. '야 우리 놀러 가자, 클럽에 가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좋은 데로 커피도 마시러 가자' 이렇게. 그런데 창피함을 깨달은 순간, 이제는 헷갈려요. 그래도 될까? 아닌 것 같아요 갑자기…"

상담 선생님 :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도 될 것 같으세요?"

나 : "선생님과 상담하는 도중에는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많이 바뀌긴 했지만... 정말 그래도 될까요? 모르겠어요, 선생님. 제가 지금 그래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나 봐요."


"제가 웃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 부근 게시판에 청년진보당이 설치한  ‘이태원 참사 추모의 벽’이 만들어져 있다. 이태원 압사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을 남기는 ‘추모의 벽’에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나 운이 좋아 살아있구만’ 등이 적힌 메모지가 적혀 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 부근 게시판에 청년진보당이 설치한 ‘이태원 참사 추모의 벽’이 만들어져 있다. 이태원 압사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을 남기는 ‘추모의 벽’에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나 운이 좋아 살아있구만’ 등이 적힌 메모지가 적혀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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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선생님 : "저는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정답을 감히 내려드릴 수는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들 중에 하나라고 분명히 생각해요.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면 돼요,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나아가려고 하는 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친구들과 놀러 가셔도 돼요. 정말로요. 우리는 이번 참사를 통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거 잖아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려는 노력들은 각자마다 다 달라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거예요.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요 일상으로 복귀가 가장 대표적인 노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 : "오늘은 예능을 보고 싶었어요. 오늘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에 무한도전을 봐야지. 지난 며칠간은 뉴스에 집착할 정도로 그것만 봐왔거든요. 그런데 그걸 봐도 될까요?"

상담 선생님 : "네, 물론이죠 정말 보셔도 돼요."

나 : "선생님, 제가 정말 그걸 보고 깔깔거리고 웃고, 떠들어도 될까요?"

상담 선생님 : "아... 정말 물론입니다 진짜로요. 질문 하나 할게요. 어떤 거 제일 좋아하셨어요?"

나 : "제가 박명수씨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분 개그 스타일을 참 좋아해요.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내뱉어서 사람 황당하게 웃기는 거나, 가만히 있다가 툭 웃음 터지게 하는 거요."

상담 선생님 : "또 누구 좋아하셨어요?"

나 : "유재석씨 좋아하는데, 그냥 그분이 다른 사람 놀리는 거 좋아했거든요. 유재석씨가 다른 사람 놀리는 거 보고 싶더라고요. 제가 놀림 받았으면 좋겠기도 해요, 친한 친구들 중에 웃긴 애들 정말 많거든요. 걔네가 아무렇지 않게 저를 놀려줬으면 좋겠어요."

상담 선생님 : "제가 감히 오늘 숙제 하나 드릴게요. 박명수씨 짤 하나, 유재석씨 짤 하나, 옛날 무한도전 짤 하나 이렇게 3개는 저녁에 꼭 보기. 보면서 깔깔깔 엄청 웃기. 꼭 약속해요!"

나 :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제가 꼭 오늘 볼게요. 그리고 또 전화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정말로."


'나 여기 있어, 언제든 연락해'라는 친구들
 
지난 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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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전화 상담뿐만 아니라, 대면 심리치료 상담도 진행했습니다. 대면 심리치료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는 이랬습니다. 

대면 심리치료 상담 선생님(아래 대면 상담 선생님) : "OO씨, 분명 저한테 '핼러윈은 잘못 없다, 이태원은 잘못 없다'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때 인스타 스토리 삭제했을 때의 창피함을 잘 뜯어보자고요. 인스타 스토리를 삭제했다 → '핼러윈이나, 파티는 잘못된 것이다, 이태원에 간 것은 잘못이다'라는 감정이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핼러윈은 잘못이 없다, 파티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태원에 간 것은 잘못된 게 아니다 라고 인식하고 있었고요. 그러면 인스타 스토리를 삭제했다는 건 그때는 깨닫지 못한 상태라 그랬던 것이다, 이거네요!"

나 : "아 맞네..."

대면 상담 선생님 : "자꾸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다 보니 인식의 오류가 생겨서 그래요! 원래 잘 회복하고 있었어요. 혼자 되돌아가서 무덤을 파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상담사가 되돌아가서 무덤 파는 걸(과거를 복기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이고요, 언제든지 그런 현상이 올 때 문 두드리면 돼요. 인식의 오류를 바로잡기만 하면 별문제 없는 거예요. 자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제일 크게 도움된 말들 이야기 해봐요, 우리."


나 : "원래 살면서 나 스스로에게 위로하던 말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일이 아닌 게 되는 거야,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남들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 이거였어요. 저한테는 마법 같은 문장이었는데, 그 마법이 통하지 않는 순간도 있더라고요. 상식적으로 누구나 다 별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터지면 안 통해요.

그런데 그때 그 이상의 문장을 만났어요.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친구들이. '나 여기 있어, 언제든 연락해도 돼' 한두 명 해준 게 아니에요. 자기 여기 있다고, 네가 어떤 상태인지 몰라서 함부로 말을 걸지는 못하지만 나 여기 있으니까 네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도 된다고. 너무 큰 힘이 됐어요. 그 친구들에게 '너희가 옳았다'라고 말해주고도 싶어요.

비록 제가 답장을 하지는 못했지만, 답장이 없을 걸 알면서도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주는 친구들의 용기가 너무 감사해서 휴대전화를 잡고 울었어요. 나는 과연 답장이 없을 걸 알고도 용기 있게 내가 도움이 될 거란 확신을 갖고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었던가. 없는 것 같거든요.

최근에 웃었던 일 있어요. 제가 되게 우울이 극심해지던 때였는데, 밥을 못 먹고 있었어요. 배가 안 고픈 게 아니라 밥을 사오고, 차리고 이런 에너지가 없어서예요. '우리는 살면서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거에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쓰는 거구나'라는 것도 느끼면서요. 근데 그때, 제 친한 동생이 너무 당당하게 '언니! 내가 전복죽 시켰어! 언니네 집 X06호 맞지?'이러더라고요.

원래도 실수가 많은 친구거든요. 너무 당당하게 틀린 호수로 배달을 시켰다는 친구 메시지를 보고 웃음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아니야 OO아... 우리 건물에 X06호라는 곳은 존재하지 않아... X01호야...' 보내면서 정말 뻘하게 웃음이 터지더라고요. 이상한 감정이었습니다. 나의 모든 게 휘발되어 날아가는 느낌. 선생님, 웃음이 정말 중요한 거더라고요."


- 갑자기 쏟아진 감정에 2명의 상담사와 상담을 진행한 날 대화에서.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①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http://omn.kr/21i1i
② 이태원에서 같이 살아나온 친구, 진실에게 http://omn.kr/21i3o
③ '놀러 갔다가 죽은 걸 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http://omn.kr/21i3n
④ 생존자인 저는, 내년에도 이태원에 갈 겁니다 http://omn.kr/21i3t
⑤ 묻고 싶습니다, '이태원 참사' 때 다 어디에 있었느냐고 http://omn.kr/21i3w

태그:#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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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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