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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림은 백화점이 있는 큰 길가 인근, 신발 노점 진열대 제일 앞 줄에 놓여 있었다.
 그 그림은 백화점이 있는 큰 길가 인근, 신발 노점 진열대 제일 앞 줄에 놓여 있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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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동의나 다름 없다"

중국 연길이었다. 가슴에 일본 국기가 새겨진 한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고 그 사람을 한쪽 발로 밟으며 웃고 있는 한 남자가 그려진 그림을 봤을 때가. 검은선으로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일본 국기만 빨갛게 색칠되어 있었다.

그 그림은 백화점이 있는 큰 길가 인근, 신발 노점 진열대 제일 앞 줄에 놓여 있었다. A3만 한 그림이라서 그 길을 지나치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었다. 당연히 보라고 진열했을 테지. 그림 작가가 신발 가게의 주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화려한 네온 사인보다도 훌륭하게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루는 남편이 씩씩 거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중국말이 서툴렀던 남편은 나에게 번역 좀 해달라고 종이를 내밀었다.

"이 그림은 좋지 않습니다. 일본 사람도 우리의 친구입니다."
"这张照片不好。日本人也是我们的朋友。"


그때 바로 알아챘다. 무슨 그림을 두고 하는 말인지.

"당신도 봤구나, 그 그림. 근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 신발 가게 사장님 힘 좋아 보이던데..."

내가 살살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말해야지. 침묵은 동의한다는 뜻과 같은 거야."

남편은 내가 적은 종이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까지 굳이 내가 나서서 '이건 아니다, 맞다' 상관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침묵이 '동의한다'는 뜻과 같다는 남편의 말이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런 말을 태어나서 처음 들었던 터라 그날은 정말 깊게 고민했다. 잠이 오지 않을 만큼. 다음날 아침,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마음을 단단히 잡고 신발가게 사장님을 만나러 갔다.

"안녕하세요. 전 한국인입니다. 과거에 일본이 잘못했지만 이런 그림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일본 사람들이 좋습니다. 저나 당신처럼 좋습니다."

서툴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중국어 단어를 써 가며 힘주어 말했다. 솔직히 글을 쓰는 지금도 떨린다. 그때는 오죽했을까. 어찌나 가슴이 벌렁거리던지. 온몸이 감기 걸린 것처럼 으스스 떨리고 추웠다. 들키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물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며칠 후 신발 가게에서는 더 이상 그 그림을 진열하지 않았다.

No Dogs!
No Irish!
No Blacks!
(개, 아일랜드인, 흑인 출입금지!)


1960년 영국, 상점에 가면 가게 문 앞으로 흔히 붙어 있는 문구였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내게 '가끔은 가정 집 창문에도 똑같은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력 부족이 심각해진 영국은 식민지에서 출생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영국 국민으로 동일한 지위와 권리를 부여하겠다고 했다. 1948~1970년 영국의 카리브해에서 약 50만 명의 이민자가 영국에 들어왔다. 이들을 '윈드러시 세대'라고 부른다(이민자들이 타고 온 배의 이름에서 따온 말).

남편의 부모님 역시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 이민 온 '윈드러시 세대'였다. 일자리가 가득가득할수록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도 징그럽게 그득그득했던 세대.

"우리 가족이 수영장에 가면 수영하던 모든 백인이 하나둘 다 떠나가더라고. 개인 수영장이나 마찬가지였어."  

시아버지가 껄껄껄 웃으며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저 흑인이라는 이유로 경찰한테 잡히기를 밥 먹듯이 했다던 남편. 연길에서 그 그림을 보고 침묵하지 않았던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갑자기 10년 전의 일을 꺼내는 이유는 세종사이버대학교에서 '한국사회의 다문화 현상 이해'라는 과목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수업을 통해, 성인의 다문화 수용성이 청소년보다 현저히 낮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21년 기준으로 성인의 다문화 수용성은 52.27점, 청소년은 71.39점. 여기서 말하는 다문화 수용성이란 타문화를 존중 하는 태도이며 타문화에 편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문화와 등등하게 인정하는 열린 사고를 말한다. 일상에서 이주민을 자주 볼수록 다문화 수용성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들이 성인보다 학교에서 외국인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듯하다. 

연령이 낮을수록 다문화 수용성이 높다는 결과를 보며, 젊은이들이 어른이 되는 세상은 '다름'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론, 지금 어른들의 다문화 수용성이 현저히 낮다는 사실에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아직도 다문화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알게 모르게 존재한다는 얘기니 말이다. 

60년 전 윈드러시 때나, 10년 전 연길이나, 지금의 한국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테다.    

우리는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가 
 
스코틀랜드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을 기다리는 어른들.
 스코틀랜드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을 기다리는 어른들.
ⓒ Hyeyoung J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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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후 아들과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정문 앞으로 많은 어른들이 모였다. 노란색 머리, 빨간색 머리, 오렌지색 머리, 검은 머리. 다양한 머리색과 피부색을 가진 어른들이 서 있다. 스코틀랜드, 이 작은 시골에.

대충 세어 봐도 국적이 열 나라는 넘을 듯했다. 내 옆에는 아나스타가 서 있었다. 그녀는 가장 최근, 딸과 함께 우크라이나에서 온 이민자다. 아침에 딸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센터에 가서 영어 공부를 한다. 아직 영어를 잘 못 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아나스타, 여기 오니까 좋아요?"
"네. 아주 좋아요. 날씨는 별로지만 사람들이 참 좋아요."
"맞아요. 여기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참 좋죠."


이상하다. 갑자기 한국의 어느 초등학교 정문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한 외국인 엄마가 떠오른다. 아침 일찍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서 오후가 되어 바쁜 걸음으로 학교를 찾아온 엄마. 옆에 있는 누군가가 물어보겠지.

"여기 오니까 좋아요?"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 그리고 우리는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을까.  

덧붙이는 글 | * 2021년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 결과 발표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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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스코틀랜드, #다문화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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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코트랜드에 살고있습니다. 평소 역사와 교육, 자연과 환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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