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일 오전 9시 30분, 나의 진정한 삶은 이곳의 문을 열면서 시작된다. 아로마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따뜻한 조명이 반기는 곳. 바로 집 근처 요가원이다.

이곳에 오기 전의 나는 등원미션임파서블의 주인공, 두 아이의 엄마다. 세수하기, 옷입히기, 아침 먹이기, 양치하기 등의 일련의 미션을 수행한다. 첫째아이 손을 잡고 둘째의 신발을 엘리베이터에서 신기며, 9시에 칼같이 도착하는 유치원 버스에 첫째 아이를 무사히 안착시킨다. 

멀어져가는 아이를 향해 손을 끝까지 흔든 채, 뒤돌아서 부리나케 둘째를 카시트에 태운 후, 곰돌이 그림이 그려진 어린이집 문 안으로 무사히 들여보내면 등원 미션이 최종 완료된다.

마침내 액션 영화의 주인공에서 놓여난 나는 가뿐한 마음으로 오전 9시 30분 요가 수업에 임한다. 1평 남짓한 요가 매트에 앉아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 속에는 나와 같이 등원 미션을 무사히 수행하고 온, 헝클어진 머리를 묶으며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매일 아침 9시반,거울 속의 나를 보며 진정한 나를 마주한다
 매일 아침 9시반,거울 속의 나를 보며 진정한 나를 마주한다
ⓒ 이유미

관련사진보기


"나마스테." 강사의 나직한 인사로, 온전한 내 몸과 마음이 주인공인 한 편의 모노드라마가 시작된다. "코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세요." 강사의 말에 천천히 호흡하며 어질러진 마음을 정돈한다.

심호흡을 하며 바로 직전까지 아이와 실랑이하던 나를 떠올린다. "밥 좀 빨리 먹으라했지, 이러면 버스 놓치잖아, 빨리빨리 씹으라고 좀" 오늘따라 느릿느릿 밥을 되새김질 중인 첫째 아이, 나는 참았던 화를 폭포수처럼 분출하고야 말았다. 큰 소리에 두 아이 모두 삽시간에 울음바다가 된,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었던 아침 등원 현장이었다.

몇 차례 호흡을 고르니 아까의 일로 마음 속을 어지럽히던 감정의 잔해가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화가 나도 지금처럼 심호흡하며 아이에게 조금 다정하게 말해주자"라는 다짐도 마음 속에 꼭꼭 새겨넣었다.

한층 개운해진 마음으로 본격적인 자세에 들어간다. 짧은 머리의 강사는 "꼬리뼈를 천장으로 들어올리고, 어깨와 귀를 멀어지게 하고, 배꼽이 납작해지게 코어에 힘을 주세요"라고 말한다. 아무리 들어도 나는 그 자세를 정확히 재현할 수 없다. 

말은 쉬운데 몸으로 표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집중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하다보면 내 몸에 맞는 올바른 자세를 완성하는 순간이 온다.

나에겐 차투랑가라는 요가의 자세가 그렇다. 일명 막대기 자세로 불리는데 팔굽혀펴기 자세와 비슷하다. 손바닥을 밀어온 몸을 막대기처럼 세우는 그 동작에서 늘 팔힘이 부족해 고전했었다. 

도저히 내 것 같지 않던 그 자세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보니 어느 순간 탁 하고 되는 순간이 왔다. 그때의 기분은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뿌듯하면서도 울컥함이 올라왔다.

용기가 생긴 나는 다른 고난도 동작도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가능하신 분들만 하세요"라는 요가 강사의 말에 욕심을 부려 무리하게 다리를 뻗는다. 하지만 이내 비틀거리며 "윽" 하는 신음과 함께 균형을 잃고 만다. 민망해진 나는 어려운 동작을 하라고 명령을 내린 애꿎은 뇌를 잠시 원망한다. 하지만 이내 '괜찮아,할 수 있는 만큼만 나의 속도로 천천히 해보자'라고 조용히 나 자신을 토닥인다.

"오른쪽 다리를 구부리고 왼쪽 다리를 펴 가슴 앞에 손을 모아 하늘 높이 들어올리세요 1.2.3.4.5." 5초의 카운트가 마치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며, 얼굴은 붉게 달아오른다. 아슬아슬 쓰러지기 일보 직전, 귓가에 희미하게 들리는 강사의 마무리 멘트가 그렇게 달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격하게 힘든 그 순간을 버티고 나면, 나는 앞으로 마주할 어떤 미션도 쉬이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한 시간여에 걸친 요가 수업이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제서야 한숨 돌리며 주변 사람들을 찬찬히 돌아본다. 헝클어진 머리, 붉게 상기된 뺨, 헥헥 대는 숨소리, 서로를 거울삼아 바라보며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무언의 눈빛 교환으로 동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의 표정만은 빗물에 흙먼지를 씻은 풀잎처럼 싱그럽고 개운하다. 

마지막으로 사바아사나를 하며 온전한 휴식에 들어간다. 온몸의 긴장을 툭 풀고 누워 있으면 비로소 심신에 고요함이 찾아든다. 그 순간 몸과 마음이 말랑말랑해면서도 한편으론 단단해짐을 느낀다. 5분여의 꿈같은 시간이 지나고 조명이 환히 켜지는 순간, 1평 남짓 매트에서 벌어지는 한편의 모노드라마는 비로소 막을 내린다.

한 시간짜리 모노드라마의 끝엔 온전한 내가 되어,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얻으며 "잘 버텨냈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을 따뜻이 다독인다. 그런 자기 돌봄의 자세를 통해 얻는 힘으로, 이곳을 나갔을 때 맡게 될 힘든 액션영화의 주인공 역도 불사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상쾌한 마음으로 요가원 밖을 나오니, 한결 차가워진 바람이 달아오른 내 뺨을 기분좋게 식혀준다. 앞으로 내게 좀 더 힘든 미션이 주어진 데도 많이 두렵지 않다. 미션을 수행하고 난 뒤의 지친 나를 소중히 돌보며 힘을 채워줄 나만의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을 읽는 당신도 힘든 무언가를 이겨낼 수 있는 자신만의 장소나 자기 돌봄행위를 찾아가길 바랍니다.


태그:#요가수련, #몸과마음이주인공, #자기돌봄, #자신을소중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상의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는 에세이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지망생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