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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수당을 만든 사람", "우리를 위해 밥도 굶어준 사람", "배지 없이도 구의원보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 동네에서 아이스팩을 모으고, 중고생 100원 버스를 만들고, 은행ATM기 설치 서명을 받으며 당선된 진보당의 지방의원들. 그러나 당선의 기쁨도 잠시, "진보 지방의원은 뭐가 다른데?" 더 큰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배지를 달고 더 바쁘게 뛰고 있는 지방의원들의 분투기를 담습니다.[편집자말]
박형대 의원은 "농민들 속에서 기후위기 대안을 고심했다"고 말했다
 박형대 의원은 "농민들 속에서 기후위기 대안을 고심했다"고 말했다
ⓒ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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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의 시대, 탄소배출을 줄이는 대안으로 우리는 흔히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국내에서 전개된 재생에너지 사업이 늘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설치 과정에서 지역주민과의 갈등, 발전 이익 분배 문제 등이 불거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농민들 속에서 대안을 찾은 이가 박형대 전남도의원이다.      

박 의원은 농민이다. 1999년 장흥군농민회에서 시작해 2014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까지 지냈다. 2016년 전국에서 최초로 '농민수당'을 제시했고, 의원 배지 없이도 전남도민 4만3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조례안을 제출해 실현했다. 이외에도 월평마을의 이장을 지내는 등 도민에게 헌신하는 진정성을 인정받아 민주당의 현역 군의원을 큰 표 차로 꺾고 의회에 입성했다. 

그에게 재생에너지는 잘 알던 분야가 아니었다. 2018년 무분별한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지역이 몸살을 앓고 있던 때 지역민들의 투쟁에 함께하며 고민을 키워갔다. 

화순군 풍력발전 이격 거리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취락지역으로부터 1500m(10호 미만) 또는 2000m(10호 이상) 이내로는 풍력발전시설이 입지하지 못하도록 정한 조례가 있었다. 그럼에도 화순군의회는 '친환경적이고 무한한 공급력을 가진 풍력발전시설 설치'를 사유로 이격거리를 각각 800m, 1200m로 좁혔다. 군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집회를 이어갔다.

"재생에너지 사업이 확산되며 태양광 패널이 농민을 쫓아내고, 풍력발전기 소음이 마을까지 들려오는 상황이 빈번했습니다. 곳곳에서 싸우는 분들과 함께하다 보니 풀기 쉽지 않은 문제더라고요. 예를 들어 원전을 짓는다고 하면 반대하면 끝이잖아요. 그런데 기후위기 시대에 재생에너지 개발을 반대만 할 수 없다 보니 대안을 함께 가져가야 했지요."

기후위기의 대안은 '재생에너지 공영화'
 
전남 영광에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기가 함께 설치된 모습
 전남 영광에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기가 함께 설치된 모습
ⓒ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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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도출한 대안은 '재생에너지 공영화'다. 지금의 재생에너지 사업은 민간업체에게 사업권을 주는 형태로 진행되며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이를 국가와 지자체 주도로 돌려 개발과정부터 자연, 지역 공동체와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업에서 발생한 이익을 회수하는 것도 공영화의 핵심이다. 이전에는 민간업체의 이윤을 일부 회수하는 선이었다면, 공적으로 진행된 사업인 만큼 대부분을 다시 도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주민과 지역사회에 저렴하게 전기를 공급하고, 이익은 다시 지역발전을 위해 투입하는 선순환을 통해 지역의 에너지 자립화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뭐든 끝까지 해야지 이슈화되고 그만두는 건 아니라고 봐요. 재생에너지 의제를 잡은 것도 정치인으로서 이미지를 만드는 목적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사업이기 때문이죠. 기후 위기 극복과 평등을 위해, 저는 근본적으로 법 개정이 돼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체계를 국유화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기후위기가 폭넓은 공감을 얻는 의제가 된 뒤에도 실제 현장에서 깊이 고민하고 대안을 도출하는 정치인은 흔치 않다. 기후정의를 외치면서도 그 실현방안은 실질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박 의원은 현장에서 고통받는 농민들의 목소리에서 시작해 국가 차원의 영역으로 해결방안을 확대했다.

정치를 하는 이유
 
농민집회에서 농민과 반갑게 악수하는 박형대 의원
 농민집회에서 농민과 반갑게 악수하는 박형대 의원
ⓒ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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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대 의원이 도정질의에 띄운 사진의 이름은 '풍력발전의 명과 암'이었다
 박형대 의원이 도정질의에 띄운 사진의 이름은 '풍력발전의 명과 암'이었다
ⓒ 전남도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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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록 전남도지사에게 도정질의하는 박형대 의원
 김영록 전남도지사에게 도정질의하는 박형대 의원
ⓒ 전라남도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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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치를 하는 이유가 민중의 아픔 속에서 함께하는 데 있는 거잖아요. 사진은 우리가 1년 전부터 함께 투쟁했던 내용들이에요. 도정질의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진 속의) 할머니 같은 경우에는 제가 그 옆에 제가 같이 집회를 했던 분이고. 아흔이 넘으신 최고령 할머니이거든요."  

지난 10월 20일 박 의원의 도정질의에는 풍력발전 이격 거리 규탄 집회 당시의 사진이 띄워졌다. 그에게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였다. 추운 겨울 머리띠를 두르고 길거리에 앉은 어르신들의 모습을 뒤로한 채 진행된 김영록 전남도지사와의 도정질의는 차분히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질의를 통해 재생에너지 공영화라는 취지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관련 조례도 다음날(10월 21일) 통과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례도 만들어졌고 도지사도 공감하니까 됐다'고 끝내버리면 다시 후퇴한다고 봐요. 자본의 힘이 더 크니까요."

이를 위해 박 의원은 '전라남도 재생에너지 공영화 포럼(가)'을 발족하고 활동과 연구에 나설 예정이다.

사문화된 청원제도를 되살리다

박형대 의원은 이밖에도 올해 5건의 '진보 입법'(▲재생에너지 사업 공영화 ▲돌봄복지 공공성 강화와 돌봄노동자 처우개선 ▲농산물 가격안정 지원 ▲농어민 공익수당 확대 ▲민주화운동 관련자 예우 및 지원) 추진을 밝히고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안 중에 이어 나갈 것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이어가야 할 대표적인 게 농어민 수당입니다. 농어민수당 운동은 2018년부터 만들어왔던 대표사업인 만큼 이를 더 확대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상임위에서 발언하는 박형대 의원
 상임위에서 발언하는 박형대 의원
ⓒ 전라남도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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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화됐던 청원제도를 살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교육공무직 대체 인력제도 마련' 1호 청원을 올린 것도 그였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소개의원 한 명만 있으면 주민들의 의사를 안건으로 올릴 수 있는데, 그 의미가 무색하게 거의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제도였다. 전남도의회에서만 8년간 접수된 적이 없었는데 박 의원이 이를 다시 되살린 셈이다. 

또한 전반기 교육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행정사무 감사에서 잦은 공기청정기 교체 사업의 낭비를 지적하고, 실효성이 떨어지는 학생교육수당 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는 등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돋보이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끊임없이 변화·발전해야 '진보' 정치인이죠"

박형대 의원에게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물었다.

"국민이 한 정치세력에 권리를 맡길 때, 똑똑하고 부지런하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견고하냐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저 세력은 졌지만 흔들리지 않고 있다, 저 사람들에게 맡기면 적어도 신뢰는 잃지 않겠다'고 여기시게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박 의원에게 이번 선거는 두 번째 도전이었다. 2018년 처음 출마한 선거에서는 4% p 차이로 낙선했다. 결과를 곱씹으며 이유를 찾았다.

"첫 선거에서 떨어지고 이름만 '진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진정한 '진보정치인'으로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국민께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성 정치인들도 예전에는 정말 진보적인 사람이었죠. 그렇지만 어느 순간 진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농민운동가로서 농업과 관련된 문제만 알고 나머지는 잘 모르지 않았나,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우리가 주장하고 있는 것만 외쳤나 싶었죠."

이후 농민운동가들과 함께 포럼을 꾸려 공부와 토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도민 삶의 전반을 다뤄야 하는 정치인의 역할에 걸맞게 폭넓은 사안에 관심을 뒀다.

"농민수당만 하더라도 농촌 지역의 이슈지만 물가, 식량주권과 같이 국민들께 중요한 이슈로 확장된 거잖아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시대를 이끌어갈 의제를 얼마만큼 풍부하게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정당의 모습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는 것 같아요. 공부의 중요성을 많이 배웠지요. 책을 많이 보자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위한 대안이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께 머리를 맞대는 과정에서 기성정당이 보여주지 못하는 정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박형대 의원은 "시대를 이끌어갈 의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형대 의원은 "시대를 이끌어갈 의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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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진보당은 지방자치위원회(위원장 장진숙)를 두고, 지역정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지방의원> 연재기획은 지방자치위원회 편집팀에서 공동 취재해 기고한 글입니다.


태그:#박형대, #전남도의원, #진보당, #지방의원, #재생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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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서민의 정당 진보당 공동대표, 지방자치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진보당 지방자치위원회에서는 지역정치, 지방자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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