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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원유유출사고 이후 극복과정이 담긴 22만여 건의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123만 자원봉사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릴 수 있게 됐다. 사진은 11월 26일 경북 안동시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위원회 총회’에서 받은 인증서.
 태안원유유출사고 이후 극복과정이 담긴 22만여 건의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123만 자원봉사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릴 수 있게 됐다. 사진은 11월 26일 경북 안동시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위원회 총회’에서 받은 인증서.
ⓒ 태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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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원유유출사고 15주년을 10여 일 앞둔 지난 11월 26일, 태안 유류피해 극복 기념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에 등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07년 12월 7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해상사고였던 태안 기름유출 사고 발생 15년 후 맞이한 뜻깊은 결실이다.

태안 유류피해 극복 기념물은 기름유출 사고와 그 극복과정을 담은 22만 2129건의 기록물에는 삶의 터전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피해지역 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사투, 123만 명에 달하는 전국의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등이 담겼다.

15년 전, 그날의 기록
 
2007년 12월 7일 만리포 해상에서 발생한 원유유출사고가 7일 15주년을 맞았다.
▲ 15년 전 원유로 뒤덮인 만리포 해변 2007년 12월 7일 만리포 해상에서 발생한 원유유출사고가 7일 15주년을 맞았다.
ⓒ 태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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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 6분,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 예인선단과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만리포 앞바다에서 충돌했다. 이 사고로 유조선에 실려 있던 원유 1만 2547㎘가 유출돼 국내에서 손꼽히는 청정해역인 태안 앞바다를 순식간에 검게 물들였다.

기상상태가 나빠 초기대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름은 순식간에 태안반도 연안으로 밀려들었고, 사고 이튿날인 8일에는 사고지점과 가까운 원북면과 소원면의 해수욕장 및 항포구까지 기름으로 뒤덮였다.

사고지점에서 수십km 떨어진 태안읍 시내에서 기름의 역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사고 규모는 매우 컸다. 태안군과 해경 등은 즉각 방제작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군은 사고발생 직후 예비비 2억 5천만 원을 긴급 배정했으며 공무원과 군인 등 2700여 명이 현장에 투입됐다.

123만 자원봉사자들과 태안군민들의 헌신
 
사진은 2007년 12월 11일 원유 직격탄을 맞은 소원면 만리포해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기름띠를 제거하고 있다.
▲ 태안의 기적을 일군 123만 자원봉사자들 사진은 2007년 12월 11일 원유 직격탄을 맞은 소원면 만리포해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기름띠를 제거하고 있다.
ⓒ 태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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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7일 만리포 인근의 소원면 의항리에서 기름띠를 제거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 태안의 기적 2007년 12월 17일 만리포 인근의 소원면 의항리에서 기름띠를 제거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 태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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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인식한 충남도와 정부 역시 곧바로 나섰다. 충남도는 재난대책반을 설치했고, 정부는 사고 다음날인 12월 8일 태안 등 6개 시·군에 '재난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11일에는 '특별재난지역'으로 격상했다.

이 같은 방제체계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언론을 통해 사고를 접한 전국의 자원봉사자가 태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강추위에도 하루하루 늘어 많은 날은 하루 6만 명을 넘기기도 했다. 총 123만여 명의 자원봉사자는 기꺼이 태안을 찾아 기름을 퍼내고 묵묵히 바위와 돌을 닦았다.

사고로 태안 지역은 양식장 380개소 4627ha, 해안선 167km, 해수욕장 15개소, 도서 24개소가 오염됐는데, 이들 모든 지역에는 자원봉사자의 발자취가 남았다. IMF 구제금융 당시 금모으기 운동에 이어 다시 한 번 국민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당시 만리포로 가는 도로가 왕복 2차선이었고 항상 길이 막히는 어려운 여건이었는데도 정말 많은 분께서 와주셨어요. 군민들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분들과 함께 했고, 저희도 주말 없이 밤낮으로 일하다가 사고 발생 2개월 후인 설 연휴가 돼서야 처음으로 딱 하루를 쉬었죠. 그만큼 다들 헌신적이었어요."

태안원유유출사고 당시 방제물품 배부 업무를 맡았던 태안군 공직자의 회상이다.

절망을 희망으로
 
2007년 12월 7일 만리포 해상에서 발생한 원유유출사고가 7일 15주년을 맞았다. 사진은 지난 4일 만리포 전망대에서 촬영한 만리포 해변 전경.
▲ 깨끗해진 만리포 해변 2007년 12월 7일 만리포 해상에서 발생한 원유유출사고가 7일 15주년을 맞았다. 사진은 지난 4일 만리포 전망대에서 촬영한 만리포 해변 전경.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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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제작업은 빠르게 진행돼 2008년 3월말 경에는 해수욕장 등 사람의 접근이 쉬운 지역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후 군 등 방제당국은 방제업체를 통한 전문방제 작업으로 서서히 작업을 전환했으며, 2008년 6월에는 자원봉사자의 현장 투입이 종료됐고, 11월말에 취약지역 방제와 환경정화 중심의 마무리 방제도 끝을 맺었다.

방제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2008년 4월부터 단계적으로 조업이 재개돼 같은 해 9월에는 군내 모든 지역에서 어민들이 조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또 6월에는 구름포 해수욕장을 제외한 관내 모든 해수욕장이 개장해 손님맞이에 나섰다.

태안군은 사고 2년 뒤인 2009년 안면도 국제꽃박람회를 개최, 200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하며 태안 재기의 전환점과 발판을 동시에 마련했다. 2013년 제18회 바다의 날 행사와 2017년 희망나눔 한마당 행사를 통해 123만 자원봉사자에 감사를 전하며 예전 모습을 되찾은 태안 바다를 온 국민에 선보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열린 서해안유류피해극복 10주년 행사에 참석해 태안을 세계 자원봉사의 성지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희망의 성지라고 표현했다. 이후 명칭도 서해안유류피해에서 긍정적인 의미의 '서해안유류피해 극복'으로 바뀌었다.

회복까지 몇 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태안 바다는 국민들의 관심과 헌신, 군민들의 노력으로 빠르게 되찾았다. 이후 태안은 연간 1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도시의 명성을 다시금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지난 2017년 9월 문을 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기념관을 둘러봤다.
▲ 만리포에 위치한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관 지난 2017년 9월 문을 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기념관을 둘러봤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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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9월에는 사고지역이었던 만리포 일원에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이 개관했다. 지난 11월 26일에는 태안 유류피해 극복 기념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에 등재되며 기름유출사고가 재조명받기도 했다.

태안군은 사고 당시 태안군에 큰 도움을 준 123만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를 기억하기 위해 유류피해극복기념관 내에 디지털 기념비인 명예의 전당을 운영하는 등 국민들의 헌신을 잊지 않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가세로 태안군수는 "출연금 문제를 비롯해 완전한 생태계 및 환경 복원과 주민 건강 등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는 만큼 군에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15년 전 국민 여러분께서 보여주신 헌신에 6만 2천여 군민 모두의 마음을 모아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더욱 발전된 태안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만리포, #태안원유유출사고,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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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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