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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는 무겁습니다. 떠올리기도 짜증 나고 힘겹습니다. 그럼에도 아픈 역사를 떠올리는 것은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우리나라 부끄러운 치욕스러운 역사, 동아시아 국제전쟁(병자호란) 특별전이 진주성 내 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 26일까지 열립니다.

진주성 정문인 공북문으로 들어서면 햇살이 쏟아집니다. 햇살 드는 자리 곳곳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숨결이 머물러 있습니다. 저만치에서 동아시아 국제전쟁(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1차 전투를 승리로 이끈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이 우리를 반깁니다. 동상을 지나면 옛 경남도청 정문이기도 했던 영남포정사로 올라가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크고 작은 조형물로 만든 등(燈)들이 눈길을 끕니다. 한때의 물고기 형상의 등이 즐비해 물결치듯 진주성 안을 헤엄칩니다.

성벽 너머로 푸른 하늘을 품은 남강이 잔잔한 호수처럼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새무리가 해를 거슬러 서녘으로 날아갑니다. 새 떼의 날갯짓을 따라 서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국립진주박물관> 이정표가 나옵니다. 오가는 바람과 인사라도 나누는 양 <병자호란>이라 적힌 깃발들이 펄럭입니다.
 
동아시아 국제전쟁(병자호란) 특별전이 진주성 내 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동아시아 국제전쟁(병자호란) 특별전이 진주성 내 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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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동아시아 국제전쟁(임진왜란) 상설 전시실을 둘러볼 수 있지만 왼쪽으로 바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기념품점 옆으로 특별전시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양 전시실 입구는 산성의 성문과 성곽이 길을 인도합니다.

본격적으로 전시실에 들어서면 왜 병자호란 전시를 하는지 <프롤로그>가 눈길과 발길을 머물게 합니다.
 
동아시아 국제전쟁(병자호란) 특별전이 진주성 내 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동아시아 국제전쟁(병자호란) 특별전이 진주성 내 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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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은 1636년 12월 8일 청나라의 침공으로 시작되어 이듬해 1월 30일 조선 국왕이 청 황제에게 항복하면서 끝난 전쟁입니다. 이 짧은 전쟁이 조선에 끼친 피해와 영향은 임진왜란에 못지않았습니다. 종전 후 불과 7년 만에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중심이던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큰 파장에도 불구하고 병자호란은 임진왜란에 비해 좀처럼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쟁 이후 조선에서는 청나라에 맞서서 명나라를 떠받는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패배한 전쟁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했습니다. 전쟁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이나 전쟁을 치른 사람들의 치열한 고민, 그리고 패전의 상처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오늘날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러한 까닭입니다. (중략) 원치 않는 전쟁을 겪었던 선조들의 비극을 살펴보면서 평화를 위한 지혜로운 길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프롤로그를 읽고 걸음을 옮기면 <인조실록> 인조 14년(1636) 12월 14일 한 구절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상이 돌아와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짧지만 절대 작지 않은 전쟁의 상흔을 남긴 병자호란에 관한 이야기 속으로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오른쪽에는 17세기 명, 청, 조선, 일본의 동북아시아 연표가 한꺼번에 전시되어 타임머신을 탄 듯 시간 여행지로 안내합니다. 맞은편에는 <요계관방도>가 함께합니다. 당시의 중국 북경에서 평양에 이르는 국경 지대의 방어시설 등이 표현된 그림을 따라 병자호란 당시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떠밀려 갑니다.

본격적인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의 <병자호란 이전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가 우리를 맞습니다. 왠지 오늘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한·중·일과 미국, 러시아를 보는 듯합니다.
 
동아시아 국제전쟁(병자호란) 특별전이 진주성 내 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2년 12월 13일부터 2023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성문을 지켜 조선을 살릴 것이다”-김상헌
“성문을 열어 조선을 살릴 것이다”-최명길
특별전 영상 속 척화파와 화친파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동아시아 국제전쟁(병자호란) 특별전이 진주성 내 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2년 12월 13일부터 2023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성문을 지켜 조선을 살릴 것이다”-김상헌 “성문을 열어 조선을 살릴 것이다”-최명길 특별전 영상 속 척화파와 화친파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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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의 대명, 대후금 정책과 사르후 전투(1619)에 관한 전시물들이 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하게 합니다. <청 제국의 성립과 조선의 대응(1628~1636)> 만주에 흩어져 있던 여진족이 통일되어 지역 패권국가로 떠오를 당시의 정세가 펼쳐집니다.

병자호란에 앞선 1627년 정묘호란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었습니다. 후금이 형제 관계를 요구하며 일으킨 전쟁입니다. 정묘호란 9년 뒤 후금이 청나라로 이름을 고쳐 형제 관계가 아니라 군신 관계를 요구하며 벌인 병자호란이 일어납니다. 싸우자는 척화론과 화해를 주장한 주화론과 군사,외교적 대책 관련 자료들이 이미 결과를 아는 처지라 더욱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인조를 비롯한 조정 신료들은 척화를 주장하며 다가올 전란에 대비했다. 그러나 조선은 청군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방어할 적절한 대책이 없었다. 양반은 군역을지지 않았고, 군역의 의무가 없는 노비는 전체 인구의 30~40%에 이르렀다.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한 호패법은 양반의 반발로 큰 성과없이 중단되었다. 또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와 달리 조선을 도울 여력이 없었으며, 평안도 가도에 있는 명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조선이 할 수 있는 것은 산성에 들어가 지구전으로 청군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었다.(<조선의 척화론과 군사, 외교적 대책> 중에서)"

드디어 전쟁은 발발합니다. 청군의 진군로와 조선 근왕병의 전투와 양측의 무기들이 벽면을 가득 채웁니다.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전시물 너머로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45일의 항쟁 속 조선 민중이 어려 있습니다. 영상실로 들어서 앉으면 마주보는 영상 좌우에 척화론자 예조판서 김상헌과 주화론자 이조판서 최명길이 우리를 향해 주장합니다.

"성문을 지켜 조선을 살릴 것이다." - 김상헌
"성문을 열어 조선을 살릴 것이다." - 최명길

 
동아시아 국제전쟁(병자호란) 특별전이 진주성 내 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청태종조유(淸太宗詔諭) 탁본을 전시한 전시실.
 동아시아 국제전쟁(병자호란) 특별전이 진주성 내 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청태종조유(淸太宗詔諭) 탁본을 전시한 전시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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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도 채 되지 않는 영상이지만 몇 번을 보았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영상실을 나오면 <삼전도비> 탁본이 전시실을 메우고 우리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합니다. 긴 글이지만 숨을 고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앞으로 명나라 조정이 준 고명(誥命, 황제가 제후국의 국왕 즉위를 승인한 문서)과 책인(冊印,황제가 제후국의 국왕 즉위를 승인한 것을 증명하는 금인(金印)을 바치고,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끊고, 그들의 연호를 버리고, 일체의 공문서에 우리의 정삭(명나라 연호 대신 청나라 연호를 쓰라는 뜻)을 받들도록 하라. 그리고 그대는 장자와 재일자(또 다른 아들이라는 뜻)를 인질로 삼고, 모든 대신은 아들이 있으면 아들을, 아들이 없으면 동생을 인질로 보내라. 만일 그대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짐이 인질로 삼은 아들을 세워 왕위를 계승하게 할 것이다. (중략) 그대는 이미 죽음 목숨이었는데 짐이 다시 살아나게 했고, 거의 망해가는 종묘사직을 온전하게 하고, 이미 잃었던 그대의 처자를 온전하게 해주었다." - 숭덕 2년(1637) 1월 28일 <청태종조유(淸太宗詔諭)> 중에서 
 
동아시아 국제전쟁(병자호란) 특별전이 진주성 내 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동아시아 국제전쟁(병자호란) 특별전이 진주성 내 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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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의 <지천집>에서는 "포로가 된 사람은 50여만 명이다"라고 하고 나만갑 <병자록>에서는 "작은 해가 뜰 때부터 행군을 시작하였다. 큰길을 가는데 세 줄로 줄을 지어갔다. 우리나라 사람 수백 명이 앞서가고, 오랑캐 두 명이 그 뒤를 따라갔는데, 종일 멈추지 않았다. 훗날 심양의 인구가 60만인데 여기에 몽고에 잡힌 포로는 들어 있지 않았다고 하니 그때 끌려간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라고 당시 포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피로인 수는 4만에서 10만 명, 돌아온 자들은 약 7500명으로 추정합니다. 청나라가 전쟁을 통해 획득한 포로를 중요한 사회, 경제적 인적자원으로 여겼기 때문으로 더 많은 조선 민중이 청나라로 끌려간 것입니다.

병자호란 이후 진실로 고통받은 자는 누구였는지 우리에게 묻습니다. 인조를 비롯한 정치가들의 무책임으로 전쟁 중 죽고 끌려간 조선 민중이었습니다. 진주박물관 <병자호란> 특별전은 동아시아 국제전쟁의 흉터를 잊지 말라고 알려주는 고마운 상처입니다.

태그:#국립진주박물관, #병자호란, #동아시아국제전쟁, #진주성, #영화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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