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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일로 규정되지 않을 권리

"일과 동떨어진 세상을 살기 시작하는 것,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도전이다. 이 도전으로 인해 나 자신은 소소한 즐거움과 호기심 가득한 삶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기분 좋게 나태에 빠지고, 유쾌하게 게으름을 피우는 삶, 곧 일의 억압에서 해방된 삶이다."

21번째 우먼카인드 코리아에 실린 알레시아 시몬즈의 '내 삶이 일로 규정되지 않을 권리'에서 일부 발췌한 글이다. 그는 일이 삶의 많은 부분을 잠식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일을 '그냥, 덜,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재택근무 등을 동반한 탄력근무제 시행을 요구하는 것보다 다소 급진적이더라도 일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삶'에는 다양한 것들 - 친구들과 차 마시기, 하이킹하다 길 잃기, 소설 쓰기 등 - 이 있지만, 무보수 돌봄 노동의 경우에는 여성이 훨씬 더 많이 관여한다는 점 역시 놓치지 않는다. 즉 돌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회의 짐을 '삶'이, 특히 여성의 삶이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일이 내 삶을 규정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노무사 일을 시작한 지 7년 차, 정말이지 도무지 일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일을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치 사춘기가 다시 온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등 나에 대한 모든 게 불확실했다. '나'라는 사람이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단,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내기 더 쉬워 보이는 일로 말이다.

일과 삶의 균형 위해 프리랜서가 됐지만

보통 6시 반에서 7시 사이, 강아지와 산책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1주일에 2~3일은 새벽 요가를 하고, 요가를 하지 않는 날은 스트레칭, 달리기, 가벼운 웨이트 등 간단한 운동이라도 한다. 매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떤다.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 배우고, 고민하고, 시도하는 데에 하루 중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

평일 3시부터 10시까지 필라테스 센터에 출근한다. 필라테스 강사 일을 한 지는 1년이 되어간다. 보통 하루에 2~5개의 수업을 하고 수업이 없는 동안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한다.

얼핏 보면 나는 어느 정도 일과 삶의 균형점을 찾은 듯하다. 어떤 면에서는 일로부터 예전보다 자유로워졌다.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생각할 시간도, 무언가를 창작할 시간도, 그러니깐 '삶'을 살기 위한 시간이 더 많아진 것은 맞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억압받는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억압하는 걸까.
 
프리랜서 필라테스 강사가 됐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프리랜서 필라테스 강사가 됐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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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프리랜서'이기에 겪는 부당함이다. 그렇다. 난 월요일부터 금요일, 3시부터 10시까지 필라테스 센터에 머물지만 프리랜서이다. 임금은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기본급과 수업에 대한 인센티브로 구성된다.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이삿날은 금요일이었고, 오전에 비가 오는 바람에 11시가 되어서야 이사를 시작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오후 3시까지는 출근해야 했기에 비가 너무 미웠다. 심지어 그날은 수업이 5개가 있었고, 다음날에는 오전 10시부터 수업이 있었다. 퇴근해서 겨우 내가 누울 자리만 쓸고 닦는데 너무 화가 났다.

작년 12월 코로나19에 걸렸다. 고열과 몸살 증상이 지속되었고, 이렇게 아픈 건 10년 만에 처음이었다. 확진 사실을 점장에게 알리자, 그는 내게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출근은 해야 한다고 했다. 너무 황당해서 보건소에서 받은 문자를 보내면서, 출근은 못한다고 했다. 12월 월급은 평상시 월급의 70% 수준이었다. 코로나19로 1주일을 출근하지 못 한데다 수업도 못 했으니 예상했던 것이지만 억울했다.

두 번째는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다.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한 활동일 뿐, 그 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특정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직면할 때면 직업에 돈벌이 외에 다른 의미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필라테스 강사 인식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개나 소나 하는 일', '인식이라고 한다면 걍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선인 듯', '노는 언니들의 직업 변천 중 하나, 네일-요가강사-필라테스 강사ㅋㅋ', '머리가 비었다' 등 부정적인 댓글들이 주를 이뤘다.

댓글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아무렇지 않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필라테스 강사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여성이고,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며, 다른 일을 하다가 필라테스 일을 새로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새로운 일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며, 주체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내기 위해 애쓰는 여성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직업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다는 이유로,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9 to 6 일하는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쉽게 무시하고 조롱한다.

그냥, 덜, 일하는 데 필요한 것들

'그냥, 덜, (일)하라.' 나는 그의 말처럼 덜 일 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나는 강아지와 나 자신만 돌보면 된다. 일과 삶에 균형을 잡아내기에 유리하다. 그럼에도 아슬아슬하다.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일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고, 노동시간은 줄었다. 그러나 유급 휴가가 없고, 아파서 일하지 못하면 돈을 벌지 못한다. 그래서 일이 많이 몰릴 때면 무리해서라도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문제다.

한편, 직업을 돈벌이 수단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특성, 누군가의 정체성 전체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내 일이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일이 문제가 아니라 일에 부여하는 '평가'가 문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서는 단순하게 노동시간만 단축하거나, 한 사람만 덜 일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물론 노동시간은 단축해야 하고, 우리 모두 덜 일 해야 한다.) 덜 일 해도 괜찮을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노동을 그저 서로 다른 노동으로서 담백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역시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한울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여성노동건강권팀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에도 실립니다.


태그:#필라테스, #여성_노동자, #프리랜서, #일_삶_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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