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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감상하거나 그리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림에 관계된 정보를 나누고 그림을 보거나 그리면서 생각한 내용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기자말]
나는 작년에 우리 지역 도서관 프로그램에서 집이나 건물 중심으로 어반드로잉을 배웠다. 재미있게 배웠고 흥미가 있어서 요즘에는 어반드로잉으로 그릴 집들을 찾아보다가 박수근의 <판잣집>을 보게 되었다.

단순한 선들,  오래 보고 있으면 따듯함이 느껴지는 색감들, 복잡하지 않은 구도가 따라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전에 도서관에 가서 박수근에 관한 책들을 살펴 보았다.

주변 풍경과 가난한 사람들

우리의 정서를 그림으로 표현해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알려진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우리 현대사의 어려운 시기를 살면서 50여 년 동안 4백 여 점의 그림을 남기고 1965년에 생을 마감했다. 

한국전쟁 중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창신동에 작은 판잣집을 마련하고는 일을 그만둔다. 한국의 밀레를 꿈꾸던 화가는 미군들의 초상화가 아니라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박수근의 그림 소재는 언제나 주변 풍경과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1950년대 서울은 전쟁의 상흔으로 피폐했고 사람들의 삶도 고단했다.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가 죽거나 다쳤고 아이들을 먹이고 길러야 하는 여인들은 노상에  좌판을 벌여 놓고 돈을 벌어야 했다. 

엄마가 일 나가면 여자애들은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다. 그래서 박수근의 그림에는 광주리를 인 여인과 노상에 좌판을 벌이고 있는 아낙네들과 동생을 업고 있는 어린 소녀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은 어디서 살았을까. 화가가 돈을 벌어 구입한 집이 창신동의 작은 판자집이듯 그들 역시 산등성이에 올라앉은 판잣집에서 살았을 것이다. 널빤지를 대강 잘라서 벽과 문을 만든 판잣집은 그 당시 피난민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흔히 살던 집이었다.

내가 본 박수근의 <판잣집>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1950년대 후반에 그린 것이라 추정되는 캔버스 위쪽에 초록빛 나무가 보이는 판잣집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박수근 특유의 토속적이면서 화강암 같은 질감이 느껴진다.

이 거친 질감은 유화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벽과 지붕에 언뜻언뜻 보이는 색들의 다양함이 그 흔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업은 한 번 칠하고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걸리고 인내가 필요한 고단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수채화, 아이패드, 색연필로 표현한 '판잣집' 
 
원본과는 다르게 나무를 겨울나무로 표현해 봄
▲ 박수근의 <판잣집> 수채화로 표현 원본과는 다르게 나무를 겨울나무로 표현해 봄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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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수근의 <판잣집>을 수채화로 표현해 보았다. 수채화는 거친 느낌을 낼 수 없어 평면적이지만 원본의 색감을 살리고 싶어 전반적으로 무채색 느낌으로 칠했다. 나무는 봄을 기다리는 앙상한 겨울나무로 그리고 군데군데 원색의 빨강과 노랑을 넣어 고단한 가운데 삶의 활기와 희망을 표현해 보았다.

또한 박수근 그림의 거친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디지털 페인팅으로 그림을 그려 보았다. 아이패드에는 프로크리에이터라는 앱이 있다. 거기에서 목탄 브러시를 찾아 그려 보았더니 거친 질감이 나타났다.
 
아이패드 프로크리에이터로 그려본 그림
▲ 박수근의 <판잣집>을 디지털 페인팅으로 표현 아이패드 프로크리에이터로 그려본 그림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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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유화 물감이 마르길 기다렸다가 다시 칠하고 또 덧칠을 하는 수고를 했을 텐데 그로부터 70여 년 흐른 지금 나는 디지털 팔레트에서 색을 찾아 아이패드 펜슬로 칠하고 다시 또 색을 찾아 칠하면서 여러 번 덧칠한 효과를 냈다.

또 하나의 <판잣집> 그림은 1956년에 그려진 것이다. 이 그림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아래층은 의자와 진열대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가게들이고 위층은 가로로 긴 창문과 세로로 긴 창문이 자유롭다.

앞서 본 판잣집과 마찬가지로 화가 특유의 화강암 같은 질감이 토속적이고 마애불과 같은 색조는 거칠지만 따듯하게 느껴진다. 가난하고 고단한 삶들이 벽과 창문에 묻어 있을 것 같은 이 <판잣집> 그림을 이번에는 색연필로 표현해 보았다.
 
1956년에 그려진 박수근의 <판잣집>을 수채화 종이에 색연필로 표현
▲ 박수근의 <판잣집> 색연필로 표현 1956년에 그려진 박수근의 <판잣집>을 수채화 종이에 색연필로 표현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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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종이의 우둘투둘한 표면에 색연필을 입히니 거친 질감이 드러났다. 주황, 노랑, 파랑과 같은 원색의 색연필을 여러 번 덧칠했다. 그리고 그 위에 회색과 갈색과 흰색을 입혔다. 

해가 저물어 고단하고 팍팍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이들이 편히 쉬기를 바라면서, 낡고 누추하지만 밝고 환한 내일을 꿈꾸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색을 칠했다.

마침 2월 21일은 박수근 탄생 109년째 되는 날이다. 선생의 탄생일에 맞춰 그의 그림 중 <판잣집>을 따라 그려보게 되어 의미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선생의 고향인 강원도 양구에는 2002년에 건립된 박수근 미술관이 있는데 언젠가 꼭 선생의 그림을 보러 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제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박수근, #그림, #판잣집, #어반드로잉, #디지털 페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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