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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메러디스 교수와의 인터뷰를 위해 찾은 2월 28일 아침, 암스테르담은 비와 눈이 뒤섞여 내리고 있었다. 출근 시간이 다소 지났지만 자전거를 탄 풍경이 간간이 목격되었다. '비가 내리지만...' 이 사람들의 일상은 여전히 자전거다.
▲ 암스테르담 대학교 찾아 가는 길 일행이 메러디스 교수와의 인터뷰를 위해 찾은 2월 28일 아침, 암스테르담은 비와 눈이 뒤섞여 내리고 있었다. 출근 시간이 다소 지났지만 자전거를 탄 풍경이 간간이 목격되었다. '비가 내리지만...' 이 사람들의 일상은 여전히 자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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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위트레흐트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한다. 도시 간 이동을 하는  인터시티(Inter city)를 이용해 이동하는 거리는 대략 40여 km. 시간을 맞추기 위해 오전 8시부터 서둘렀다. 새벽엔 눈이 왔는데 비와 눈이 오락가락하더니 점차 비로 바뀐다. 소요시간은 29분가량.

여정 중에 자연스럽게 이곳의 교통을 전반적으로 체험해 보게 되었다. 위트레흐트로부터의 이동 편은 기차, 암스테르담 안에서의 이동은 트램과 도보다.

출근시간이 조금 지나서인지 거리 풍경은 다소 한가하게 느껴진다. 트램 창 밖으로 자전거를 탄 풍경이 간간이 들어온다. 위트레흐트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확실히 트램이 또 하나의 간선 교통망이라는 게 확인될 정도로 자주 목격된다.

   
지식이전, 정책학습을 연구프로젝트로 하는 메러디스 교수
 
Meredith Glaser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온지 12년째라고 한다. 지식이전, 정책학습이라는 연구 주제를 통해 세계 여러도시에서 네덜란드의 선진적 자전거 도시 모델의 이전에 관한 성공과 실패요인을 분석하고 있다.
▲ 메러디스 글래저 암스테르담대학교 도시 자전거 연구소(UCI) 소장 Meredith Glaser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온지 12년째라고 한다. 지식이전, 정책학습이라는 연구 주제를 통해 세계 여러도시에서 네덜란드의 선진적 자전거 도시 모델의 이전에 관한 성공과 실패요인을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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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러디스 글래서(Meredith Glaser) 교수는 암스테르담 대학교 부설 도시 자전거 연구소(UCI)의 소장을 맡고 있다. "여러분의 일정을 알고 있고 표정을 보니 매우 지친 것처럼 보이는데 그 안의 열정 또한 같이 보이네요"라고 인사했다. "우리는 학사 및 석사과정을 운영하며 전문가를 양성합니다. 아울러 많은 조직과 함께하는데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사기업과도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라고 소개했다.

강연 초반에 사진 몇 장을 가지고 주로 설명을 이어 나간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이곳으로 온 지 12년인데 어느 날 문득 집 앞의 광경을 보고서 놀랐다고 한다. 아이들의 통학시간인데 집 앞의 풍경이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는 것이다. 학교 가는 아이들을 위해 자동차로 붐비는 대신에 아이들과 어른들이 자전거로 움직이는데서 깊은 영감을 얻기 시작했다고 한다. 같은 공간을 전혀 다르게 활용할 수 있고 문화적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몇 장의 사진에 관한 설명을 이어간다. 하나는 한참 도시 안에서의 아이들의 교통사고에 대한 항의 시위 '도로에서의 살인을 멈춰라' 사진을 설명한다. 또 하나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암스테르담에서 반전평화 시위를 펼치면서 침대 위에 올려두었던 자전거 사진이다. 또 하나는 도로 위에서 죽어 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끔찍한 현실을 항의하기 위한 시위 사진.

'교통'과 같이 협소한 영역이 아니라 아이들의 안전이나 환경, 인권 평화 등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 "자전거가 도시를 바꾸는데 중요한 수단이자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본질적인 변화를 위한 다양한 요구의 상징이어야 하지 교통, 환경, 문화등 하나의 영역으로 협소하게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좌측 위는 자동차로 번잡하던 도로가 평화롭게 바뀐 예를 든 사진으로 메러디스 교수 본인이 직접 겪은 영감임을 강조했다. 우측 위 사진은 예를 든 내용들이 담겨있는 사진이다.
▲ 강연중 언급된 사진들 좌측 위는 자동차로 번잡하던 도로가 평화롭게 바뀐 예를 든 사진으로 메러디스 교수 본인이 직접 겪은 영감임을 강조했다. 우측 위 사진은 예를 든 내용들이 담겨있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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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문지기(gate keeper)라는 표현을 들어 설명한다. 암스테르담의 한 블록에서 상가들의 요구를 담아내는 역할을 하던 한 여성에 의해 시작된 이야기를 전한다. '사람들이 좀 더 쉬어 갈 수 있는 공간, 미적으로 좀 더 아름다운 공간'을 시청에 요구하는 것이었다고. 자동차 중심의 도로구조에서 사람중심으로 바뀌게 되는 건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2시간여의 이 강연이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줬는지는 알 수 없다. 차라리 좀 더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해 가는 게 더 낫지 않았나 싶은 의견을 표하는 일행들도 있었다. 강연 중 메러디스 교수는 여러 경우를 봤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을 비롯한 선진지의 여러 모습에 깊은 인상을 가지고 돌아가지만 이내 바뀌지 않는 현실에 우울해지고 마는 경우를 많이 봐서일까? 아마도 언급한 우울은 위로와 격려를 위해 사용된 단어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네덜란드에서의 마지막 일정, 또 다른 영감을 주는 하우턴으로

오전에 하우턴 시청을 방문후 독일로 넘어가는 3월 1일이다. 애초 숙소에서 하우턴 시청까지 직선거리 9km가량인지라 자전거를 타고 다녀와서 뮌스터로 넘어갈 계획을 짰었다. 저녁에 잡힌 ADFC(독일 자전거 사용자 연맹) 뮌스터란드 지부와의 간담회를 맞추기 위해 차량을 이용한 이동으로 변경되었다.

이날 점심식사를 같이 한 안드레아 보더만(하우턴 국제자전거 대사) 씨가 "왜 자전거가 아닌 버스를 타고 하우턴을 찾았는지"에 관한 의구심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이동 동선상의 고려라는 설명에 납득을 했지만 실제 하우턴을 찾는 건 자전거가 훨씬 빠르고 편하다고 한다. 보더만씨도 위트레흐트으로의 잦은 이동시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탄다고 한다.

'하우턴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로 말문을 뗀 보더만 씨의 발제는 이 도시의 형성과정과 현재에 관한 이야기였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확인했지만 우리에게도 소개된 바 있는 하우턴에 관해 다소 잘못 알려진 점이 확인된다.

혹시나 싶어 물어봤다. "한국에서 하우턴을 다녀간 적 있는지?"에 관한 질문에 보더만 씨는 "이번 일행이 처음"이라고 한다. 추가적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이전에 소개된 내용으로 볼때 위트레흐트의 인구증가를 흡수하기 위한 베드타운, 즉 위성도시로 설계되는 과정에 하우턴 주민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보행 친화적이고 자전거로 편한 도시로 계획이 변경된 사례로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에 보더만씨가 답한다. "그렇게 오해했을 수도 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또 실제 두 도시 간에 출퇴근이 이뤄지기도 하니..."라며 설명을 이어간다.  

 
좌측 위부터(시계방향). 1970년이전까지의 하우턴의 원형이다. 인구 3000명 가량의 이 도시는 1972년의 도시계획에 따라 우측 우쪽의 형태로 1차 성장한다. 이때의 인구규모는 3만명. 다시 2000년대 쌍둥이 모양의 성장구역을 설정하고 5만명의 시민이 사는 공간으로 2차 확장을 하게 된다.
▲ 하우턴의 도시계획 변천사 좌측 위부터(시계방향). 1970년이전까지의 하우턴의 원형이다. 인구 3000명 가량의 이 도시는 1972년의 도시계획에 따라 우측 우쪽의 형태로 1차 성장한다. 이때의 인구규모는 3만명. 다시 2000년대 쌍둥이 모양의 성장구역을 설정하고 5만명의 시민이 사는 공간으로 2차 확장을 하게 된다.
ⓒ 네덜란드 하우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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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와 발제 및 질의응답을 종합하면 하우턴의 도시계획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860년대부터 시작된 하우턴은 시골의 작은 마을이었다. 많은 도시가 자동차 도시로 바뀌는 동안에도 나뭇잎 안의 작은 줄기처럼 이어진 도로망과 그 주변에 사는 몇몇 마을이 이룬 도시로의 정체성을 이어왔다.

1972년에 도시의 확장에 관한 내용을 다룬 도시계획 과정에서도 이는 이어갔다고 한다. Henk Bijleveld 시장 시절에 설계된 이 도시계획은 3만을 수용하는 자전거 도시로의 정체성을 이 시절에 확립했다. 그후 다시 유입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도시계획에도 기조가 유지돼 쌍둥이 모양의 블록을 추가해 오늘날의 링로드 모양을 갖추게 됐다.

발제 중 소개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자에 주목한 한승우 전주시의원의 "그 당시에 이런 철학을 확립한 것이 매우 놀랍다. 그때의 선각자들이 깊게 관여한 것인지에 궁금하다"는 질문에 대해 "당시 도시계획에 관여했던 Wissing-Derks라는 분에게 깊은 영감을 준 것은 맞는 것 같다"라는 말로 설명을 한다.

 
에른스트 슈마허에 의해 저술된 이 책은 생태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고 한다. 이날 발제에서도 언급된 이 책이 1970년대 아직 '자전거 도시'라는 개념조차 성립되어 있지 않은 시대의 하우턴이라는 도시가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는 방향을 설정하는데 영감을 준것으로 언급되었다.
▲ 보더만 씨의 발제중 언급된 "작은 것이 아름답다" 에른스트 슈마허에 의해 저술된 이 책은 생태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고 한다. 이날 발제에서도 언급된 이 책이 1970년대 아직 '자전거 도시'라는 개념조차 성립되어 있지 않은 시대의 하우턴이라는 도시가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는 방향을 설정하는데 영감을 준것으로 언급되었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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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우턴을 한 바퀴 도는 내내 많은 시민들이 인사를 한다. "이 일행들은 어디서 온 거죠?"라며 궁금해 말을 건넨다. 보더만씨의 직무상 방문객과의 투어인줄 짐작하는 모양이다. 우리에게도 말을 건넨다. "Where are you from?"

보더만씨는 "하우턴에 시민들은 위트레흐트뿐 아니라 인근 도시로 출퇴근하는 교수 등의 계층이 많이 살고 있다. 위성도시라는 개념은 우리에게는 맞지 않을 것이다. 외곽에 주차를 하고 자동차를 통해 출퇴근을 하지만, 도시 안에서 보고 있듯 이렇게 생활한다. 파리가 15분 도시를 이야기하지만 우리 도시는 8분도시라 할 수 있다. 이미 오래 전에 그런 개념을 세워왔다"라고 설명했다. 말하는 내내 자부심이 느껴진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었다. 우리가 펼친 깃발을 보고 지나가던 시민이 이렇게 말한다.

"No problem!", 우리의 "Do you think a bicycle is sufficient as a vehicle?"에 대한 답이었다.

 
▲ 2023 자전거 원정대 하우턴을 달리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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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자전거 원정대, #암스테르담 자전거, #하우턴 자전거, #메러디스 글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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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한의사, 자전거 도시가 만들어지기를 꿈꾸는 중년 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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