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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3월 31일 오전 10시 춘천지방법원 제102호 법정에서 51년 만에 재심이 개시된 재심공판은 고작 10분이라는 시간 만에 끝나버렸다. 51년 전 납북귀환어부라는 이유로 갖은 고문과 불법 수사로 처벌받고, '전과자'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피해자들은 이날 진실규명이라는 커다란 기대를 품고 법원을 찾았지만 검사의 '준비 부족'으로 진실을 다퉈보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관련기사: 10분만에 재판 끝... 피해자 두 번 울린 검찰 https://omn.kr/23cfg).

이날 30명이 넘는 피해자들은 강원도 고성에서, 속초에서, 강릉에서, 동해에서 새벽차를 타고 춘천을 향했으며, 승운호 기관장은 전남 보성에서 하루 전에 출발해 춘천에서 숙박을 하며 참석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93세 노령의 피해자도 이날 재판을 위해 어렵게 춘천법원을 찾았다.

이렇게 어렵게 떨리는 마음으로 재판에 참석했던 피해자들에게 돌아온 검사의 한마디는 "사건이 복잡해 검찰의 입장이 아직 정리되지 않아 연기를 요청합니다"였다.

납득 못할 검사의 재판 연기 

이러한 검찰의 연기 이유는 납북귀환어부들에게는 조금도 납득되지 않았다. 이미 지난해 11월 7일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이 사건의 검토는 재판이 열리기까지 무려 4개월이라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 하물며 이 사건의 공판기일 2개월 전부터 공판이 열릴 것이라는 기일통지도 전달된 상태였다.

재심개시가 결정된 뒤 4개월, 공판이 열린다는 통지가 전달된 2개월 동안 검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입장도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민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검찰의 기존 입장이나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한다는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의 발언은 지역 검찰청과 검사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검찰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한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이 4월 12일 대검찰청 앞을 찾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납북귀환어부 재심 재판에서 검찰의 직무유기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들
 납북귀환어부 재심 재판에서 검찰의 직무유기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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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12월 22일 속초지청을 방문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속초지청의 납북귀환어부 직권 재심 신청과 관련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오랫동안 고통 받은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필요한 조치 의무"를 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춘천지검 검사의 연기 요청에서 적어도 장관이 말한 검찰의 '필요한 조치 의무'가 성실히 이행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검찰의 최고 수장인 검찰총장은 지난해 10월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언급하며 서해 공무원 이대준씨가 월북했다는 논란에 대해 "(월북이라고)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 하는 것은 유족들이나 우리 국민들에게 굉장히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 춘천지검 검사는 납북귀환어부들에 대한 검찰의 재판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말은 기존 납북귀환어부들에 대한 기소 입장이 유지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힐 소지가 크다. 결국 피해자들은 검찰이 납북귀환어부들을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자로 계속 규정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분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
 
납북귀환어부 피해자가 대검찰청에 제출하는 진정서 내용의 일부
 납북귀환어부 피해자가 대검찰청에 제출하는 진정서 내용의 일부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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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탄핵도 불사할 것"

51년 만에 열린 재심 법정에서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은 국가 폭력에 의해 낙인찍힌 '국가보안법 위반자'라는 주홍글씨를 벗어던지길 기대했으나 검찰의 무책임한 태도로 다시 한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었다.

납북귀환어부의 재심 재판 등을 맡고 있는 최정규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과 유족 그리고 법률 대리인은 무성의한 태도로 재판에 임하고 있는 검찰의 태도를 규탄하며 직무를 유기하는 검사 등을 공수처에 고발할 예정이다. 그리고 흔들리는 사법기관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국회에서 검사 탄핵도 불사할 것"이라며 검찰을 비판했다.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김영수씨가 납북귀환어부 불법 수사를 비판하고 검찰이 제대로 재심 재판에 임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김영수씨가 납북귀환어부 불법 수사를 비판하고 검찰이 제대로 재심 재판에 임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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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검찰청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연 피해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납북귀환어부 재판을 지켜보며 검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담당자에게는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검찰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중학생 나이에 승해호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로 처벌받고, 수년 뒤 간첩으로 조작되어 10년 이상 징역형을 살고 나온 김영수씨는 "아버지의 생일 잔상을 차려드리려고 오징어 배를 탔다가 납북되었으나 귀환한 대한민국은 따뜻한 가족의 품이 아닌 무자비한 경찰이었다"라며 "본 사건의 자료가 준비 안 되어 재판을 할 수 없다는 검사의 무책임한 행동은 50년을 기다려온 피해자를 짓밟고 두 번 죽이는 처사로 검찰은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은 이날 법률대리인을 통해 대검찰청에 진정서를 접수하는 한편 춘천지검 관련 검사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연재기사] 납북귀환어부 이야기(https://omn.kr/1z3la)

태그:#FIGHTING CHANCE, #원곡, #파이팅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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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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