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기 세계여행을 나섰습니다. 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를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음식 한 접시는 현지인의 환경과 삶의 압축판이요 정체성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기자말]
독일 철도국에서 파업을 한다고 메일이 왔다. 파업 시작일이 하필 내가 베를린에서 드레스덴 가는 기차를 타는 날이다. 철도와 전철, 버스가 전국적으로 파업을 하고 공항도 지장이 있을 거라고 한다. 온 나라가 일제히 멈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가늠이 되지 않는다. 파업이 하루 만에 끝나지 않으면 그날 드레스덴은 물론 다음날 프라하 가는 기차도 문제가 생긴다. 프라하에 가야 더블린으로 넘어가는 항공편에 지장이 없다. 일정이 물고 물려 있다.

잘못하다가는 베를린에서 발이 묶일 수도 있다. 드레스덴은 포기하고 프라하로 곧장 가되, 파업 하루 전날 아예 베를린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베를린역에 갔다. 폰의 앱 기차표를 보여주니 직원이 종이 티켓을 출력해 '스트라이크(STREIK 독일어로 '파업')'라고 사유를 적고 도장을 찍어줬다. 기차 편은 해결되었다. 대신 베를린과 드레스덴의 호텔비를 날렸고 프라하에서 이틀 치 숙박을 새로 구해야 했다.
 
베를린 기차역. 역사 안으로 전철이 다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베를린 기차역. 역사 안으로 전철이 다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 김상희

관련사진보기

  
역무원이 수기로 작성하고 스탬프를 찍어준 기차표. 'STREIK(독일어로 파업을 뜻함)'가 선명하다.
 역무원이 수기로 작성하고 스탬프를 찍어준 기차표. 'STREIK(독일어로 파업을 뜻함)'가 선명하다.
ⓒ 김상희

관련사진보기


이제 베를린이 내게 허락한 날은 단 하루. 단 한 끼의 식사만이 남았다. 뭘 먹어야 할까? 베를린은 영국군이 전해줬다는 노란 카레 가루를 소시지 위에 뿌려 먹는 커리부어스트(Currywurst)가 유명하다. 우리나라 떡볶이처럼 길거리에서 흔히 팔고 맥주 안주로도 먹고 빵에 끼워 간식으로도 먹는다.

그런데 베를린 원조 먹거리인 카레부어스트를 능가하는 길거리 음식이 있다고 한다. 인기 정도가 아니라 베를리너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니 궁금하다. 되네르케밥(Doner Kebab)이다. 파업 때문에 하루 일찍 베를린을 뜨게 된 이 마당에 베를린은 나한테 맛있는 케밥 하나 먹여줘야 하지 않을까?

유명하다는 케밥집은 앉을 자리도 없는 노점이었다. 평소 웨이팅이라면 질색을 하는데 타국에서 일부러 찾아간 게 억울해서 줄을 섰다. 한국 기준으로 30분이면 될 것 같은데 좀처럼 줄이 줄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내 앞보다 내 뒤에 늘어선 줄이 더 길다. 이젠 포기할 수 없다. 이런 심리가 지루한 웨이팅을 가능하게 하나 보다.
 
케밥 한 개를 위해 기다리는 다국적 사람들
 케밥 한 개를 위해 기다리는 다국적 사람들
ⓒ 김상희

관련사진보기


꼬박 한 시간 반을 기다려 케밥 하나를 받아 들었다. 한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야전의 전리품이다. 이걸 들고 어딜 갈 수도 없고 길거리에서 그냥 먹어야 했다. 케밥집 앞은 케밥 기다리는 줄과 케밥을 들고 먹는 줄이 병렬이 되었다. 이 자체가 베를린 명물 볼거리다.
 
오랜 기다림 끝에?받아 든?"오 마이 케밥!"
 오랜 기다림 끝에?받아 든?"오 마이 케밥!"
ⓒ 김상희

관련사진보기


케밥은 명성답게 맛도 좋고 양도 푸짐했다. 가격이 7.1유로니 우리 돈 만 원이다. 물가 비싼 독일에서 사랑받을 만하다. 간편하고 빠르다. 싸고 맛있다. 길거리 음식의 덕목을 다 갖추었다.

케밥 만드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양념한 닭고기를 원통형으로 쌓은 회전기구(로티세리 Rotisseri)가 천천히 돌면서 고기를 익힌다. 바싹하게 익은 바깥쪽 고기를 칼로 잘게 저며 두툼한 빵 사이에 넣는다.

그런 다음 기름에 튀긴 감자, 호박, 가지와 생야채 양파, 당근, 고수를 넣고 소스를 뿌린다. 마지막으로 올린 흰색의 리코타치즈가 신의 한 수였다. 상큼하고 촉촉할 뿐 아니라 색감을 극대화시켜 품위 있는 케밥이 완성되었다.
 
볼 때마다 신기한 케밥집의 고기 회전 기구
 볼 때마다 신기한 케밥집의 고기 회전 기구
ⓒ 김상희

관련사진보기


이민자 많은 독일에서 최고의 이민자 비율을 자랑하는 나라가 튀르키예이고 그들의 식문화 역시 따라 들어와 독일 사회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독일 대도시마다 동네 케밥집이 코너만 돌면 존재하는 이유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갔던 케밥집은 시간대 불문하고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현지 무슬림들의 사랑방이었다. 독일에서 물보다 더 많이 마신다는 '흔한 맥주' 한 잔 없이 그렇게 유쾌할 수 있다니 그들의 문화가 놀라웠다.

그곳에서 맛본 아다나(Adana)케밥 때문이라도 케밥 원조국 튀르키예에 가보고 싶어졌다. 커민(cumin, 쯔란) 가루와 환상의 단짝이었던 양꼬치의 불맛은 잊을 수가 없다.
 
양고기로 만든 떡갈비 꼬치구이라고나 할까,?아다나(Adana)케밥
 양고기로 만든 떡갈비 꼬치구이라고나 할까,?아다나(Adana)케밥
ⓒ 김상희

관련사진보기


베를린을 여행한다면 튀르키예식 얇은 또띠야에 말은 케밥이 아닌, 독일식 두툼한 빵과 소스로 독일 현지화를 거친 베를린 케밥을 맛보기를 권한다. 중국에서 건너와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된 우리나라 자장면처럼 말이다. 

튀르키예인에게 척박한 타국살이를 살아내게 한 케밥 한 개는, 매 끼니마다 뭘 찾아 먹을지 서바이벌 하는 여행자에게도 여행을 이어가게 하는 응원이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독일여행, #베를린여행, #베를린음식, #케밥, #되네르케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활여행자입니다. 여행이 일상이고 생활이 여행인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과 기억을 '쌓기 위해' 기록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