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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전 12시 50분. 당시 나는 연휴를 앞두고 느즈막이 잠을 청하려던 차였다. 내가 자취하는 당산동은 자정을 넘기면 꽤 조용하다. 외부 소음은 간간히 들려 오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전부다. 연휴 전날이었지만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물론 창문 밖도 고요했다. 평소처럼 말이다. 

집 안의 불을 끄고 막 눈을 감을 찰나, 어디선가 '쿵쿵쿵' 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소리가 가까운 걸 보니 바로 옆 집이었다. 처음엔 그저 배달 기사님이나 옆집 친구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손으로 거칠게 두들기는 듯한 소리는 5분, 10분 넘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쾅!" 나는 화들짝 놀라 작은 등을 켜고 침대 끝에 몸을 붙여 앉았다. 그는 이젠 발로 문짝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초인종도 끊임없이 눌러댔다. 띵동, 띵동. 쾅, 쾅! 어찌나 소란스러웠던지 뭔 일인지 확인하려는 듯 다른 집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도 두어 번 들렸다.

그는 30여 분 넘게 난동을 피웠다. 새벽에 뭔 소란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문을 열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가 무슨 의도로 그 집의 문을 두드리는지도 모를 뿐더러 흉기를 소지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연이은 소음은 나를 공포로 몰아 넣기 충분했다. 혼자 산다는 게 이렇게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는가.

문득 최근에 봤던 뉴스가 필름처럼 눈 앞에 스쳐 지나갔다. 데이트 폭력을 당한 여성이 피해자 조사를 마치고 나온 직후 지하 주차장에 숨어 있던 상대 남성에게 무참히 살인당한 사건. 혹시, 지금 저 사람이 두드리는 그 집 안에 누군가가 공포에 떨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곧장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 "안녕하세요, 여기 ㅇㅇ빌라인데요. 지금 어떤 사람이 다른 집 문을 엄청 두들기고 초인종을 계속 눌러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날까 무서워서..." 경찰은 한두 가지만 더 추가로 확인 한 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곧장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
 나는 곧장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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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찰이 정말 빠르다는 걸 그 때 새삼 깨달았다.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경찰 두 분이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고. 내가 사는 층으로 신속하게 올라왔다.

"여기 사는 사람이에요? 왜 남의 집 문을 이 야밤에 두드려요? 누구 집인데요?"

문 밖으로 경찰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고, 그 뒤로 술에 취한 듯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웅얼웅얼 들렸다. 남자는 곧장 빌라 밖으로 연행됐고, 나는 창문을 통해 모든 상황을 지켜봤다. 이어 핸드폰으로 걸려 온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남자는 친구의 집에 함께 있다가 잠깐 볼 일을 보러 밖으로 나왔는데, 그 사이에 친구가 잠에 들어버려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 경찰은 지금 신원을 확인 중이며 더이상 소란은 없을 거라 안심시켰다.

"빠르게 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수고하세요" 나는 말맺음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긴장이 스르륵 풀렸다. 내가 혹시 별거 아닌 소동으로 신고를 해 경찰 분들을 번거롭게 한 건 아닐까. 순간 죄송스러운 마음이 안도감과 교차했다. 어찌보면 사소한 소음이다. 그저 평소보다 시끄러운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받아들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간 뉴스에서 보도되어 온 수많은 사건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전 애인의 집에 침입해 온 가족을 살인하고, 친구끼리 다투다 흉기를 휘두르고, 아이가 입양부모로부터 갖은 폭행을 당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조금 더 가까이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 멀리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간절히 외치는 목소리를. 조금 더 크게 눈을 뜨면 보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깡마른 뼈대와 시퍼렇게 멍든 자국을.

괜찮아, 누가 신고하겠지 뭐. 경찰을 부를 정도로 심각한 일은 아닐 거야. 다른 집안 일인데 오지랖은. 내 한 순간의 안일한 생각과 판단이 누군가의 일생까지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적극적인 신고 감사드리며 100점 만점 영등포경찰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당산지구대로부터 날라 온 문자에 긴 한숨을 쉬었다. 내가 사는 빌라와 동네는, 오늘도 무사했다.

우리가 사는 집이라는 공간이 모두에게 안전하고 따스한 안식처가 남아주길. 그리고 하루하루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는 밤을 보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태그:#경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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