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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이 존폐 위기에 처했다. 서사원은 공공 돌봄서비스 기관으로 수익성 없는 사업에 앞장서 왔다. 코로나19 시기 민간이 기피했던 돌봄의 최전선에 투입되기도 했다. 이처럼 '돌봄 사각지대'에서 일해 온 직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서사원은 사실상 문을 닫는다. 서울시는 ▲142억 예산 삭감 ▲근로 계약 연장 중단 ▲일부 센터 운영 종료 등 서사원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민간 공급자 육성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서사원 건물 내 노조와의 단협을 해지한 황정일 서사원 대표를 규탄하는 선전물이 부착됐다.
▲ 서사원 노조, "단협 해지 규탄" 서사원 건물 내 노조와의 단협을 해지한 황정일 서사원 대표를 규탄하는 선전물이 부착됐다.
ⓒ 임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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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노동자 쏙 빠진 돌봄 논의

"어쩌다 보니 요양보호사가 됐지만 직업으로 권하고 싶진 않아요." 

기자가 만난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소속 요양보호사 A씨가 말했다. 그는 요양보호사를 '우리 엄마 밥해주고 청소해 주고 빨래해 주는 사람', '파출부 아줌마'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요양보호 서비스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요양 보호사의 근무 환경 개선은 미미한 수준이다. 열악한 근무 환경은 사회적 인식 부재로 이어진다. 자격증을 요구하는 전문 영역임에도 희망하는 이들이 적은 이유기도 하다.

"20~30대가 없어요. 젊은 층이 들어와야 하는데 누가 들어오겠냐고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지부장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전문가로서 직업의식을 가지고 일하기 위해서는 고용 안정과 임금 보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제시하는 복지전략 핵심과제 중 하나는 '사회서비스 고도화'다.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전문성과 지속성을 갖춘 사람들이 해당 분야에 종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통해 '15년을 일해도 최저시급을 간신히 받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일자리는 청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없다'며 사회 서비스 개선 논의에서 노동자 처우 개선이 배제된 현 사태에 우려를 표했다.

모두가 곤혹… '직업소개소'만 웃는다

민간 현장에 정해진 '갑과 을'은 없다. 돌봄 서비스 이용자는 방문할 노동자를 선택할 수 있으며 근무 시간 등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러나 노동자 또한 중개 받은 이용자를 거부할 수 있다. 결국 '갑과 을'은 '개인이 처한 사정'이 결정한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불안정한 힘겨루기는 양측 모두에게 긍정적이지 못하다.

노동 시간이 이용자의 편의에 의해 결정되다 보니 곤혹스러운 일도 잦다. 출근 중 당일 일정 변경 통보를 받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용자에게 '오늘은 안 와도 된다'고 연락을 받으면 문 앞까지 왔어도 돌아가야 해요. 1시간 일해 9천원 받고 교통비로 3천원을 쓴 적도 있습니다."

민간 현장에서 시급을 받으며 일했던 요양보호사 A씨의 경험담이다.

한편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이용자는 '을'이 된다. 돌봄 난도가 높거나 주거 환경이 열악할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기피 대상'의 다수는 절대적으로 돌봄에 의지해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이다. 높은 비용을 지불하기 어려운 경우도 흔하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갈등도 해결하기 어렵다. 국가에서 부여한 시간을 민간 기업을 통해 사용하게 하고, 지원받은 비용을 기업과 노동자가 일정 비율로 나누어 가져야 하는 이 시스템에서 '이용자는 곧 돈'이다. 문제가 생겨도 노동자를 교체하는 데 그칠 뿐 이상의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이유다.

갑질 등 심각한 문제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기업이 나서서 이용자에게 주의를 주고 상황을 개선하기란 쉽지 않다. 이용자가 다른 기업을 이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악성 이용자'로 남게 된다.
 
'사회서비스 공공성 후퇴시키는 윤석열 정부 복지전략 규탄 기자회견'에서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 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 발언 중인 서사원노조 오대희 지부장 '사회서비스 공공성 후퇴시키는 윤석열 정부 복지전략 규탄 기자회견'에서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 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 임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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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 서사원 대표는 서사원을 사실상 민간 기관으로 변경하는 자구안을 내놓았다. 서사원 직원들이 민간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직원들이 '지나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지적에 오 지부장은 "서사원 직원들은 월 단위의 안정적인 급여를 받는 대신 회사에서 지시하는 대로 움직인다"라며 "이윤을 두고 저울질하며 돈 많은 이용자, 돈 적은 이용자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서사원 운영 방식"이라고 밝혔다. 이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은 갈등 해결에 있어 공공 돌봄 기관이 탁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용자와 노동자가 감정적인 관계를 맺는 돌봄 노동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인력 교체를 통한 일시적 문제 해결은 양측에 상처를 남긴다. 대화와 조정을 통해 갈등을 중재하는 쪽이 바람직하다.

코로나19 종료되니 '토사구팽'

한국 요양보호사의 평균 연령은 60세다. 민간의 경우 70대 이상 고령 노동자가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있을 만큼 요양보호사 평균 연령대는 높다. 서사원 돌봄노동자들이 '촉탁직 재고용'에 절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촉탁 계약은 정년퇴직 후에도 연 단위로 체결하는 근로계약을 말한다. 정년이 지난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연령대가 높은 경우 입사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정년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고려하여 서사원 노동자들은 63세까지 촉탁 계약을 통해 일할 수 있다.

촉탁 계약의 근거가 되는 단체협약은 코로나19로 돌봄 인력이 한창 부족했을 당시 체결됐다. 서사원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시기 모두가 기피하는 돌봄의 최전선에서 일함으로써 촉탁 계약제도를 약속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된 지금 서사원은 촉탁직 노동자들과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돌아오는 7월부터 정년이 지난 노동자들은 서사원을 떠나야 한다. 현재 직원들의 잇따른 퇴사로 남은 이들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대체 인력이 없어 휴가조차 제대로 쓸 수 없고 업무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실제로 재가센터 현장 근무자가 회계업무를 맡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또 다른 직원이 퇴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6월 27일 전쟁기념관 앞에서 '사회서비스 공공성 후퇴시키는 윤석열 정부 복지전략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 "사회서비스 공공성 실현하라!" 돌봄 노동자의 외침 지난 6월 27일 전쟁기념관 앞에서 '사회서비스 공공성 후퇴시키는 윤석열 정부 복지전략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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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 희박했던 돌봄의 미래가 사라지면

황 대표는 서사원 직원이 국내 돌봄서비스 인력의 0.24%를 차지할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서사원이 '소수를 위한 기관'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서사원이 기존의 방식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오 지부장은 '발버둥쳐도 여전히 모든 이용자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공공 돌봄 기관인 서사원이 운영되는 지금도 돌봄 사각지대 문제는 현재 진행형임을 시사했다. 열악한 현장을 비롯해 장애통합교육, 다문화교육 등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는 기피 대상이 된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이러한 사업들을 민간 기업에서 책임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저출생·고령화가 사회 문제로 거론되며 돌봄 영역의 중요성은 점점 강조되는 추세다.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국민이 체감하는 선진 복지국가 전략'에서도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한 '사회서비스 고도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보편 복지의 성격이 짙은 돌봄 영역이 정부 재정에 '의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 민간 기관에 '의존'하는 방법으로는 사회서비스 개선을 이루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오 지부장은 "이윤 중심의 서비스가 아닌 권리 중심의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서사원 운영 지속에 대한 소망을 표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언론인권센터 청년기자단 5기 활동의 일부로 작성됐습니다.


태그:##서울시사회서비스원, ##서사원, ##공공돌봄, ##돌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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