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빠를 놀리고 있다
▲ 아빠 육아 중 아빠를 놀리고 있다
ⓒ 박진현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이 어릴 때다. 남들한테 "불쌍하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같은 일을 하는 남성 동료에게도 듣기도 하고,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여성 조합원에게 자주 들었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집에서 주로 내 역할은 아침밥 하기, 아이와 놀아주기, 아내보다 먼저 퇴근하면 저녁밥 하기, 쓰레기 버리기, 그리고 둘째 자기 전에 책 읽기 등이다. 첫째는 올해 중학생이 되면서 '놀아주기'와 '책읽기'는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만 누리는 특권이 됐다.

불과 몇 년 전이다. 그 때는 개인적인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시원한 맥주나 소주 한잔 먹으러 가는 날은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온전한 나만의 시간은 주로 아이들 재우고 나서다. 그마저도 업무가 많으면 그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졸린 눈을 비벼가면 일을 했다.

장시간 노동사회인 한국에서 육아와 가사는 주로 여성의 몫이다. 누군가 육아와 가사노동의 책임을 옴팡 뒤집어써야 장시간 노동사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했냐고? 감히 말한 건데 '평등육아'를 했다. 아이가 둘이라 육아휴직도 두 번 했다. 길지는 않았지만 한 때 한겨레신문, 베이비트리에 '박진현 평등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빠의 육아휴직'이라는 제목으로 KBS '사람과 사람'이라는 다큐 프로그램에도 나왔다.

둘째 은유가 5살일 때 자기가 크면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아빠랑 결혼하겠다는 아들은 찾아보기 힘들건데"라며 웃었다. 그 말을 들은 5살 은유는 "아빠가 좋아. 아빠가 따뜻해"라고 말했다. 평등육아를 한 덕분에 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지금도 그렇다. 중학생 1학년 남학생 윤슬이도, 초등학교 3학년 은유도 "아빠 사랑해"를 종종 말한다.

돌봄에 대한 '가치 절하'부터 바로잡아야 

제주에서 살 때 구성원 모두가 엄마인 육아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중 한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커서 어떻게 자랄지 궁금하다"고. 최소한 돌봄을 '가치 없는 노동'으로 취급하는 남자로 크지는 않을 것 같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지난해 9월 SNS에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만 원~76만 원 수준"이라며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도입정책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조정훈 의원은 최저임금 없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까지 꺼내들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거들었다.

부끄럽게도 모두 남자다. 아이를 직접 돌보는 일을 해봤더라면 그 일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시범 도입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저임금 가사근로자 제도를 도입해 가정의 육아 부담을 덜고, 저출생 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취지인데, 돌봄에 대한 '가치 절하'가 깔려있다. 육아는 아무나 할 수 있고 때론 최저임금도 아까우며 더구나 '외국인 이모님'이라면 더 싼값에 부려도 된다는 인식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들었을 생각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서울 지역 맞벌이, 한부모 가정 등에서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사업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월급은 국내 최저임금을 적용해 200만 원 선이 된다. 정부 계획안에 따르면 시범사업은 서울 전체 자치구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도입규모는 100여 명이다. 외국인 가사 근로자가 일하는 기간은 최소 6개월이다.

'외국인 가사근로자'가 저출생에 도움이 될까. 지난 5월 25일 고용노동부 주최로 열린 '외국인 가사노동자 관련 공개토론회'에서 홍콩,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아시아 4개국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했지만, 합계출생률 증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조현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 사례 및 시사점' 발제문에서 "외국인 가사 노동자 제도 도입의 주요 정책 목표로 여겨지는 저출생 극복과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 증가는 아시아 4개 국가에서 통계상 유의미한 관계를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4개국 합계출생률이 모두 감소하는 추세, 특히 홍콩, 대만은 2020년부터 합계출생률이 1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홍콩, 싱가포르는 1970년대, 대만은 1990년대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은 2017년부터 도쿄, 오사카 등 6개 특별구역에서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아시아 4개국 사례에서 보듯이 저출생 근본대책은 성평등 강화와 노동시간 단축이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아니다. 스웨덴은 경우 2022년 합계출생률이 1.52이다. 스웨덴도 합계출생률이 하락하는 추세지만, 한국의 0.78 비교했을 때 두 배 정도 높다. 스웨덴의 성평등 정책은 '가정의 성평등'에서 구현되면 확실한 '저출산 해법'으로 부각됐다. '보육의 성평등'은 지금까지도 스웨덴 가족정책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개념이다.

세계 최로로 도입한 '의무 부성휴가'도 그렇게 나온 정책이다. 현재 스웨덴에선 부모 각자에게 240일간 육아휴직이 제공된다. 이 중 90일은 반드시 아빠가 사용해야 한다. 스웨덴도 합계출생률이 2016년 1.85에서 2022년 1.52로 떨어져서 이런저런 고민이 크다. 하지만 한국 사회처럼 '돌봄노동'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값싼 노동력 활용'이라는 저렴한 아이디어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다. 둘을 데리고 목욕탕을 가는 길에서 "에휴... 힘들어"라는 말이 내 입에서 절로 나왔다. 이 말을 들은 윤슬이가 "아빠 고생이지. 힘내"라고 말을 했다. 형 말을 들은 5살 은유는 "사랑고생이지"라고 말했다. 남자 셋이 동시에 "깔깔깔" 웃음이 터졌다. "사랑고생"이라니. 그래 "사랑고생" 맞다.

태그:#가사도우미, #성평등, #돌봄, #평등육아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공운수노조 부산본부 조직국장으로 일한다. 노동조합, 노동관련단체에서 쭉 일했다. 두 아이의 아빠다. 평등육아를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어색한 조합이지만, 노동과 육아가 내 관심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