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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 잼버리 병원 찾은 환자들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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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트잼버리의 모토는 '준비하라'입니다. 주최 측은 어떻게 이렇게 준비를 안 했습니까? 제 아들의 꿈이 악몽이 된 것 같아 실망입니다."

나라망신이 따로 없다. 3일 로이터는 제25회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 아들을 참가시킨 미국 버지니아주 크리스틴 세이어스(Kristin Sayers)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스카우트를 주최한 한국이 폭염으로 더 많은 의료진을 파견했다>는 기사에서 이 부모는 아들이 텐트가 준비되지 않아 맨바닥에서 자야 했고, 아들의 동료가 폭염으로 의료진의 진찰을 받게 된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로이터를 필두로 AP, UPI 서구 통신사들이 앞다퉈 제25회 부안 세계스타우트 잼버리의 온열 질환자 속출 및 준비 부족, 이에 대한 한국 정부와 조직위 측 대응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BBC, ABC, 알자지라, NHK 등 세계 유수 언론과 방송사들도 보도에 나섰다. 이들 언론 중 일부는 작은 규모의 진료소에서 각국 참가자들이 진료를 받고 있는 영상을 전하기도 했다. 

AP는 온열 질환자가 개영식(2일) 당일 다수 발생한 것에 대해 "참가자들이 멀리서 와서 아직 (날씨에) 적응하지 못했다"거나 K팝 공연을 본 많은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했다가 지쳤다"고 말한 최창행 조직위 사무총장의 3일 브리핑 내용을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7년간 관련 활동을 한 말레이시아 출신 자원봉사자 레오나 아자르(21)의 체험담을 전했다. 아자르는 "(대회장이) 사우나 같다. 그늘을 찾는 것이 정말 어렵다"며 "기절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었다"고 말했다. 

UPI도 3일 전북지역 12개 시민단체와 환경·종교단체가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새만금 잼버리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한 기자회견 내용을 전했다. 외신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 상에서도 이 같은 국제적 나라 망신에 가까운 지적과 한탄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반면 행사 중단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나온 조직위 대응은 빈축을 사기에 충분해 보였다.

외신들이 본 새만금 잼버리, 그리고 조직위의 대응

물론, 역대 잼버리에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2015년 일본에서 열린 잼버리 당시 뇌수막염 사례가 발견되자 주최 측이 4000명의 참가자들에게 주의를 요했고, 2005년 미국 버지니아 보이스카우트 잼버리 당시 300여 명이 폭염으로 인해 일사병 치료를 받았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외신을 종합해보면, 2015년 23회 일본 잼버리 당시 영내 병원을 찾은 참가자도 3200여 명에 달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새만금과 달리 국립공원에서 진행된 제24회 북미 잼버리에서도 온열 환자가 속출했다. 문제는 온열 질환자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잼버리 자체의 속성이 아닐 것이다.

새만금 잼버리는 여성가족부, 전라북도, 한국스카우트연맹이 주최와 주관을 맡고, 김현숙 여성가족부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전북 전주시갑 의원,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총재가 조직위 공동위원장에 이름을 올린 국가 행사다. 조직위가 이들의 이름값에 걸맞은 준비와 대응을 보이고 있는지 외신들도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들 대다수 외신의 초점은 폭염과 안전 문제였다. 이들은 전 세계적인 폭염 속에서 역시나 5년 만에 전국 폭염 특보가 계속되고 있는 한국의 조직위가 온열 환자 발생과 관련한 대비를 철저히 했는지 의문을 표했다. 또, 이를 넘어 전반적인 안전 문제 대응 및 준비를 철저히 했는가에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더위를 피할 나무 한 그루 없는 광활한 새만금 지역에서 잼버리를 개최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는 AP의 지적이 대표적이다. 외신들 다수가 이상민 장관이 제시한 "단 하나의 심각한 질병이나 사망을 막는 것"이란 목표나 한덕수 총리의 "추가 안전 확보" 지시 등은 의례적으로 다루는 데 그쳤다.

소셜 미디어는 어떨까. 외신 기자들이나 외국 참가자 청소년들, 그 청소년들 부모들의 비난 어린 목격담들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타전 중이다. 가디언에 기고하는 라시엘 라파드 기자는 트위터에 화장실 등 열악한 환경이 담긴 사진을 게시했고, 자원봉사 중인 딸이 병원 신세를 졌다고 소개한 네덜란드 남성도 트위터에 "물 값은 비싸고, 음식은 부족하고, 위생도 말할 게 못된다"며 "(주최국인) 한국인들이 잼버리(주최)를 과소평가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런 우려가 쏟아지자 자국 참가자들을 보호하려는 각국 정부도 신속하게 대응 중이다. 참가국 중 최대 규모인 4500여 명이 참가한 영국은 외무부 대변인이 "대회 상황을 계속 모니터 중이고, 영사 직원들이 현장에 상주 중이다"란 입장을 내놨다. 주한미국대사관도 "우려를 즉시 인지하고, 한국 정부 측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또 3일 한국일보의 <각국 대사관, 스카우트 지원·구출 작전… 주한미군은 평택기지서 숙식 제공>에 따르면, 그리스 대사관은 학부모 항의 전화가 많은 탓에 외교부와 긴밀히 접촉해 참가자들을 수용할 시설 및 여건 개선 방안을 찾고 있고, 아일랜드 대사관도 참가자와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아울러 한 유럽 참가국은 우리 정부에 우려를 담은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앞선 지난 1일 주한미군도 폭염, 위생 등 갖가지 문제가 제기되면서 자국 참가자들 700여 명을 위해 경기 평택 미군기지에 임시 숙소를 제공했다. '국제적 나라 망신', '혐한 제조 축제'란 온라인 상 쏟아지는 한탄이 괜한 것이 아닌 셈이다. 이와 중에, 한국 청소년들이 '귀하게 자라서 불평, 불만이 많다'고 도리어 한탄하는 정치인이 등장했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상반된 시각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2일 오후 전북 부안 새만금 부지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영식에서 스카우트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장문례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2일 오후 전북 부안 새만금 부지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영식에서 스카우트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장문례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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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소년들은)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자란데다 야영경험이 부족하다. 참가비마저 무료니 잼버리의 목적과 가치를 제대로 몰라 불평, 불만이 많다. (행사에 참가한 한국 청소년들이나 참가자들의 비판은)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미래다."

3일 더불어민주당 염영선 전북도의원이 김관영 전북지사의 페이스북 게시물에 단 댓글 중 일부다. 그러면서 염 도의원은 "무엇보다도 잼버리는 피서가 아니다"며 "개인당 150만 원의 참가비를 내고 머나먼 이국에서 비싼 비행기를 타가며 고생을 사서하려는 고난 극복의 체험"이라고 못박았다. 염 의원은 새만금 잼버리와 달리 과거 잼버리들이 준수한 시설을 자랑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걸까. 그는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이후 이 댓글을 삭제했다. 

애초 김관영 지사가 올린 글도 논란을 자처했다. 김 지사는 3일 오전 페이스북에 텐트와 잼버리 관련 사진을 게시한 뒤 "새만금 잼버리 현지의 아침. 어젯밤 개막식 마치고, 야영지 텐트에서 1박했습니다. 낮에는 폭염이더니 새벽에는 춥네요. 누구도 잼버리를 즐기려는 스카우트들의 열정을 꺾지는 못하겠네요...'란 글을 게시했다.

온라인 상에선 비난이 폭주했다. 염 의원이나 김 지사 모두 "어떻게 그렇게 준비를 안 했나?"는 외국 학부모의 질타나 외신 반응을 접했는지 의문이다.

조직위도 요지부동이다. 조직위는 3일 브리핑에서 "어느 나라 잼버리에서든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거나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수준은 아니다"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직위는 온열질환자 역시 "모두 경증 환자이며 중증 환자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밝혔다. 대회 중단을 촉구하는 소방당국이나 시민단체, 일부 정치권의 판단과는 온도차가 극심했다.

애초 조직위는 새만금 잼버리의 '6천억 원 경제 효과'를 홍보해 왔다. 이젠 거센 비난 여론을 의식한 걸까. 3일 조직위는 유일하게 언론 취재가 허용된 '델타구역'의 취재에 '취재 시간 지정' 및 '운영요원 동행'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개막 전 델타구역의 자유로운 취재를 공언했던 조직위가 사흘 만에 입장을 바꾼 셈이다. 일부 언론이 이를 '언론 취재 통제'라 보도했다.

지난 3월 '잼버리 전폭 지원'을 공언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안전을 도외시 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수어야 한다"며 "돈보다 안전"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의 그러한 강력한 메시지도 무용지물인 듯 싶다.

국내외의 비난 여론에 직면한 잼버리 조직위가 천억 가깝게 들인 예산보다 4만 명이 넘는 전 세계 청소년과 참가자들의 안전을 먼저 중시하고 있는지 심히 의문이다. 엄영선 도의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번 잼버리를 둘러싼 총체적 난국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어두운 미래"를 목도하게 만들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늘고 있다.

태그:#새만금잼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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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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