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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장상윤 차관이 지난 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서초구 S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관련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합동조사단 조사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교육부 장상윤 차관이 지난 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서초구 S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관련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합동조사단 조사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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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S초 교사는 세상을 떠나기 전 동료 교사에게 "학부모가 개인 번호로 여러 번 전화해서 소름이 끼쳤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소름끼치다'란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니 "공포나 충격 따위로 섬뜩하다"는 뜻이라고 나옵니다. 장난스러운 대화, 영화 감상평에서나 쓸 만한 이 단어를 진지하게 사용했던 그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던 걸까요?

지난 4일 오전 11시에 발표된 교육부-서울시교육청 합동조사 발표는 고인이 겪었던 '소름이 끼친' 상황을 짐작하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추가적인 조사가 사건의 진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를 바라봅니다.

저는 학교폭력 담당 업무와 동시에 교권보호 업무도 함께했습니다. 2명 이상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일을 조율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소름 끼쳤던 상황을 간간이 목격하곤 했습니다. 그 중 한 사례를 소개할까 합니다.

수업시간 중 손가락 욕

A학생이 수업 시간에 B교사를 향해 손가락 욕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변 학생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하지만 교사에게는 들릴 듯 말 듯 "미친X,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습니다. 참을 수 없었습니다. B교사는 이 사실을 부장님께 알렸지만,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 개최를 요청하지는 않았습니다. 직접 A학생의 생활지도를 감당하려고 했죠. 가르치는 일에는 교과 지도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A학생은 사과문을 쓰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오라는 B교사의 말도 무시했습니다. 왜 오지 않느냐고 물으면 A학생은 '화장실은 가야되지 않느냐'고 답했습니다. B교사 역시 쉬는 시간마다 학생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교사도 화장실은 가야죠, 다음 수업 준비해야죠, 학생들의 질문에도 답도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A학생은 방과 후에 남으라는 지도는 들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무성의한 접착식 쪽지만 가끔 남겨뒀습니다. '자리에 없어서 집에 가요.' 종례하고 청소 지도 후 교무실에 돌아오기엔 적어도 10분 정도는 필요할 텐데, A학생은 그 10분도 기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1분도 필요치 않았겠죠. 쪽지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요. 결국 B교사는 A학생 부모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선생님이 무슨 자격으로 방과 후에 애를 남기시나요? 학원 수업 빠져서 진도 못 따라가면 책임지실 건가요?"였습니다.

B교사는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학교를 벗어나서도 그 학생의 행동이 어른거렸고, 학부모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A학생 반의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무기력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교사의 지도가 자기에게는 안 통한다는 걸 다른 학생들에게 자랑하는 A학생을 보면서 좌절했습니다. 자주 우울감에 빠졌고, 사람을 대면하는 데 자신감도 떨어졌습니다. 몇 차례에 걸친 심리상담도 효과가 없었고, 더 이상 학생을 지도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학생과 학부모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할 것이라는 희망은 진작에 사라졌습니다. 다만 '내가 피해자다'라는 것만이라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학교는 더이상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교실.
 교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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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B교사는 교보위를 신청했습니다. 피해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수업 시간에 했던 손가락 욕과 인격 모독적인 발언. 둘째, 한 달 동안의 지도 불응.

연락을 받은 학부모가 찾아왔습니다. 변호사였던 학부모의 주장은 다음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 학생이 한 손가락 욕은 교사를 향한 것이 아니라 다른 학생을 향한 것이었고, 인격 모독적인 발언은 혼잣말이었다. 둘째, 한 달 동안의 지도 상황은 학생의 '지도 불응'이 아니라, 교사의 '지도 실패'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셋째, 수업 시간의 일을 '교권 침해'라고 여겼다면, 한 달 동안의 지도 실패 이전에 바로 교사와 학생을 분리했어야 한다. 이를 실행하지 않은 것은 학교의 책임이거나, 해당 일이 교권 침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넷째, 자신의 자녀는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가 있어서 교사의 특별한 관심과 특수한 지도가 필요한 학생이다.

이쯤 되니, 이곳은 더 이상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교육기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돼버렸습니다. 평소 학생의 성격과 행동을 잘 알고 있는 담임교사와 학년부장도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피해 교사 편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도 없었습니다. 학생 측이 '학교가 집단으로 맞서서 우리 애를 매도하려 한다'라고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교보위를 신청하면 일이 해결될 거라 기대했던 B교사의 진짜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날들의 끔찍했던 기억을 복기해야만 했습니다. 사안 당일 주변에 있던 학생들을 찾아가 증언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B교사는 자신의 피해를 소명하는 일에도 그것이 교육적인지를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를 수차례 만나 자문을 구하는 일도, 심리 상담 기록을 하나하나 떼는 것도, 교무 수첩에서 생활지도의 흔적들을 다시 찾는 것도 모두 교사가 혼자 짊어져야 할 짐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도 불응'과 '지도 실패'를 구분하고 증명하는 것이야 말로 가혹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남은 상처

이때 학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교장, 교감이 B교사를 위해 해줬던 일은 한 가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물론 걱정은 하고 있었겠지요(다음 기사에 작성하겠지만, 관리자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A학생의 담임교사, 학년부장, 교보위 담당이었던 저 역시도 중재 시도에만 급급했습니다. B교사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학교와도 싸운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결국 해당 사안은 교권 침해로 인정을 받게 됐고, 양쪽이 모두 받아들일 만한 조치 결과가 나왔습니다. 물론 누구도 만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B교사는 A학생의 사과편지를 거부했습니다. B교사와의 면담 중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학교가 소름끼칩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에 사망한 교사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지가 붙어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에 사망한 교사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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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교사가 느끼는 소름끼치는 상황은 학생,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다음 기사에선 2명 이상의 학생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교사가 경험하는 소름끼치는 사례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태그:#교권보호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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