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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국은 (위기 대응이나 행사 관리가) 잘 조직돼 있는데 이번은 엉망인 것처럼 보입니다"라고 한 한 외신기자의 질문이 화제다.
 "보통 한국은 (위기 대응이나 행사 관리가) 잘 조직돼 있는데 이번은 엉망인 것처럼 보입니다"라고 한 한 외신기자의 질문이 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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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국은 (위기 대응이나 행사 관리가) 잘 조직돼 있는데 이번은 엉망인 것처럼 보입니다."

한 외신 기자가 물었다. 의아했던 것 같다. 외신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대한민국을 K-방역의 나라라 추켜세웠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이하 새만금 잼버리) 기자회견장에서 외신기자가 잼버리 조직위원회 측에 질문을 던지는 이 장면을 한 종편 방송이 포착했다. 이 장면은 온라인 상에서 '잼버리 뼈 때리는 외신 기자 발언'이라는 일종의 '밈'으로 소비되는 중이다.

정부와 조직위가 태풍 '카눈' 영향 최소화를 위해 참가자들의 '새만금 조기 철수'를 결정한 가운데 외신들의 이러한 의구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8일 AP는 한 스웨덴 통신사 보도를 인용해 1500여 명의 스웨덴 참가자들이 노르웨이 및 덴마크 참가자들과 함께 미군 캠프 험프리스에 입소할 것이라 보도했다.

AP에 따르면 노르웨이 참가단은 "공동 대피 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월요일(7일) 저녁부터 이미 캠프장을 떠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서울 및 경기도를 비롯해 각 지역에 각국 잼버리 참가단을 위한 숙박 시설을 마련 중임에도 미군 기지 입소를 포함해 각국 참가단의 각자도생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AP는 또 유럽을 포함한 각국 참가단의 '새만금 철수' 상황을 전한 뒤 사실상 잼버리가 중단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K팝 콘서트 등지자체와 새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에 잼버리가 더 확대 운영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 답변과 함께 우리 정부의 대응을 소개했다. 이어 AP는 7일 오전까지 조직위가 "새만금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었다"고 덧붙였다. 정부 대응에 대한 의구심이 읽히는 대목이다.

'준비 부족'을 넘어 '난장판', '국제적 망신' 등 개영식 이후 쏟아진 외신들의 질타는 결국 여가부가 주도하고 행안부 장관 등 국무위원 3명이 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은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는 듯했다. 전임 정부들을 포함해 수년 전부터 계획된 국제행사의 운영 및 위기 관리에서도 어김없이 콘트롤타워 부재를 확인시킨 윤석열 정부를 향해서 말이다.

총체적 난국과 여전한 콘트롤타워 부재

대통령 취임 이후 15개월이 흘렀다. 인수위 시기까지 포함하면 1년 반에 가깝다. 이 기간 국민들은 지난해 외국인들까지 다수 사망한 이태원 참사를 목도했다. 그로부터 불과 반년여 만에 오송 참사라는 인재를 겪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우려가 팽배한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렸다.

높아진 국가적 위상이나 인지도만큼 외신들의 한국을 향한 주목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참사나 사건·사고가 실시간으로 타전되는 시대다. 그들이 보기에 'K-방역의 나라'가 참사의 나라, 잼버리 조기 철수의 나라로 비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전 정권 탓'에 소비한 시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파행과 혼돈이 진행 중인 새만금 잼버리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 반응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이 정도일 줄이야'라는 한탄만큼이나 '인명 피해 등 더 큰 피해가 없는 게 다행'이란 안도가 적지 않다. 연이은 참사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던 정부의 콘트롤타워 부재를 확인한 국민이 가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학습 효과일 것이다.

새만금 잼버리 사태라는 총체적 난국 역시 그 연장선상이다. 지난 3월 정부는 조직위원회를 확대하며 주무부처인 여가부에 이어 행안부와 문체부까지 포함시켰다. 행사 시작 불과 며칠 전 행안부 장관은 '안전'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 또한 지난 3월 한국스카우트연맹 명예총재직에 취임하며 "전폭 지원"을 천명했다. 말의 성찬일 뿐이었다. 

'국가적 망신'이란 국내외의 비난에도 콘트롤타워인 대통령이 직접 한 일이라고는 잼버리 개영식에서 청소년 스카우트들에게 사열을 받고, 거제도로 6박 7일간의 휴가를 떠난 뒤 거제시장을 방문한 것이 전부였다. 오송 참사 직후 우크라이나 방문 중에 "서울에 가도 달라질 것 없다"며 유선으로 지시를 내리던 행태와 오십보 백보 수준이다.

윤 대통령은 잼버리 사태로 인해 전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지난 주말 이후 얼굴 한 번 비치지 않고 있다. 이런 콘트를타워의 부재가 조직위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운영은 물론 뒤늦게 600여 명이나 현장 청소 등에 동원된 지역 공무원 사회의 기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굳이 예를 들자면, 영국은 확실히 달랐다. 영국 언론 보도들을 종합하면, 영국 외무부나 주한영국대사관은 영국 참가단과 긴밀히 소통했고, 그 결과 온열 질환과 벌레 등에 시달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자국민과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과 수고를 감수하며 잼버리 조기 철수를 강행했다. 이들에게 위기 상황에서의 각자도생이란 선택지는 없는 듯 했다.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장을 떠나는 잼버리 대원들을 태우기 위한 버스들이 8일 전북 부안군 잼버리 대형 주차장에 집결해 있다.
▲ 잼버리 철수, 버스 집결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장을 떠나는 잼버리 대원들을 태우기 위한 버스들이 8일 전북 부안군 잼버리 대형 주차장에 집결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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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금반지 정신'이 진짜 필요한 이들

이번 새만금 잼버리 사태만큼은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전 정권 탓'도 쉽게 먹히지 않을 듯싶다. 속속 드러나고 있는 예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전북도의 방만한 예산 운용과 별개로 잼버리 총사업비의 70% 이상이 조직위 예산이었고, 그 조직위 예산의 팔할이 지난해와 올해 집행됐다. 정부는 여가부가 주도하고 현직 장관이 셋이나 참여한 조직위의 방만함과 무능함에 대한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정부·여당 일각에서 제기한 '전 정권 탓'도 도리어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상황을 소환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이후 취임 9개월 만에 평창동계올림픽을 큰 탈 없이 치러낸 전 정권 정부 주요 요인들의 반박을 자처한 것이다.

'잼버리, IMF 당시 금반지 정신으로 극복하자.'

8일 여당 고위 인사가 새만금 잼버리 위기 대응과 관련해 내놓은 발언이 화제다. 잼버리라는 일개 지자체 및 국가 주도 행사를 위해 IMF 위기 대응까지 끌어들이는 현실 인식이 적절한지 의문이 이어졌다. 이날 하루 국민의힘은 김기현 당 대표를 비롯해 '잼버리 실패 시 우리 모두의 실패', '대역전 드라마 뭉칠 때', '새만금 잼버리는 코리아 잼버리'라는 국가주의적인 구호들을 다수 호명했다.

습관적인 '전 정권 탓'도 모자라 급기야 국가와 정부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작금의 국민들이 딱 그런 상황이다. 이번 잼버리 사태는 절대 '국난 극복이 취미인 국민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통용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무능과 방만, 콘트롤타워 부재라는 책임 소재가 명확한 사안인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다. 잼버리 철수를 둘러싸고 무능을 만회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정부의 시도로 인해 때아니게 동원되거나 피해를 입는 국민들마저 생기는 상황이다. 새만금에서 철수하는 각국 참가단의 숙박과 일정을 신속히 챙기는 와중에 K팝 콘서트 등 당장 혼란과 난맥상이 도출되는 과정에서 '정부가 깡패냐'란 호소까지 나오는 중이다. 

지금 당장 'IMF 금반지 정신'이 시급한 건 각자도생에 여념이 없는 국민이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다. '이전과 달리 이번 정부는 엉망'이라는 외신기자를 필두로 국내외에서 넘쳐나는 질타와 불신에도 여름휴가를 즐기는 중인 대통령과 '대역전 드라마' 운운하는 여당 말이다. 알만한 국민은 벌써 다  알고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덧붙이는 글 | 브런치 등에 게재됩니다.


태그:#새만금잼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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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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