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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마흔이 넘어 길을 잃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이 일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었나. 이 도시가 내가 정말 살고 싶은 공간인가.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남들이 하는 것처럼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다 보면,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지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이 따라오는 것이다.

내 경우 좀 이른 이십 대 후반에 이런 물음들에 시달렸다. 일에 대한 회의감이 이르게 찾아오면서, 나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의미 없게 여겨졌다. 이렇게 사는 게 내가 원해서 택한 건가, 아니면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니 나 역시 이 길로 가고 있는 건가. 나는 왜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나. 이렇게 살아가는 게 정말 맞는 걸까. 나는 내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렇다면 내 생각은 무엇일까.

방황 보존의 법칙이라도 존재하는 건지, 십 대에 특별히 사춘기를 겪지 않았던 나는 이십 대 후반 지독한 사춘기를 앓았다. 한 번 내 안에 싹튼 의문은 나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내 앞의 현실과 내 안의 이상 간의 괴리가 크고, 말과 행동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자신에게 환멸이 들기도 했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려면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것부터 알아야 했다.

생각해 보니 우선 나는 떠나고 싶었다. 누구의 딸, 누구의 동생, 어느 직장의 누구와 같은 역할이 아닌 자연인 상태 그대로의 나로서 오롯이 설 수 있는 공간이, 그 시절 내게는 여행이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시간도 장소도 정하지 않고 마음대로 떠도는 여행을 한 번이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큰 후회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목표로 두고 삶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런 여행을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먼저 떠올렸다. 여행을 선택함과 동시에 내가 삶에서 포기해야 하는 건 무엇인지를 곱씹었다. 내 생각대로 사는 삶을 향한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생각을 바꾸는 데 가장 좋은 방법, 글쓰기
 
인생은 이정표 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수시로 길을 잃게 마련이니까.
▲ 사막을 걷는 사람 인생은 이정표 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수시로 길을 잃게 마련이니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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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찾아온 하나의 의문이 내 삶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간 건, 쓰기의 힘이었다. 의문이 피어날 때마다 글을 썼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펼쳐보이기도 하고, 글이 글을 낳는 것처럼 쓰면서 생각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쓴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나열하는 것이 아닌, 내 생각을 눈 앞에 펼쳐보이고 발전시키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손가락 끝에 뇌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글은 쓰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관련된 온갖 것들이 머릿속에서 딸려 나온다. 

이런 게 정말 내 머릿속에 있었나?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들어 있나? 생각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신선하면서도 밀도 있는 생각들이 글을 쓸 때마다 내 안에서 하나둘 길어 올려진다. 그러니 글이 잘 쓰이지 않는 날에도 하얀 종이를 끌어안고 끙끙 댄다. 

뭐라도 튀어나오겠지. 쓰다 보면 생각이 발전하겠지. 쓰지 않으면 모른다. 내 안에 들어있는 게 무엇인지. 내 생각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 나는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생각만으로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글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생각하지 않으면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갈 수 없다. 내 생각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맹목적으로 타인의 생각을 좇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주저앉는다. 내가 원한 삶은 이게 아니었는데. 삶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글쓰기는 생각을 바꾸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너무 많은 생각은 독이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내 생각대로 살 수 없는 것 또한 맞는 말이다. 

글쓰기는 그 많은 생각들이 독이 되지 않도록 막는데 큰 도움을 준다. 찡그리고 있는 사람에게 거울을 들이밀면, 갑자기 미간의 주름을 펴는 걸 볼 수 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면서 더 나은 모습을 보이려 하는 것이다. 글도 그렇다. 글은 마음의 거울이기에 아무리 에두르고 감추려 해도 글쓴이의 내면이 녹아있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다. 내 마음의 어디가 주름져 있는지, 내가 펼쳐야 하는 부분은 어디인지. 그 과정에서 생각은 발전하고 왜곡된 인식은 조금씩 개선된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내 얼굴이 얼마나 구겨져 있는지 알 수 없듯, 글을 쓰지 않으면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알지 못한다. 쓰지 않고 머릿속에만 담아두면 생각은 몸집을 불리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오히려 하면 할수록 내면에만 갇혀 부패하기도 한다. 나를, 내 상황을, 내 생각을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정리를 하려면 써야 한다. 글은 나침반처럼 생각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처음부터 일목요연하고 정갈한 글을 쓸 수는 없다. 우선 나열해야 한다. 글이 산으로 가도 좋고, 삼천포로 빠져도 괜찮다. 생각을 우선 죽 늘어놔야 내 안에 들어있는 게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들어있는 걸 정확히 알아야 흔히 말하는 정돈된 글도 쓸 수 있다. 글의 생김은 뒤로 하고 우선 배설하듯 마음껏 쏟아내는 과정이 먼저인 건 이 때문이다. 정리는 나중 문제다. 퇴고하기 가장 어려운 글은 마구 쏟아낸 글이 아니라, 아무것도 쏟아내지 않은 글이다.

내 삶이 내 것이 되려면
 
글은 나침반처럼 생각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 나침반 글은 나침반처럼 생각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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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하나를 집어 물에 던지면 수면에 작은 동그라미가 생긴다. 그 동그라미는 하나로 그치지 않고 점점 크기가 큰 동그라미가 된다. 이를 우리는 파문(波紋)이라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 파문은 사라진다. 

수면은 다시 고요해진다. 하지만 계속 돌멩이를 던지다 보면, 그 돌이 쌓이고 쌓여 강바닥의 지형이 변한다. 글을 한 번만 쓰는 게 아니라 계속 써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한 번만 써서는 생각이 달라지지 않는다. 쓰고 또 써야 더해진 생각들이 퇴적돼 새로운 지형을 만들게 된다.  

자신의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키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뿐이다. 내 안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다. 글을 쓰는 건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나를 바꿀 수도 있다. 쓰다 보면 알게 된다. 내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내가 달라져야 내 삶도 달라진다.

긴 여행으로 남은 건 기억뿐이지만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은 건, 내가 선택한 내 삶이었기 때문이다. 타인이나 세상의 의지가 아닌, 나 자신의 의지로 굴러가는 삶은 신성장 동력을 장착한 것과 같다. 좀 다르고 좀 위험하더라도 내 안에서 생성된 에너지로 내가 깨달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이는 수동의 삶을 능동의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 삶을 택하고 걸어가자 비로소 내 삶이 진짜 내 것으로 여겨졌다. 그 이후에는 시련이 닥치더라도 금방 다시 꼿꼿하게 일어설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삶이라는 묵직한 '책임감'과 내 안에서 나온 순수한 '동기'라는 두 개의 바퀴가 어떻게든 나를 앞으로 굴러가게 했다. 

글을 썼기에 나를 알 수 있었다. 나를 알아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나는 생물이기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다. 글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게재합니다.


태그:#글쓰기, #생애첫글쓰기, #나침반, #능동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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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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