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8 15:43최종 업데이트 23.09.0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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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지난 5월 2일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국토교통부 사고조사관이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4월 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장면 하나. 

지난 4월 인천 검단 신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무너졌다. 이 아파트 202동과 203동 사이 지하 1층 슬래브(지붕층)가 먼저 주저앉았고 이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지하 2층 슬래브도 뒤이어 무너졌다. 이 아파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하고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검단 신도시 아파트였다. 순살아파트 사태의 시작이었다.


순살아파트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져 조사 결과 부실시공, 철근 누락이 의심되는 LH 아파트 단지가 101개에 달했다. 순살아파트의 원인은 설계와 감리 부실을 불러온 전관예우 카르텔이었다.

#장면 둘.

2021년 3월 2일 참여연대의 기자회견은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LH공사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사전투기 의혹 발표 및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이었다. 이날 참여연대는 2021년 2월 24일 국토교통부의 광명·시흥 3기 신도시 지정 발표 이후 LH 직원들의 투기 목적 토지 매입 정황을 제보받아 해당 지역 토지대장 등을 확인한 결과 LH 직원이 해당 토지 지분을 나누어 매입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의 기자회견은 이후 정국을 뒤흔드는 폭풍이 되어 당시 변창흠 장관의 자진사퇴로 이어진다. 가뜩이나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곤란해하던 문재인 정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고, 결국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다.

공룡 사냥에 칼 뽑은 국토부 장관
 

지난 8월 20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LH 용역 전관카르텔 혁파 관련 긴급회의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공통점이 있다면, LH라는 골칫거리 공기업이 아닐까 한다. 과감하게 해체하자니 당장 3기 신도시 등 공공의 주택공급을 수행할 조직이 없고, 가만히 두자니 국민에게 무능한 정부로 비친다.

LH는 이명박 정부에서 출발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2008년부터 공기업 선진화 정책을 추진한다. 그 일환으로 2009년 10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합병해 LH가 출범했다. 혁신도시, 기업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 수도권 신도시, 재개발 사업, 주거복지, 보금자리주택, 행복주택, 역세권개발사업 등을 관장하는 거대 공룡기업의 시작이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순살아파트의 원인으로 전관예우의 카르텔을 지목했다. 지난 8월 20일 원 장관은 LH 서울지역본부에서 LH 용역 관련 전관예우 카르텔 혁파와 관련해 직설적인 말을 쏟아냈다.

"이권 카르텔 문제는 LH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 이런 잘못된 관행과 이권 카르텔을 방치할 수는 없다."
"후진국형 전관예우 관행과 이권 카르텔을 반드시 혁파하겠다."

전관예우 카르텔에 대한 원 장관의 발언과 맞물려 LH는 설계·감리에 선정된 LH 퇴직자가 있는 업체 11곳과의 648억 원 규모 계약을 백지화했다. 또한 국토부는 올 10월 중 LH 카르텔 혁파방안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한다. 원희룡 장관이 LH라는 공룡사냥에 나선 것이다.

생존법 터득한 공룡, 공룡이 필요한 대통령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원희룡 장관의 의지와 관계없이 공룡 사냥은 실패할 것이다. 

원 장관은 이권 카르텔 해체를 외치며 전방위에 걸쳐 공룡을 공격한다. 거대 공기업인 LH는 국토부 장관의 공격에 몸을 움츠린 채 복지부동하고 있다. 퍼붓는 소나기는 피하라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자중한다. 언론에서는 순살아파트 사건을 계기로 공룡 해체 이야기가 나오고, 국토부에서 주택청을 분리, 설립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LH가 아직도 도덕적 해이, 전관 특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체 수준의 구조조정을 통해서라도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과 상식의 기준에 맞춰놓겠다." -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 김정재 의원, 8월 4일

"LH가 양도를 원치 않는 토지주들로부터 공익사업이라는 미명으로 삶의 터전인 집과 농토를 강탈해 이 같은 범죄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더는 공기업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 만큼 LH를 해체해야 한다." - 공공주택지구전국연대대책협의회, 8월 8일

"2021년 직원들의 땅 투기 혐의로 논의됐다가 흐지부지된 혁신방안을 소환해 애초 설립 목적을 회복해야 한다. LH로의 과도한 역할집중이 부패를 양산한 만큼 '지방공사'로 역할을 분담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8월 21일


과연 공룡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공룡은 상처는 입을지언정 살아날 것이다. 공룡은 항상 그래왔다. 이명박 정부 때, 주택공사와 토지공사가 통합한 공룡은 생존법을 완전히 터득했다.

대통령실과 집권당은 공룡이 필요하다. 2022년 8월 16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에서 270만 호 주택공급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현 주택시장 상황에서 약속한 270만 호 공급은 어렵지만 270만 호를 공급하려면 거대 공룡 공기업인 LH 말고는 대안이 없다. 민간 건설기업이 이 역할을 하지도 않겠지만 정부는 그들에게 맡길 수도 없다.
     
대통령실과 국토부가 270만 호 주택공급 공약을 추진하려면, 공룡 외 다른 조직적 대안은 없다. 대한민국에서 LH 말고 그 어떤 공기업도 공공주택 공급을 대규모로 해낼 수 없다. 그렇다. 신도시 지정 정보를 미리 알고 땅 투기를 해도, 전관예우라는 이권 카르텔 집단이어도 꼬리자르기식 징계 외에는 손대기가 힘들다.

중앙정부 주도 주거정책이 실패 원인
 

지난 8월 29일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의 철근 누락 의혹 수사와 관련, LH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께 경남 진주시 LH 본사 및 경기 성남시 소재 LH 경기남부지역본부를 비롯한 지역본부·사업소 등 총 5곳에 대해 동시에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사진은 29일 오전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경기도 성남시 LH 경기남부지역본부 모습. ⓒ 연합뉴스


주거정책이 중앙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대한민국이다. 이런 나라에서 대통령실과 국토부가 손과 발이 되어 실적을 내줄 공룡을 대상으로 해체에 준하는 혁신을 할 수 있을까?

주거복지사업, 3기 신도시개발과 공공주택 공급, 공공재개발 사업 등 국민의 주거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기업이 바로 이 문제투성이 공룡이다. LH가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일으키더라도 현재로서는 해체 수준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경기주택도시공사(GH) 등 지방정부의 주택도시 공기업들이 LH를 대체하여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중앙정부 주도의 주거정책을 하는 국가다. 지방정부는 주거정책의 권한이 없다. 지방정부는 주거정책을 주도적으로 시행할 권한이 적고 재원도 없기 때문에 지방 공기업의 역량이 높을 수 없다. 지방 공기업은 당연히 규모도 크지 않고 관련 노하우와 역량도 부족하다.

또한 지방정부와 지방 공기업 간에도 역량의 편차가 심하다. LH 규모가 너무 거대해서 그렇지, SH와 GH도 적지 않은 덩치를 가진 지방 공기업이다. 그래서 주거정책의 분권화를 하면서 LH 지역본부를 지방 공기업과 천편일률적으로 통합하게 되면 수도권과 지역 간 불균형이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주거정책 분권화와 LH 해체, 지방 공기업과의 통합은 정부의 의지와 장기적인 계획, 정권의 실력이 맞물려야 가능하다.

서울시와 경기도를 제외한 다른 지방정부의 주택도시 관련 공기업의 규모와 역량은 참혹한 수준이다. 지방정부가 필요로 하는 주거정책의 손과 발이 될 역량과 수준이 안된다. 중앙정부도, 공룡도 지방 공기업의 역량과 수준을 잘 안다. 지방 공기업의 낮은 역량 탓에, 중앙정부는 주택사업을 분산시켜 나눠주기 어렵고, 공룡은 이런 이유로 이권 카르텔이 불러온 순살아파트의 악재 속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어야 할까?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주거정책의 지방정부로 권한 이양과 이에 따른 공룡의 손과 발(LH 지역본부)을 본사에서 분리해 지방 공기업과 통합시켜야 한다.

물론 지방 공기업도 순살아파트 등의 부정부패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LH 수준으로 역량이 올라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대통령실로서는 공약 추진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서울과 경기의 주택도시공사를 제외하고 인재가 외면할 수도 있다. 수도권으로 인재가 몰리는 것은 현실이다. 이렇듯 당장은 긍정적인 요인보다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

주거정책 분권화는 가야 할 길

중앙정부 주도의 주거정책은 수도권의 성장을 위해 비수도권의 '쇠퇴를 거래'하는 구조이다. 인구감소, 지방소멸의 악순환을 더 빠르게 하는 정책 모델이 바로 중앙 주도의 주거정책, 국토정책 모델이다.

공룡을 개혁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중앙정부 주도 주거정책의 분권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쇠퇴 거래, 지방 공기업의 사업수행역량 등의 복합적인 문제, 즉 대한민국의 혁신과 개혁의 문제가 얽혀져 있다.

그래서 쉽지 않다. 분노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력이 필요하다. 이 실력은 수도권 집중 문제를 풀 수 있으며, 일관된 주거정책을 추진하고, 지방정부와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야당의 협조와 민간의 참여를 끌어낼 실력이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실력으로는 그래서 어렵다고 본다.

필자소개 : 이주원은 세종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학 박사과정 수료를 하고 도시와 주택문제를 화두로 살아온 도시재생과 주택정책 전문가입니다. 국토교통부 장관정책보좌관을 역임했으며, 현 사)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과 탄탄주택협동조합 상임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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