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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지만 아주 다른 사람들, 농사 짓는 부모님 vs. 마케터 딸이 함께 농사일 하는 이야기.[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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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밭에 나타난 도둑의 변명, 너무 화가 납니다 https://omn.kr/25bcv

밭이나 논에는 경계나 펜스가 없다. 당장 부모님이 작업하고 있는 이 감자밭도 길가에 인접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법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회를 이루며 사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존중이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감자 주워간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무래도 밤이나 쑥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 부모님이 계시는 이곳은 점촌이라는 속성은 변하지 않았지만 도로가 정비되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경로가 되었다.

농촌이라서 그래도 되는 건 없다

동네를 통과하는 낯선 사람들은 종종 차를 멈추고 내린다. 누가 보아도 그 집의 것인 분명한 밤을 줍거나 나무를 흔들고, 누가 보아도 사유지인 집 뒤란에 들어와서 쑥을 캐간다. 언젠가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글쎄 주방 창에서 보고 있는데도 그러더라니까."
"가져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나요?"


나는 어머니가 보고만 계셨을까 봐 씩씩거리며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더 기가 막힌 대답을 내놓는다.

"했지, 했는데 안 듣는다."

농촌을 경로로서 통과하는 이들에게는 그것은 어떤 낭만이나 재미있는 해프닝인 것 같다. 또는 '농촌에는 인심이 있으니까' 하며 엉뚱한 곳에 기대기도 한다.

그들이 무엇을 크게 훔쳐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맥락에서라면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들은 '여긴 농촌이니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면서 이곳을 이용하고, 다른 사람이 사는 풍경을 해친다.

나는 그런 이들과 지금 호미를 들고 수확중인 밭 끝에서 감자를 찾는 노인이 같은 부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감자 가져가는 노인에게 뭐라고 하지 않으시고 외려 나를 큰소리로 혼내시는 걸까. 
 
고랑에 몰아주기 작업
 고랑에 몰아주기 작업
ⓒ 최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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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니 아버지가 보고도 그냥 계시니까 그런 거 아녀요!"

부모님도 말씀 없으시고 나도 말이 없으면 이 밭과 감자는 어쩌자는 것인가.

"수확한 밭에서는 가져가도 된다. 예전부터 그랬다. 끝나고 오시라고 더 잘 말씀드릴 수 있지 않았냐. 일하고 있는 중에 오신 건 너무했지만."

어머니는 참외를 맛있게 드시며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이 우리 집에 몰래 들어와서 식탁에 있는 감자 몇 개를 가져갔어요. 이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이건 사유지 침입이라구요."

나는 내 식대로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시며

"너는 말두 험하게 한다. 이게 어떻게 그거랑 같니."

나는 말이 험한 사람이 된다. 부모님과 나와 동생은 눈앞에 일어난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시키는 일은 어렵다. 노인에게는 '이삭줍기'라고 부르는, 수확한 땅에 들어가 여남은 것을 주워가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걸 어렴풋이 아시는 부모님과 전혀 알지 못하는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른 것이었다.  

수확을 하는 중에 감자를 주워가는 사람은 이 날 두 명 더 왔다. 한 사람은 전화로 "아는 사람이~ 감자를 좀 가져가라고 해서 왔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부모님은 전혀 모르시며, 감자를 주워가라고 연락한 적도 당연히 없다. 그냥 그가 빈 밭에 들어와 감자를 캐봐도 되겠냐고 한 것을 그러라고 했을 뿐이다.

농사에 대한 너무나무도 다른 이해

그날 저녁, 감자를 다 털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내가 마케터라서, 서울에 살아서, 부모님과 나이가 달라서, 농사 짓는 부모님과의 다르게 농사를 다르게 이해하고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예상 수량, 수확량, 자재 비용과 인건비 등에 대해서 다르게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고랑을 쪼그려 앉아 일하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두 가지이다. 농사가 무엇인지 내가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함께 처한 상황(귀인의 도착, 감자 이삭줍기 사건)에도 부모님과 내가 전혀 다르게 이해한다는 사실이었다.

부모님의 농사를 도우며 구체적으로 부모님의 일과 삶을 조금 이해해 보게 된 것 같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이토록 선명히 있다는 것에 대해.

양파와 감자 수확을 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 이렇게 많다. 앞으로 고구마와 참깨, 무와 배추, 벼농사에서는 또 어떤 것을 새롭게 알고, 이해하고, 또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될까? 

- 여름 시즌 농사가 끝났습니다. 9월 말부터 다시 농사일을 돕고, 10월에 다시 연재로 돌아오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태그:#농사, #농부, #마케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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