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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고학년 민석(가명)은 반에서 가장 힘이 센 학생이었습니다. 민석이는 체육시간에 가장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학생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 사이에서도 분위기를 주름 잡는 학생입니다. 종종 친구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선을 넘는 행동을 합니다. 친구 얼굴에 공을 던지고 실수인 척을 하거나, 선생님 말을 못 들은 척해 한 번 더 설명을 하게 하곤 합니다.

어느 날 체육시간이었습니다. 민석은 체육강사의 수업에 임장 지도로 들어간 담임 교사 A에게 축구 드리블 시범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A의 주 전공은 체육이 아니었습니다. A는 "미안, 선생님은 축구를 못 해"라면서 '또 무리한 부탁을 하는 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민석은 되레 소리를 높였습니다. "이것도 못 해요? 어떻게 선생님이 된 거지?"라면서 드리블을 했습니다.
 
축구공과 드리블.
 축구공과 드리블.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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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할 상황도 아닌데, A는 너무 창피했다고 합니다. 곤란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참아야지'라며 스스로 달래곤 했는데, 이번에는 치욕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걸 끊어야 했습니다. 수업이 끝날 때쯤, A는 민석에게 잠깐 남으라고 말했습니다. "못 남겠는데요?" 민석의 말에 A는 "못 보내겠는데!"라고 맞받았습니다. 그러자 붉게 상기한 민석이 폭발했습니다. "못 남겠다고! 꼽냐? 꼬우냐고?" 하고 도망쳤습니다.

A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교권보호 신청을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마지막 기회를 줘야겠다고 생각한 A는 종례시간에 상황을 설명하면서 민석을 상대로 생활지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민석은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며 증거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결국 A는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있는 학생은 손을 들어달라'고 했고, 눈치를 보던 몇몇이 손을 든 뒤에야 민석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A는 아동학대로 신고 당했습니다. 첫째, 원치 않는데 수업 후 남으라고 했다. 둘째, 다른 학생들이 모두 있는 상황에서 '인민재판'식으로 아이를 몰아세웠다. 이 두 이유로 민석이가 불쾌감을 느꼈고, 그로 인해 위축됐다는 게 학부모의 주장이었습니다.

교권보호 상황이 아동학대가 됐습니다. 수개월간의 싸움 끝에 아동학대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A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교권보호 신청할 힘도, 다시 아이들을 가르칠 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학폭 업무를 통해 이 사례를 접한 저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무방비로 노출돼 고초를 겪었는데... 나중에 '무혐의'가 무슨 소용입니까
 
10일 고인이 올해 3월 부임해 몸담았던 인근 B초등학교(대전시 유성구)에서 한 동료 교사가 추모 공간의 추모글을 정돈하고 있다.
 10일 고인이 올해 3월 부임해 몸담았던 인근 B초등학교(대전시 유성구)에서 한 동료 교사가 추모 공간의 추모글을 정돈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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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교사의 49재 다음날이었던 지난 9월 5일 대전에서 또 한 명의 초등학교 교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동학대를 했다는 비난으로 무려 4년간 학부모에게 시달리고 난 뒤였습니다.

지난 13일 YTN <뉴스라이더>의 보도에 따르면 고인이 된 선생님은 시험시간에 뒤돌아본 학생에게 '넌 0점'이라고 말해서, 색종이를 갖고 놀았다고 지적해서, 다른 학생의 책에 우유를 쏟은 학생에게 사과하라고 해서, 다른 학생의 뺨을 때린 학생에게 학생들이 있는 장소에서 "선생님이 어떻게 할까"라고 묻고 교장실에서 지도 받고 혼자 교실로 돌아오게 해서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고소 당했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 정도면 아동학대 신고는 일종의 '무기'와 같습니다. 정당한 교육상황이 지엽적이고 일방적인 증거로 인해 왜곡돼 악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교사의 동일한 지도 행위도 '학부모의 감정'에 따라 아동학대 신고 여부가 결정되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의심'만으로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당하는 아동복지법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반면, 교사의 아동학대로 인한 형사기소율은 얼마나 될까요. 약 1.5%에 불과합니다(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학술포럼). 즉석복권 스피또500 3등 당첨 확률(당첨금 5000원)과 비슷한 이 비정상적인 수치는 아동학대 신고의 절대수가 무고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전의 초등학교 교사도 그랬습니다. 학부모의 아동학대 신고와 지속적인 악성 민원에 노출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 교사는 보호조치 한 번 없이 외롭게 싸우고 홀로 버티면서 서서히 시들어 갔을 것입니다. 아동학대 '무혐의' 판정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교육계,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한 상황이 아닙니다
 
전국 교사들이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검은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 9.16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를 진행했다.
 전국 교사들이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검은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 9.16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를 진행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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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사건 이후, 현장교원 정책 TF팀은 연구보고서(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현 정책에 대한 해결방안 연구)를 통해, 아동학대 관련법의 개정 방향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법령과 학칙에 의거한 교원의 교육행위는 아동복지법에 의한 아동학대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법의 모호성을 악용하여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를 거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셋째, 아동학대 신고가 무혐의로 종결되었을 경우 신고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교사들이 원하는 것은 '교육을 교육답게 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정당한 생활지도와 정서적 아동학대를 구분할 수 있게끔, 아동학대 신고가 소수의 비상식적인 학부모들의 무기로 사용되지 않게끔, 아동복지법 제17조 5항(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을 학교 현장에 맞게 개정해달라는 것입니다.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한 상황이 아닙니다. 이번에 아동복지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50만 교원과 함께 공교육은 결국 생명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가르치려 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받아도 방관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은 무엇일까요. 자식 일이라면 양심을 저버리고 나서는 몇몇 학부모들과 잘못을 책임지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에 의해 무너질 사회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에 희망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태그:#아동복지법 개정, #아동학대, #정서적 아동학대, #아동복지법 제1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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