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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노동자로 여러 일을 경험했습니다. 편집자와 대리운전을 거쳐 현재 노동조합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결국 노동조합이냐고요? 일 하는 사람들에게 왜 노조가 필요하고, 노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이제부터 이야기해보려 합니다.[기자말]
진상 손님은 미리 거를 수 없습니다.
 진상 손님은 미리 거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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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꿀콜 타세요."

대리기사들이 서로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며 건네는 인사말입니다. 어떤 직업이든지 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만 사용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후 제일 먼저 알게 된 은어입니다. 꿀콜·똥콜은 비단 대리기사가 아니더라도 '콜'을 따라 움직이는 배달이나 퀵서비스 기사 등 이동노동자들이 쓰는 업계 용어입니다. 누구라도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단어지만, 노동현장에서 스마트폰이 뚫어져라 '꿀콜'을 기다리는 기사들의 간절함은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꿀콜' 외에도 '콜밭', '택틀', '오지', '삼릉오계', '따당', '쪼다', '손', '셔틀' 등 대리업계엔 다채로운 은어가 있습니다.

꿀콜, 진상의 기준은 다양합니다

꿀콜의 기준은 여러 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콜의 단가(가격)가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단가가 좀 낮아도 도착지가 콜이 많은 지역(노동자들은 '콜밭'이라고 부릅니다)이거나, 운행 시간이 짧다면 그것도 꿀콜입니다. 운행 시간이 짧고, 단가가 좋다면 꿀콜의 기본 요건은 충족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반대의 경우가 '똥콜'이겠고요.

대리기사마다 좋아하는 동선과 지역이 있습니다. 서울 기사로 예를 들면, 어떤 기사들은 단가가 높은 장거리(대리업계에선 '장타'라고 칭합니다)를 선호해 경기도 외곽을 포함해 수도권 전역을 반경으로 움직입니다. 반면, 수도권이나 장거리가 아닌 서울 안이나 서울 이남(그중에서도 콜이 많은 분당과 판교)까지를 소위 '자기구역'으로 삼는 기사들도 있습니다.

대리기사 커뮤니티에는 어떤 스타일이 더 수입이 좋다는 나름의 주장이 난무하는데, 사실 부질없습니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많이 찍는(버는) 노동자가 이 바닥 승자이니까요. 대리기사들은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치로 콜을 선별하며 다른 사람의 차를 대신 운전하는 노동을 합니다.

콜을 거르는 선구안이 아무리 좋다 한들 기사 프로그램에 뜨는 가격과 도착지 정보만으로 알 수 없는 요소도 있습니다. 좋은 콜의 요건 중 하나는 고객(손님)인데요. 아무리 단가와 도착지가 좋아도, 이른바 '진상' 고객을 만나면 그 어떤 콜도 똥콜이 되곤 합니다.

진상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종종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고객도 있는데요. 이들의 행위는 범죄이기에 '진상'이라고 부르는 건 부적절합니다. 기사 폭행과 같은 범죄를 '진상'이라는 말로 순화해 노동 현장의 안전 문제가 가벼이 다뤄지지 않길 바랍니다.

범죄적 행태를 제외하면 반말을 하며 무례하게 굴거나, 술에 취해 집을 못 찾아 같은 동네를 몇 바퀴씩 돌며 길을 헤맨다든가, 출발지에 나타나지 않고 오래 대기를 시킨다든가,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경유지임에도 가는 길이라고 우기며 추가 요금을 지급하지 않는 식의 상황이 빈번합니다.

고객에 따라 대리기사들은 운전하는 내내 더 강한 스트레스와 위험 상황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운행 및 대기시간, 달리 표현하면 노동시간도 길어집니다. 이처럼 고객은 대리기사의 노동시간과 강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대부분 감정노동이 그러하듯 더 고강도의 노동을 수행했다고 해서 인센티브를 받거나 콜 단가가 올라가진 않습니다. 오롯이 노동자 개인이 감내해야 할 몫이 됩니다. 진상을 만나 시간을 허비하고 강도 높은 감정노동에 시달리더라도 그에 따른 추가적인 보상은 없습니다. 심지어 일하다 폭행을 당해도 결국 노동자들이 제 돈과 시간을 들여 직접 해결합니다.

대리기사는 더 강도 높은 노동을 하지만 그 대가엔 반영되지 않으니, 이런 콜을 '착취콜'이라고 명명하는 건 지나친 걸까요?

노동과정에서 이뤄지는 신체와 정신 활동의 강도를 보통 노동강도라고 부르지요. 노동강도가 세지면 더 높은 대가(임금)를 받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 같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리기사의 노동현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만약 더 감정노동이 수반되는 진상 고객을 만나거나, 도착지가 빠져나올 교통편이 없는 '오지'더라도 그만큼 대가를 더 받는다면 '똥콜'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따라서 대리기사 입장에선 이런 '똥콜'을 피하는 게 최선입니다만, 개인의 선구안만으론 거를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또한 내가 거른다고 해도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똥콜'을 처리하지요. 대리기사 커뮤니티에선 (값싼) '똥콜'을 타는 기사들을 나무라는 글이 종종 올라옵니다.

콜 단가를 기사들 스스로 낮춘다는 건데요. 일견 맞는 말이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선 이는 구조화된 일이기도 합니다. 즉, 제한된 일자리(콜)를 두고 다수의 노동자(대리기사)가 경쟁하는 상황입니다. 산업예비군이 넘쳐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낮은 임금의 질 나쁜 일자리도, 결국 누군가에 의해 채워집니다. 마찬가지로 다수의 대리기사가 소수의 콜을 두고 경쟁하는 시장에선 결국 똥콜도 누군가는 타기 마련입니다.

'똥콜', 헐값에 노동자의 몸과 정신을 쥐어짜다
 
대리운전 노동자에게는 꿀콜과 똥콜이 있습니다
 대리운전 노동자에게는 꿀콜과 똥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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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업종이든 노동자 간 경쟁의 격화는 임금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이를 무제한으로 방임할 경우, 최저생계도 어려운 수준으로 임금이 떨어지게 되지요. 20세기 들어 여러 국가에서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한 이유입니다. 한국에서도 1988년부터 최저임금제가 시행되고 있는데요. 지난 7월 19일 최저임금위원회는 2024년 최저임금을 시급 9860원으로 결정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리, 배달, 퀵서비스기사 등 플랫폼·이동노동자들은 이 최저임금제도의 적용을 받지 못합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아 최저임금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이 대리기사와 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 8개 직종 970명을 대상으로 조사(2023년 5월)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시급은 6340원으로 나타났습니다. 현행 최저임금(9620원)의 66% 수준에 불과한 것이죠. '똥콜'이 난무하는 플랫폼·이동업계 현실이 반영된 조사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와 경영계는 최저임금 대상 확대는커녕, 현재의 최저임금제조차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플랫폼·이동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과 별개로 플랫폼 기업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카카오T 운영사인 카카오모빌리티는 2022년 621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같은 해 매출액이 2조 9471억 원에 달합니다.

다년간 대리기사로 일하며, 결국 플랫폼 세계에서 '똥콜'이란 싼값에 노동자의 몸과 정신을 쥐어짜는 콜이라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 간 무한경쟁을 부추기며 육체와 정신을 헐값에 쥐어짜는 이 시스템은 누가 고안했을까요. 그리고 이 부조리한 구조 안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태그:#대리운전, #똥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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