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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닭볶음면, 떡볶이, 김밥, 비빔면, 김치, 볶음밥, 감자전, 김치전. 한국이라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 음식들의 이름일 뿐 특이한 내용은 없다. 다만 북유럽 덴마크 인생학교(아래 폴케호이스콜레)에서 덴마크, 일본, 중국에서 온 학생들이랑 함께 만들어 먹은 음식이라면 좀 다르게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장 먼저 어려운 것은 요리에 맞는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첫 번째 불닭볶음면은 그 인기를 해외에서도 실감했다. 아시아 마트랑은 차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떨어진 학교였지만 아시아 마트까지 찾을 필요 없이 학교에서 40분 떨어진 마트에 불닭볶음면을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정 먼저 불닭볶음면 챌린지를 시작했는데, 문제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매운 것을 잘 못 먹어서 먹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해 보겠는가. 한국의 매운맛에 대한 경고를 단단히 한 다음 우유까지 옆에 챙겨두고 모두 시식에 들어갔다. 걱정과는 다르게 독특한 매운맛을 잘 즐겼다.

"와, 뭔가 킥이 있는데... 맛있는 킥이 있는 것 같아!"

덴마크 친구의 표현이다.
 
매운 라면을 먹은 다음 단체사진
 매운 라면을 먹은 다음 단체사진
ⓒ 양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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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떡볶이를 한 날에는 이미 불닭볶음면의 매운맛을 아는 친구들이 모여서 다시 한번 한국의 매운맛을 즐겼다. 우유를 좀 섞어서 로제 떡볶이도 선보이고, 라면이랑 섞은 라볶이 그리고 가장을 기본으로 한 간장 떡볶이까지… 재료는 아시안 마트에서 공수해 온 떡볶이 소스와 떡으로 흉내만 낸 정도였다.

한국 음식을 하는 날이면 학교에서 친구들이 점점 더 많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고추장과 소면으로는 비빔면을 만들었다. 소스만 미리 준비해 주고 재료를 준비하는 일과 소면을 삶아서 준비하는 일은 각자 그룹을 나눴다.

비빔면이 거의 다 준비되었을 때 한국의 비빔밥을 유난히 좋아하던 그날의 당직 선생님이 학생 식당을 찾아서 비빔면을 맛보고는 너무 맛있다며, 아마도 나는 나라를 잘못 태어난 것 같다는 농담을 했다.

하루는 비가 내려서 전을 한번 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여러 재료는 학교 식당에서 얻어왔고, 아시안 마트에서 산 김치를 특별히 모셔 왔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이곳은 덴마크이고 코펜하겐이랑 차로 1시간 이상 떨어진 학교라는 것을 강조한다.

감자전을 만들어 선보였을 때는 덴마크에도 비슷한 요리가 있다면 친구들이 소개해 줬다. 참여한 친구들에 비해서 김치전에 들어갈 김치가 너무 적어서 아주 적은 양의 김치가 김치전에 들어갔는데 김치의 맛을 이미 알고 있는 친구들은 금방 그 맛을 구분했다. 김치가 더 많이 들어간 김치전이 훨씬 맛있다는 것이다.

볶음밥은 학교 식당과의 협업으로 계란을 150개 정도 붙이고, 당근과 호박을 썰어서 대형 프라이팬에 볶아서 준비한 다음 내놓았는데, 교직원들과 학생들 모두 대만족을 하며 일일 게스트 요리사 역할을 한 한국 친구들에게 연신 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었다(관련기사 : 덴마크 인생학교에서 비빔밥 101인분을 만들다).

김치는 원래 학교에서 선보일 계획이 없었지만, 김치 만들기를 간절히 원하는 친구의 요청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학교 식당에서 고춧가루를 구할 수 있어서 재료를 구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는데 김치에 핵심이 되어야 할 배추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학교에서 덴마크 배추를 키워서 학교 식당에서는 덴마크 배추김치를 추천하기는 했는데, 덴마크 배추의 맛을 아는 친구가 강력하게 반대했다. 덴마크 배추로는 그 맛이 나지 않는다며 주말에 코펜하겐에 나가는데 아시아 마트에 가서 배추와 무를 사 가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김치 프로젝트는 시작이 되어서 하루 전에 배추를 소금에 절여두고, 다음날 김치 만들기를 도와줄 친구들이 모였을 때, 양념을 채우기로 했다. 숙성해야 해서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겉절이도 만들기로 하고, 덴마크 배추로 만든 김치의 맛이 궁금했던 나의 주장으로 덴마크 배추를 이용한 김치도 만들었다. 숙성이 필요한 김치는 슬로우 김치, 바로 맛을 볼 수 있는 김치는 패스트 김치라고 부르기로 했다. 

정성스럽게 김치에 양념을 배게 하고, 겉절이를 만들어 김치 맛을 볼 차례. 그냥 김치만 먹는 것은 그렇다면서 냄비 밥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흰 쌀밥에 김치만 있는 상이 차려졌다. 분명히 저녁도 든든하게 챙겨 먹은 친구들이었는데 흰 쌀밥에 김치 반찬 하나에 이렇게 맛있게 먹는 장면은 상상 못했다.

김치 만들기는 봄 학기에 찾아왔을 때도 요리 동아리에 요청이 있어서 우연히 진행했었는데 이제는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에 오면 꼭 해야 하는 통과의례와 같은 일이 된 것 같다.
 
김치를 담근 다음 겉절이와 흰 쌀밥을 함께 나누고 즐거운 표정의 단체사진
 김치를 담근 다음 겉절이와 흰 쌀밥을 함께 나누고 즐거운 표정의 단체사진
ⓒ 양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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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함께 만들어서 나눈 음식은 김밥이었다. 김은 아시아 마트에서 사두었었고 다른 재료들은 역시 학교 식당에 부탁해서 흔쾌히 얻을 수 있었다. 미리 준비한 재료들을 가지런히 잘라서 두고, 김 위에 재료들을 놓고 말아야 했다.

김밥을 마는 김발이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신경을 집중해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만들어 잘라서 접시 위에 올려 놓고 보니 모양과 색깔도 그럴싸하다. 참기름을 발라서 김밥에 윤기도 더하고 풍미도 더했다. 각자가 만든 김밥을 서로 청하기도 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시도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김밥을 정성스럽게 썰고 있는 아킬레스
 김밥을 정성스럽게 썰고 있는 아킬레스
ⓒ 양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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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라는 코드로 언어의 장벽 없이 함께 할 수 있었고,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통해서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로 일상을 공유하는 기숙 환경이 아니었다면, 다양한 문화의 배경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면 이런 시간을 일상의 작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었을까?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1921년 1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여전히 남은 상태에서 덴마크의 교육학자 피터 매니케(Peter Manniche)는 IPC를 만들기 위해서 했던 생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서로 전쟁했던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일하고 공부하면 어떨까. 그것이 상호 존중, 수용, 평화를 촉진하는 일 것이다."

태그:#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 #보세이, #자유학교, #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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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만들기 수업을 거친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입니다. IT/인터넷 업계에서 기획자로 일했고, 코워킹 스페이스를 창업하고,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삶을 위한 자유학교 운영자이기도 합니다. 쉼과 전환을 위한 안전한 실험실 - 자유학교 https://www.jayuskol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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