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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탄압 중단’과 ‘성실교섭 촉구’를 내걸고 단식농성을 시작한 예병기 서브원 지회장
 ‘노조탄압 중단’과 ‘성실교섭 촉구’를 내걸고 단식농성을 시작한 예병기 서브원 지회장
ⓒ 이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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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으로 신장을 절제한 한 노동자가 '노조탄압 중단'과 '성실교섭 촉구'를 내걸고 단식을 시작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은 4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서브원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같이 밝혔다.

예병기 서브원 지회장은 "(노숙농성) 50일이 되는 오늘, 저는 단식 노숙농성에 돌입한다"며 입장문을 공개했다. 그는 "40일 넘게 노숙농성을 하고 있으나 사측은 여전히 교섭할 생각도 없고, 지회의 수정 요구안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 지회장은 "신장암으로 신장 1개를 절제하여 신장이 하나밖에 없고 당뇨, 고혈압 등의 기저질환도 있다. 노숙농성이 20일을 넘어가며 신장 수치가 정상의 2배 이상 높아져 병원 응급실행도 잦아졌다"고 설명하고는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떠한 투쟁도 하지 못하고 쓰러질 것 같아, 더 몸이 상하기 전에 단식 노숙농성에 돌입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노숙농성 일주일 전 신장암 정기검진에서 신장 바로 위에 위치한 부신에 종양이 발견됐다. 의사는 부신암이 의심되니 입원해 정밀진단 검사를 받으라고 했지만 때를 놓치면 노조가 와해될 것 같았다"며 정밀진단을 내년으로 미뤘다고도 밝혔다.
  
화섬식품노조가 4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서브원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화섬식품노조가 4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서브원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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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기자회견문에서 "올해 1월부터 노사간담회를 진행하며 복지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측은 3월 논의되고 있던 복지포인트 인상, 하계휴가 3일 신설, 식비 인상 등을 일방적으로 실시하며 노사간담회 성과를 무력화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금교섭 상견례를 앞두고 비조합원만을 대상으로 임금인상을 실시한 뒤, 교섭 자리에서 이미 임금인상을 실시하였기에 노조와는 협상할 내용이 없고 추가적으로 지급할 것도 없으니 사측에 백지 위임하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2022년 첫 교섭부터 교섭위원들에게 교섭시간을 제공하지 않는 등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다고도 밝혔다.

입장문에서 예병기 지회장은 대주주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를 비판했다. 그는 "서브원 지분 60.1%를 보유한 사모펀드 어피너티는 얼마 전 800억에 달하는 유상감자를 단행하여 투자금을 회수하는 결정을 했다. 약 2천억 유상감자를 단행한 지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두 번의 유상감자로 회사의 자본금은 계속 감소하여 빈껍데기만 남은 회사로 전락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 지회장은 "노조의 요구안은 유상감자 금액의 1/10,000(만분의 일)도 되지 않는데, 그마저도 무시하고 있으면서 투자금 회수에 정신 팔린 결정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박영준 화섬식품노조 수도권지부장(한국팩키지지회장)은 "수도권지부 락앤락에서도 (어피너티의) 노조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신환섭 화섬식품노조 위원장, 이영섭 대전충북지부장, 박영준 수도권지부장, 김장열 태경BK지회장.
 왼쪽부터 신환섭 화섬식품노조 위원장, 이영섭 대전충북지부장, 박영준 수도권지부장, 김장열 태경BK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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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환섭 화섬식품노조 위원장은 "우리는 스스로 싸움을 걸지는 않으나,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진 않는다"라며 "단식은 보통 마음으로 하는 거 아니다. 노조 또한 새롭게 의지 모아서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이영섭 화섬식품노조 대전충북지부장(정식품지회장)은 "이 싸움은 노조가 인정받고 노동3권을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서브원지회 투쟁 승리를 위해) 지부 운영위에서 동조 단식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지부장과 함께 첫 동조 단식자로 나선 김장열 화섬식품노조 태경BK지회장은 "본인 몸도 안 좋은데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결정한 것에 대해서 같은 노동자 입장에서 너무 화가 난다"라며 "이 투쟁이 끝날 때까지 끝까지 함께하겠다"라고 말했다.

예 지회장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함을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라며 "화섬식품노조(민주노총)의 강력한 연대투쟁과 끈끈한 연대의 정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이며, 서브원지회도 타 지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연대를 실천하여 투쟁 승리에 기여하는 지회가 되도록 만들어 나가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기자회견 사회를 본 문병호 조직국장은 "회사에 항의하기 위해 저 먼 지방에서 올라온 노동자에게, 대한민국 경찰은 뜨거운 여름 햇살을 막아줄 자그마한 그늘막도, 쏟아지는 폭우를 막아줄 작은 비닐막도 허용하지 않았다"며 경찰을 비판했다. 예 지회장은 8월 16일 농성을 시작했다.
  
단식 31일 차 비가 내린 뒤 농성장
 단식 31일 차 비가 내린 뒤 농성장
ⓒ 화섬식품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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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예병기 지회장은 힘든 노숙농성을 진행하는 동안 "마음 뿌듯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브원 직원들은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글로, 노숙농성 현장에서는 간식으로 응원해줬다고 설명했다.

또 "길거리를 거니는 분들도 간식을 사주시며 관심과 응원을 해주셨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저녁 늦게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분이었다"라며 노숙농성 이유를 설명했더니 "자양강장제를 사다 주시면서, 저희를 위해서 힘든 투쟁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잠시 멍했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설명했다.

㈜서브원은 기업의 유지, 보수, 운영 등에 필요한 소모성 자재를 구매 대행하는 기업으로 2022년 매출 기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서브원은 ㈜LG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상황이 닥치자 그를 해소하기 위해 2019년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어피너티에퀴티파트너스에 지분 60%를 매각했다.

덧붙이는 글 | <노동과세계> 중복 송고했습니다.


태그:#서브원, #노조탄압, #어피너티, #MRO,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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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밥 먹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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