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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머리가 없는 편이다. 평생 전구 몇 번 갈지 않고 살아왔다. 남의 손에 의지하는 습관을 합리화하느라 육체적 노동을 가벼이 여겼음을 고백한다. 어떻게든 돈으로 해결하는 삶은 편리하지만 어느 한편은 취약하다.

허약한 일머리는 작업에 앞서 두려움을 껴안는다. '할 수 있을까'라는 자기 의심이 들면서 머릿속으로 작업 상황을 무수히 그려본 후 끼적끼적 다가선다. 각종 도구며 일의 순서 등이 정리되어야 시작할 마음을 먹게 된다.

난방비 절약을 위해 겨울을 별채에서 보내기로 마음먹고 철거업체에 의뢰해 벽을 뜯어낸 것이 지난 유월이다. 내부 아치문을 만들고 외부에 데크를 깔기로 했다. 그동안 장마와 폭염을 핑계로 한 차일피일이 석 달을 넘겼다.

혹시나 여러 군데 견적을 받아봤지만 역시 비용이 만만치 않다. 특히 지방은 자재 운송비와 인건비가 절반을 훌쩍 넘겨 말 그대로 배꼽만 있다. '이래서 시골에선 셀프라고 하는구나'. 살짝 오만과 오기가 오고 갔다. "내가 직접 하지 뭐".

유튜브와 웹사이트를 헤집었다. 머릿속에서 수십 번의 공사가 완성됐다가 망가지고 다시 시도했다가 허물어지기를 반복했다. 생소한 일인 데다가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이 머뭇거리게 했다. 일단 하기로 한 것, 인건비를 떼서 장비부터 구입했다.

원형톱, 직소(Jigsaw), 해머드릴... 자주 쓰진 않을 테니 저렴한 것으로. 마지막까지 고민한 것은 용접장비인데 딱 한 번 쓰고 말 것 같아서 대안을 찾기로 했다. 이제 인건비를 썼으니 물러설 수 없다. 배수진을 쳤달까?

긴 추석 연휴는 더 이상 머리만 굴리며 꾸물거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넉넉한 시간도, 유순한 날씨도 그랬지만 명절에 찾아온 아들의 힘을 빌릴 수 있는 딱 하루의 기회 때문이었다. 이미 별채는 반 공사판이긴 했다.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현실'이라는 말은 피카소에게나 어울리는 것일까?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뚝딱은커녕 연필과 줄자는 늘 옆에 두고 찾는다. 목재를 자르면 길거나 짧다. 줄 쳐진 합판이지만 톱이 선을 따라 똑바로 가지 않는다.

아치문을 만들기 위해 문틀을 만들어 뚫린 벽에 끼워 넣으려니 뻑뻑해서 들어가지 않는다. 분명히 정확히 잰다고 몇 번을 들랑달랑했는데? 그라인더로 돌먼지를 뒤집어쓰며 울퉁불퉁한 벽면을 정리하고 가까스로 끼워 넣으니 금세 늙어버린 느낌이다.

영상에서 본 대로 버팀목에 오징어합판을 붙여 아치 상단을 만들고 나니 아차, 그 부분만 튀어나와 있다. 베끼기가 가져온 낭패다. 돌이킬 수 없어 컴프레서에 타카를 연결하고 문틀을 고정한다. 틈이 많이 벌어진 곳은 퍼티로 마감하기로 한다.
 
진행 중인 외부 데크, 내부 아치문 작업
 진행 중인 외부 데크, 내부 아치문 작업
ⓒ 김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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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두 도시로 가고 나니 이제부턴 혼자 해내야 한다. 혼자가 아닌듯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흥을 돋운다. 데크를 설치할 곳엔 아연각관으로 만들어진 틀이 있지만 간격이 넓고 위험하다. 각관 용접 대신 중간중간 방부목 각재로 지지대를 만들어 넣었다. 하루 종일.

그러는 틈틈이 뒤뜰에서 여물어 터진 밤을 줍고 벌겋게 익어가는 감을 땄다. 텃밭에 비닐 터널을 만들고, 천리향과 재스민 분갈이도 해주고. 일하다가 딴짓한다고 한 소리 들을 상황이지만 내가 내켜서 하는 대로 작업 스케줄은 진행된다.

사놓은 데크목에 오일스테인을 발라 놓는다. 이제 깔면 되는데 아연각관에 방부목을 고정시킬 나사가 없다. 주문했는데 배송이 늦다. 대신 클레마티스를 위한 울타리를 세운다. 예상과 달라지는 상황이 재미있기도 하고, 걸림이 있어도 덤덤히 해가는 나를 보는 것이 유쾌하다.

결과물이 매끄럽지는 않다. 한 번에 마무리되지 않아 다시 손보아야 하는 일이 생긴다. 또 하다 보면 일이 커진다. 이번 아치문만 해도 주변의 벽지를 뜯어내고 페인트를 칠해야겠다. 번거롭지만 하나의 변화에 따라 또 다른 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편협한 경험으로 찌그러진 나를 조금씩 팽창시켜 주는 듯하다. 해보지 못한 일을 해볼 수 있음에 즐겁기도 하고. 비록 어설픔이 곳곳에 남았지만 "아, 이 대단한 작업을 내가 했네?" 평생 이러고 살게 분명하다.

태그:#은퇴, #5도 2촌, #전원생활, #시골살이, #집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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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초보 뜨락생활자. 시골 뜨락에 들어앉아 꽃과 나무를 가꾸며 혼자인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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