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남편의 여든여섯 번째 생일이다. 어머님에게 태어나 팔십육 년을 살아왔다. 어느 날은 아프기도 했고 어느 날은 돌부리에 넘어져 고통의 건널목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하는 인내도 필요했다. 인생이란 강은 한 번에 건널 수는 없는 것이다.
젊은 날, 사랑도 했고 이별도 했었다. 산다는 것은 기쁨만이 동반하는 건 아니었다. 사랑을 잃고서야 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목표를 세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꿈을 향해 꿋꿋이 삶을 살아낸 사람.
그리고 서른두 살 나이에 결혼을 했다. 워낙 단단하고 의지가 굳은 사람이었다. 가정은 남편의 의지처였고 꿈이었다. 딸들이 하나둘 태어나 자라고 대학을 보내고 모두가 결혼을 해서 그들만의 둥지를 만들어 살고 있다.
아 아! 자유롭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살고 있는 지금, 마음은 하늘을 날이 오를 것만 같다. 참 오래 걸렸다. 결혼하고 55년 반세기가 넘었으니.
며칠 전 명절에는 딸들 가족들이 릴레이하듯 한 가족 한 가족씩 터치를 하면서 와서 생일 겸 맛난 것도 사주고 갔다. 그중에 맨 나중에 온 막내딸과 사위가 와서 아빠와 나들이도 하고 맛있는 저녁밥도 함께 먹었다.
막내 사위는 예약을 받고 작은 레스토랑을 하는 세프다. 나보다 음식을 더 잘하는 사람. 막내 사위 덕에 생일날 미역국도 먹고 색다른 음식도 가끔은 먹는다.
전날 시장을 다녀온 사위는 커다란 백합을 사다가 다음 날 아침 남편 좋아하는 백합을 넣고 미역국을 끓여 아침상을 차려 주고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축하 노래도 불러주었다.
조촐한 남편의 생일상, 남편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촛불을 끄기 전 남편 소원을 물어보니 "이제 와서 무슨 소원. 가족 건강하고 서로 존중하고 화목하게 살아 주면 되지"라고 말한다. 그 소원 하나 붙들고 지금까지 가족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이제는 나이 들어 마음이 편안한 남편을 바라본다. 그 남편 곁에서 반세기를 살아온 나도 더 바랄 것이 없다. 늙는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이토록 편안한 것이다.
생이 다 하는 날까지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살아가기를 염원해 본다. 더 많은 욕심을 부린들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남편이 지금까지 곁에 계셔 주는 것이 감사하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편안하다는 박경리 작가의 시 구절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