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송합니다.'

쓸데없는 문과를 나와서 죄송하다는 유행어를 대신할 신조어가 필요하다. 일 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독서인구'는 2019년 이후 50% 미만으로 줄고 있다. 독서와 출판 관련 정부 예산이 삭감되는 2023년 가을, 발칙하게도 북클럽을 시작한다니 매우 '독송합니다'만, 책읽기, 특히 '함께읽기'의 즐거움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이미 생존을 위한 필수템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군산 원도심에 자리 잡은 '인문학창고 정담'에서 나누는 정담의 시간. 정담북클럽 이야기를 차근히 풀어본다.
   
정담북클럽_무지개독서회_다정한것이 살아남는다
▲ 정담북클럽 정담북클럽_무지개독서회_다정한것이 살아남는다
ⓒ 김규영

관련사진보기

   
시작은 작고 낯설고 어색하다.

2023년 10월 첫 번째 목요일. 정담북클럽의 시작은 무지개독서회가 맡았다. 낯선 자리의 긴장감을 풀어줄 책은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2021, 디플롯)이다. 시작은 늘 부담스럽지만 말을 꺼낸 당사자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

매주 만나는 무지개 모임을 수년간 이어오고 있지만, 군산에서 활동하는 다른 책모임과 연결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회원 몇 분이 개인 사정으로 나오기 어려워졌던 작년 초에 처음 갖게 되었다. 독서회 참석자가 열 명이 넘을 때도, 딱 두 명일 때도 있었기에 모임 인원수는 걱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함께 읽는 즐거움을 누리던 회원이 겪을 상실감이다.

   
정담북클럽. 여럿이 모여 군산북클럽네트워크로 함께
▲ 정담북클럽 정담북클럽. 여럿이 모여 군산북클럽네트워크로 함께
ⓒ 김규영

관련사진보기

   
무지개 회원들의 적극적인 응원으로 다른 책모임에 접촉을 시작했다. 지인과 소셜네트워크로 확보한 연락처를 손에 쥐고도 어색하고 부끄러워 몇 번을 주저하고, 몇 번을 거절당하고, 몇 번을 조정한 끝에, 마침내 2022년 10월 다섯 개의 북클럽 대표들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함께읽기'를 하는 모임을 부르는 이름이 여럿이다. 나 자신도 참여하는 모임의 느낌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 때문에 명칭을 통일시키기가 어렵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의미는 충분하다.

모든 독서회는 '함께 책읽기'라는 행위가 같을 뿐, 각 모임의 구성, 운영방식 그리고 방향성이 서로 다르다. 이미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내부 조율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외부 활동이 어렵거나 불필요한 경우가 많다. 다른 북클럽의 접촉을 공손하게 거절하는 뜻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산북클럽네트워크를 시작했지만 각 독서회의 상황에 따라 접촉의 연결과 끊김은 반복된다. 새롭게 연결된 다섯 개의 모임은 군산대학교 인문도시센터와 기획한 정담북클럽을 통한 새로운 접촉을 기다리고 있다. 서로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의미는 충분하다.

   
인문학창고 정담에서
▲ 정담북클럽 인문학창고 정담에서
ⓒ 김규영

관련사진보기

    
2023년 군산대학교 국립대학육성사업으로 10월 첫 번째 목요일부터 시작하는 16주의 정담북클럽은 '오픈북클럽'과 '초대방손님과 이야기'로 구성된다. 다섯 독서회가 평소의 운영방식 그대로 진행하는 '오픈북클럽'은 해당 독서회 회원은 물론, 아무 독서회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특히 책모임에 한 번도 참여해 보지 않은 시민들이 구경삼아 나와보시길 적극 권한다. 평소 책을 거의 읽지 않는 분이거나 반대로 매일 책을 읽는 분이라도 책모임의 경험이 없다면 더욱 권한다. 만약 '무지개'의 방식이 맞지 않다면 다음주의 오픈북클럽을 음식과 함께 느긋하게 진행할 '타오?!'를 만나보시면 된다. 저녁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분들은 특별히 오전 10시에 진행하는 세 번째 주의 '산들' 오픈북클럽이 맞춤이겠다. 네 번째 주에는 자유분방한 '세모이'와 대학생으로 구성된 '독마양'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다.

11월부터는 '초대방손님과 이야기'를 시작한다. 황석영 작가, 강형철 시인, 김연수 작가, 최진영 작가, 미술사학자 김정희 교수, 작가로 데뷔한 천지윤 해금연주가를 만날 수 있다. 최근 성황리에 종료된 군산초단편문학상 수상자도 섭외 중에 있다. 손님과 이야기하는 방식은 매번 조금씩 다르겠지만, 시민과 시민이 책을 매개로 모여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 '인문학창고 정담'의 시간은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첫번째 정담북클런의 책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정담북클럽 첫번째 정담북클런의 책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김규영

관련사진보기

   
브라이언 헤어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호모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지고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이유가 친화력과 다정함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인구가 과밀해지고 혐오가 넘쳐나는 현대의 인류에게는 '접촉'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임이 편하고 좋지만, 가끔은 낯선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 책을 매개로 만나는 북클럽은 좋은 접촉의 기회다. 북클럽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 모일수록 더 다양한 의견과 시각을 나눌 수 있어 좋다. 기후재난과 비인간화의 혐오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북클럽으로 만나자. 여럿이 모여 정담을 나누자.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게재예정


태그:#정담북클럽, #무지개독서회, #인문학창고정담, #인문도시센터, #이야기그릇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