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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특정 장소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먹거리가 있었다. 이를테면 기다란 꼬치에 올망졸망 줄줄이 꿴 과일을 설탕시럽으로 코팅한 탕후루가 그랬다.

중학생인 두 딸이 어렸을 때 두어 번 인천 차이나타운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때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달콤한 탕후루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런데 불과 1, 2년 사이 탕후루 전문점이 급증하더니, 이제는 편의점에서도 자체 출시한 아이스 탕후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제 탕후루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흔한 간식이 됐다. 

'마라탕후루' 하실래요?
 
제주도에서 맛본 감귤 탕후루는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줬다.
▲ 감귤 탕후루 제주도에서 맛본 감귤 탕후루는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줬다.
ⓒ 오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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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청소년 이하 아이들에게 탕후루의 인기는 단연 최고다. 아이들 사이에서 '마라탕후루'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마라탕과 탕후루'를 하나로 묶은 말이라고. 맵고 자극적인 마라탕을 먹은 뒤 달콤한 탕후루로 입가심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아이들에게 '마라탕후루'는 자연스러운 외식 코스로 자리 잡았다. 어디 그뿐일까.

'맡긴다'란 뜻의 일본어로 주방장이 알아서 만들어 내놓는 일본식 코스 요리인 오마카세와 탕후루가 만나 '탕후루 오마카세'를 탄생시켰다. 과일뿐 아니라 오이, 떡, 마시멜로, 젤리 등등 만드는 사람 마음대로 꽂아 만드는 일종의 랜덤 탕후루다. 그쯤 되면 벌칙이 아닐까 싶은 별별 희한한 탕후루는 특이하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SNS를 타고 빠르게 퍼지고 있다.  

어느 나라, 어떤 디저트든 우리나라에만 오면 모두 K디저트화 된다는 말이 있다. 마카롱은 뚱카롱으로, 크로와상은 크룽지로, 소금빵은 생크림으로 속을 가득 채워 극강의 단짠으로 거듭났다. 탕후루 역시 탕후루 빙수, 탕후루 아이스크림, 탕후루 하이볼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 중이다. 

탕후루 인기, 아이들 건강 걱정 되지만
 
이젠 편의점에서도 자체 출시한 탕후루를 판매한다.
▲ 샤인머스킷 탕후루 이젠 편의점에서도 자체 출시한 탕후루를 판매한다.
ⓒ 오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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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후루의 높은 인기만큼이나 그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전문의들은 지나친 당 섭취로 인한 소아당뇨와 충치 유발, 니코틴만큼이나 강한 설탕의 중독성 등을 경고한다. 청소년의 당 과다 섭취 문제로 탕후루가 국정감사에 소환될 정도니 말 다 했다. 

그럼에도 탕후루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여전히 SNS에서는 탕후루 먹방, 탕후루 실패 없이 만드는 법 등등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탕후루 관련 콘텐츠가 새롭게 업로드된다. 알록달록 반짝이는 예쁜 비주얼과 시럽 코팅막이 깨지는 '파사삭' 소리까지. 비주얼과 ASMR까지 완벽한 탕후루는 최적의 SNS 아이템이다. SNS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아이들에게 탕후루에 대한 어른들의 경고는 통하지 않는다. 

"그치만... 차라리 과일을 먹는 탕후루가 건강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첫째 딸이 내 얘길 듣더니 탕후루 편을 들었다. 젤리나 아이스크림, 도넛보다야 탕후루가 더 나은 것 아니냐는 반론을 듣고 보니 또 그런 것도 같다. 어쨌든 과일이라도 먹으니 말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한 꼬치 기준, 딸기 탕후루에는 9.9g의 당이, 블랙사파이어 탕후루에는 24.7g의 당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는 카페에서 파는 스무디 한 잔에 들어있는 약 28~107g의 당보다도 적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으로 사회적 뭇매를 맞는 탕후루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탕후루가 다른 디저트보다 낫다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 탕후루는 양이 적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어렵다. 한 꼬치 이상을 먹게 될 경우 세계보건기구인 WHO에서 권장하는 당 섭취량을 훌쩍 넘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또 충치 유발 지수도 높아서, 탕후루를 자주 먹는 것은 충치에 매우 치명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탕후루는 충치 유발 지수도 높아서, 자주 먹는 것은 위험하다.
 탕후루는 충치 유발 지수도 높아서, 자주 먹는 것은 위험하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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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탕후루를 분별없이 생산하고 소비해내는 우리에게 있는 건 아닐까? 탕후루의 인기를 타고 한몫 건지고 싶은 누군가의 욕심이 만들어낸 세상 달달한 탕후루. 이걸 별생각 없이 소비하고 과시하는 누군가 올린 SNS 게시물들. 가뜩이나 유혹이 많은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탕후루를 먹고 버린 꼬치가 쓰레기봉투를 뚫고 나온 모습을 빗대어 '탕후루 고슴도치'라고 한다. 뾰족한 꼬치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분들을 위협하고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수북한 꼬치와 종이컵은 새로운 쓰레기 문제를 야기한다. 끈적끈적한 탕후루 관련 쓰레기 때문에 'NO탕후루존'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결국 탕후루 보다도 탕후루를 먹는 누군가가 문제다. 

과유불급, 넘치는 건 모자람만 못하단 말이 있다. 탕후루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달콤한 디저트들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엔 그곳에 가야만 먹을 수 있었고, 생일처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디저트를 지금은 아무 때고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 무조건 먹지 말라고 만 할 수 있을까? 경험상 그럴 경우 아이들의 반발심만 살게 뻔하다. 설탕 폭탄으로부터 두 딸을, 우리의 아이들을 구할 작전이 필요하다.  

사실 아이들도 탕후루를 비롯한 고열량 디저트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다만 모르는 척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일 뿐. 나는 그 부분을 살짝 건드리기 위해 SNS를 적극 활용했다. 

아이들과 함께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탕후루로 대표되는 설탕의 위험성을 검색했다. 앞서 말했던 비만, 당뇨, 충치 등의 문제점들을 다룬 기사와 영상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같이 내용을 공유하며 각자의 생각을 주고받았다. 살찌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비만은 가장 강력한 위협이었다. 단순히 '먹지 말라'가 아니라 맛있는 거 오래 먹고 싶으면 지금부터 조절하자는 나의 의견에, 아이들도 동조했다. 

SNS 알고리즘은 한번 검색한 이슈를 계속 띄우는 특성이 있다. 전에는 탕후루 먹방만 띄웠다면 이젠 탕후루의 문제점도 같이 뜬다. 그렇게 자꾸 아이들의 눈과 마음을 슬쩍슬쩍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일단 성공이다. 

치팅데이 대신 달콤데이를 해보자 

문제를 파악했으니 해결 방안도 아이들과 함께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모으던 중 둘째 딸이 치팅데이 대신 달콤데이를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오, 좋은데! 일주일 중 6일은 고구마나 과일 같은 건강한 간식을 먹고 딱 하루 달콤데이에만 먹고 싶은 간식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달콤데이를 운영한 지 벌써 석 달쯤 됐다. 

처음엔 많이 힘들 것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6일은 금세 지나갔다. 드디어 맞이한 첫 번째 달콤데이! 그동안 꾹꾹 참았던 달콤 디저트를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흥분했다. 그 맛은 상상 이상으로 맛있었다. 같은 것도 전보다 훨씬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최상의 가심비를 경험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디저트는 생각보다 너무 달아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의 적응력이란 참.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맛있는 설탕을 오래오래 먹기 위해서 '거리두기'를 연습하고 있다. 

사실 나에게 탕후루는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좋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고마운 존재다. 딸기 탕후루를 보면 인천 차이나타운이 먼저 생각난다. 감귤 탕후루는 제주도 가족 여행을 떠올린다. 어른이 된 지금도 솜사탕만 보면 왜인지 설레는 것처럼, 훗날 아이들에게도 탕후루가 지금을 떠올리게 할 달콤한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태그:#탕후루, #설탕, #디저트,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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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쓸모 있고 소모할 수 있는 것들에 끌려 그때그때 다른 걸 읽고 새로운 걸 만듭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 오늘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매우 사적인 아날로그적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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