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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교외 활동이 있어 오랜만에 맨해튼으로 향했다. 지도 어플리케이션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경험상 날 좋은 5월이면 각종 행사가 있기 마련, 그렇다면 교통 통제가 있을 것이다. 안그래도 일방 통행이 많아 복잡한 맨해튼이니 시간에 대려면 서둘러 나서자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카네기홀 주변은 폴리스라인이 거미줄처럼 쳐있고 교통 통제가 심했다. 자전거 관련 행사인 모양인데 쉽게 끝나지 않을 모양새다. 수백대의 자전거들이 달리는 큰 길 아래위로 한두 블록이 통째 차량 통행 불가다. 하는 수 없이 무거운 악기를 들고 꽤 긴 거리를 걸어 올라갔다. 

이제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갑자기 경찰과 스태프 두 사람이 길을 건너기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옆 블록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한다. 왜냐고 물어도 답은 없고 지시하기 바쁘다. 건물을 빙 돌아 올라오려고 했던 길을 내려가면서야 이해가 갔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까지 합세해서 윗 블록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급히 구한 안내 브리핑을 확인하고 차에서 내려 걷는 중에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여러번 통제를 받고 이동해야 했다. 주변 대중교통 상황과 인원 밀집 정도에 따라 이뤄지는 듯 했다.
▲ 행사중인 맨해튼에서의 경찰의 교통 통제 급히 구한 안내 브리핑을 확인하고 차에서 내려 걷는 중에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여러번 통제를 받고 이동해야 했다. 주변 대중교통 상황과 인원 밀집 정도에 따라 이뤄지는 듯 했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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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크러시'를 보다 

한국처럼 발달된 나라에 대응 매뉴얼이 없었을 리가 없다. 순응적이고 알아서 질서 있게 착착 움직일 줄 아는 한국인들이 통제 상황에 제멋대로 굴었을 리도 없다.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다니고 지하철에서도 와이파이가 터지는 IT 강국에서 신고가 들어가지 않았을 리도 없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외딴곳도 아니고 수도 서울 한복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태원 참사가 이해 되지 않았었다. 그 궁금함이 심약한 나를 <크러시> 화면 앞으로 이끌었다. 또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미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는 참사 당국 한국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아무래도 모국의 일이니 신경이 쓰였다. 안전 후진국이라고 호도하면 어쩌지.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되려 한국은 안전 질서 유지를 잘해오던 나라였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더 이해되지 않는 참사가 되고 말았지만. 
 
파라마운트 플러스의 신작 다큐 시리즈 크러시(Crush) 메인 포스터. 1부-골목, 2부-군중, 2부작이고 총 상영 시간은 90분이다. 생존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참사 당일의 현장 상황을 재구성했다.
 파라마운트 플러스의 신작 다큐 시리즈 크러시(Crush) 메인 포스터. 1부-골목, 2부-군중, 2부작이고 총 상영 시간은 90분이다. 생존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참사 당일의 현장 상황을 재구성했다.
ⓒ Param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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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내내 가리고 봤지만 몸살이 난 듯 하루 종일 몸이 욱신거리고 마음이 아렸다. 그만큼 여섯 시간 남짓의 당시 현장을 잘 담아내었다. 참사 전까지 피해자들이 보낸 일상이 소중히 다루어졌기에 희생자들의 부재가 더 크게 다가왔고, 그들의 고통이 화면 밖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온 듯싶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단지 참사당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함께 갔으나 함께 돌아오지는 못한 그들의 소중한 사람들에대해 소상히 들려주려 애썼다. 오히려 그것이 159라는 숫자로 박제될 뻔한 이들을 '이웃'으로, '사람'으로 다가오게 해주었다. 

내가 본 <크러시>는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 시키려거나 격하게 책임 추궁을 하려 드는 작품은 아니다. 당연한 질문을 묵직하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은 사고지만, 막을 수 있었던 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고 구분하면서.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했다는 이웃 누군가가 그랬었다. 이것 하나쯤 소홀해도 어떠랴 하는 일들이 여러 개 겹치면 사고로 이어지더라고. 사전에 미루어 두었던 책임은 사후에도 종종 미루게 되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말이 틀림이 없어 서글프다. 
  
책임자들의 공감 능력 부족도 슬프지만, '왜'라는 물음이 외면받는 것이 너무 슬펐다.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 놓으면 다음 소는 안전히 지킬 수 있다. 소를 다시 기를 생각이 없다면 몰라도 말이다. 참사를 막지 못한 것은 과오로 남겠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반성하며 튼튼히 다시 세운 후속 작업은 업적이 될 수 있음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안전에 미리 유난을 떠는 공공기관들

미국은 유달리 안전에 유난을 떠는 나라다. 각종 행사뿐 아니라 지난여름 폭염과 지난달의 폭우 때에도, 핼로윈이나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 같은 일에도 언론과 학교와 관공서의 알람이 귀찮을 정도로 주의를 주고 회의 결과와 지침을 알려온다.

현장에 가면 더 난리다. 소방 훈련, 긴급 대피 훈련을 유치원 때부터 받아 줄을 서는데 이골이 난 주민들은 되려 시큰둥한 표정들이다. 공직자들의 책임감이 유달리 뛰어나서만은 아니다. 희생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큰 문화이기도 하고, '책임질 일'이 터지면 무서울 정도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도 있다. 

뉴욕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었던 BTS 콘서트 날, 지하철이 무정차 운행을 했었다. 인원 통제 때문이다. 그날 뿐 아니라, 차량 통제와 인원 통제로 통행에 사소한 불편을 겪을 때마다 불평했던 날들을 가만히 반성해 본다. 

80을 산다치면 60년은 더 살았을 청년들이 생각난다. 사고만 아니었다면 함께 보냈을 수십 년의 시간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족분들에게 닿지 않을 위로를 보낸다.
 
10월이 되자 핼로윈을 즐기는 집들이 장식을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원래 할로윈을 지키지 않아 관심이 없었지만, 올해는 이웃들의 장식을 보자 이태원 참사가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 이웃의 할로윈 장식 10월이 되자 핼로윈을 즐기는 집들이 장식을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원래 할로윈을 지키지 않아 관심이 없었지만, 올해는 이웃들의 장식을 보자 이태원 참사가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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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태원참사1주기, #크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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