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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은 그 가문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윗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음식은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전통음식은 계승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전수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집안의 전통음식, 옛 음식을 전수해 줄 함양의 숨은 손맛을 찾아 그들의 요리 이야기와 인생 레시피를 들어본다. [기자말]
요리연구가 정노숙 여사
 요리연구가 정노숙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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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생활 40년 차로 요리 인생도 40년을 맞았다'며 자신을 평범하게 소개한 정노숙씨에게는 궁중요리까지 배운 전통요리가의 이력이 숨어있다. 그저 요리하는 게 재미있어서 꾸준히 음식에 대해 궁금증을 파헤치며 공부를 해 온 그녀는 현재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서 살고 있다.
  
어머니는 최고의 요리사

그녀의 요리 밑바탕은 어머니로부터 채워졌다고 할 수 있다. 스타 셰프의 음식도 어머니가 해 준 음식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 준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찜국이다.

조갯살, 홍합, 새우 등 많은 해산물과 들깨, 고사리, 그리고 방아잎이 들어가는 찜국은 그녀에게 추억의 맛이다. 찜국이 생각나 직접 해 보았지만 어머니 손맛은 따라갈 수 없었다고. 어머니는 그녀에게 최고의 요리사였다.

마천에서 살게 된 그녀를 향해 여러 요리사는 "복 받았다"고 말하며, 어르신들 음식을 빨리 배워두라고 했다.

"뽀대 나는 음식보다 할머니들의 음식이 충분히 가치 있어요. 그걸 기록해 놔야 그 기반으로 다른 음식을 충분히 만들 수 있거든요. 그게 중요해요."

실제로 그녀는 마을 어르신이 해 준 묵사발이 맛있어서 만드는 법을 받아 적어놓은 적도 있다.

"메밀묵을 육수에 콩나물과 양념을 넣어 만들어 주셨는데 감동이었어요. 정말 옛날식, 옛날 맛이었어요. 그 맛을 잊고 싶지 않았어요."
  
궁중음식을 알게 된 후 찾아온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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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정노숙씨는 함양에 처음 왔을 때 지역 전통요리를 찾는 것에 의욕이 넘쳤다. 함양의 전통요리를 공부하고 싶어서 도서관, 문화원을 찾아다니며 기록을 살폈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록이 없었다.

"겨우 찾은 자료 중 하나가 군수가 오면 항상 말을 타고 마천방면으로 와서 옻닭을 먹고 갔다는 거예요. 그게 이 지역에서 유명했나 봐요. 기운도 좋고."

요리하는 것이 즐거웠지만 하면 할수록 궁금증도 커졌다. 음식을 좀 더 깊이 있게 하고 싶었던 정노숙씨는 이것저것 도전해 본 끝에 우리나라 궁중음식까지 섭렵하게 됐다.

"우리가 먹는 것 자체가 전통이잖아요. 집에서 먹는 된장찌개조차도. 그래서 진짜 전통의 뿌리가 뭔지 궁금했어요."

'전통의 뿌리는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며 그녀는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 한복녀 여사 밑에서 20여 년 궁중음식을 공부했다. 

"음식 공부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궁중음식연구원에 들어가 보자 해서 갔는데 거긴 임금을 위한 음식을 만드니 체질도 맞춰야 했죠. 배우면서 '아, 이렇게 해서 음식이 시작됐겠구나' 깨달았죠."

궁중음식도 사람이 먹는 음식이다. 음식은 몸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그녀는 이곳에서 식재료의 조화를 배우게 되었다. 그곳에서 한 분야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도 만났다. 전통을 찾아온 이들은 음식을 배우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도 했다.

궁중음식을 알게 된 후 그녀는 자신을 '종지그릇 정도의 실력에 불과하구나'라고 깨닫게 됐다. 그렇기에 그녀는 음식에 관해 거만해하지도, 아는 척하지도 않는다. 이후 그녀의 냉장고 안에는 그 많던 양념이 모두 사라졌다. 기본적으로 재료가 좋으면 우리가 쓰고 있는 걸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된 후로는 요리가 좀 더 자연스러워졌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형식에서 벗어나니 안정적이고 편안해졌고 더 행복해졌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니 어떤 음식을 누가 해 놓더라도 거기에 대한 존중이 생겼다.

"그전에는 내가 잘한다는 생각에 화려하게 하고 그랬는데 말이죠. 남의 것도 인정하게 되고 젊은 사람의 맛도 인정하게 되었어요."

전통을 현대에 맞게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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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머니가 요리사이듯 그녀는 어르신들이 오래전부터 해 오던 요리의 가치를 높이 샀다.

"예전 어머님들은 글자도 잘 모르셨잖아요. 몸으로 먹으면서 익히면서 요리하셨을 텐데 정말 대단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어요.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가 주어졌다면 더 많은 레시피가 전해 내려올 텐데 말이죠. 어르신들에게 궁금해서 여쭤보면 '이거 쪼금, 저거 쪼금 넣고 무치면 돼'라고 하시잖아요. 근데 제가 그걸 계량해서 넣어봤더니 신기하게 맛이 똑같더라고요."

옛 음식을 이어가고 전통을 현대에 맞게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녀는 입으로, 또는 손으로 그 기록을 이어왔다. 그런 그녀가 우리에게 소개해 준 음식은 쑥콩탕. 쑥콩탕은 어릴 때 그녀의 어머니가 해 준 음식이다.

"그 시절은 모두가 살기 어려웠을 때이니 쌀의 양은 적고 밀가루를 많이 넣었겠죠. 거기에 쑥을 넣으면 양이 많아져 식구들과 같이 먹을 수 있었을 거예요."

요즘 사람들은 콩을 하찮게 여기지만 콩은 엄청난 단백질 공급원이다. 가축은 집안의 재산이니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다. 이를 대신해 콩으로 밥도 해 먹고 된장도 끓여 먹으며 부족한 영양소를 채웠다.

그녀는 콩탕에 곶감을 넣어 만들 수도 있겠다며 "함양에는 곶감이 많이 나잖아요. 흰 분이 난 곶감을 먹으면 힘없던 노인이 벌떡 일어난다는데 여기에 넣으면 영양죽이 될 듯싶네요"라고 했다. 

음식은 이렇게 전통을 고수하면서 새롭게 변천할 수도 있다. 정노숙씨에게 추억의 음식이던 쑥콩탕이 오늘 우리에게도 추억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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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콩탕>

재료
- 메주콩 200g, 쌀, 밀가루
- 햇쑥, 소금, 물

특이사항

- 콩죽을 할 때는 콩을 삶아서 한다. 생콩을 하면 안 된다. 요즘은 서리태콩 껍질을 벗겨서 하기도 한다. 삶은 콩이 비린내도 안 나고 더 맛있다.
- 콩죽이 뻑뻑하면 입안에서 잘 안 넘어간다. 죽을 끓일 때 농도를 국물처럼 연하게 해야 한다.
- 콩죽의 새알은 안 익으면 이에 붙으니 완전히 익혀서 꺼내야 한다.
- 콩죽은 끓고 있을 때 간을 하면 쓴맛이 나서 다 끓은 뒤 불을 끄고 해준다.

순서

1. 쌀은 씻어서 물에 2~3시간 불린다.
2. 불린 쌀은 소쿠리에 건져서 물기를 뺀다.
3. 콩은 6~7시간 정도 불린 다음 깨끗이 씻어 5~7분간 삶는다. (이때 콩 삶은 물은 버리지 않는다)
4. 햇쑥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불린 쌀과 함께 빻는다. 옛날에는 쑥의 양을 더 많이 했을 것이다.
5. 빻은 쌀가루와 밀가루를 8대2의 비율로 섞어서 반죽한다. 반죽은 조금 무르다 싶게 한다. 반죽할 때 물은 찬물을 이용한다. 많이 치댈수록 색깔도 예쁘고 끈기도 생기고 탄력도 생긴다. 종이컵에 밀가루 20% 정도 담았을 때 물은 세 숟가락 정도 넣는다.
6. 반죽으로 메추리알 크기로 새알심을 만든다. 새알심 형태가 약간 흘러내린다 싶어야 반죽 농도가 적당한 것이다.
7. 콩 삶은 물 2컵, 맹물은 조금 섞고 삶은 콩은 1컵 정도 넣어 갈아준다. 콩국수를 만들 때는 매우 부드럽게 갈아주는데 쑥콩탕은 덜 갈아도 된다.
8. 맹물은 갈아진 콩물 양에서 4컵 반 정도 더 넣어 준다.
9. 냄비에 넣고 끓인다. 콩물이 끓어오르면 새알심을 넣는다.
10. 새알심은 가라앉아 있다가 익으면 떠오른다.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잘 저어 주면서 끓인다. 새알이 충분히 익지 않으면 입에 달라붙는다. 처음엔 센 불에서 익히고 중간 불로 서서히 익힌다.
11. 새알이 떠오르면 약한 불로 뜸을 들인다. 뜸 들이는 과정을 꼭 거칠 것.
12. 쑥으로 반죽한 새알이 처음엔 진한 쑥색이었다가 익으면 색이 옅어진다.
13. 불을 끄고 간을 한다. 소금 한 스푼가량. 식었을 때 취향에 따라 소금을 추가해도 된다. 따뜻할 때 간을 하면 쓴맛이 나는 경우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부엌에 숨겨 둔 인생레시피 : 인생그릇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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