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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과학계 연구자들은 물론 대학생들까지 반대 움직임이 거센 가운데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열린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미래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축사에서 R&D 예산과 관련해 발언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사뭇 심상치 않다.

3일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의 축사와 관련해 지면 3면에 "尹대통령 'R&D, 돈이 얼마가 들든지 국가가 뒷받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젊은 연구자들과 만나 지원 약속", "혁신 연구, 실패 문제삼지 않겠다"는 부제도 달았다.

기사는 윤 대통령의 축사를 두고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을 3조 4000억원 삭감 편성한 것에 반발하는 과학계를 다독이면서 원천·차세대 기술 연구에 예산을 투입하기 위해 R&D 예산을 재조정했다고 설득에 나선 것"이라고 호평했다.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의 축사 중 "국가 R&D 예산은 민간과 시장에서 투자하기 어려운 기초 원천 기술과 차세대 기술 역량을 키우는 데 중점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혁신적 연구에 열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겠다", "도전적인 연구에는 성공과 실패가 따로 없는 만큼 실패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발언을 발췌했다.

이러한 발언들만 살펴보면 윤 대통령이 과학계를 다독이고 설득에 나섰다는 <조선일보>의 평가는 그리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인용한 발언들 직후 윤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기사에서 제외했다.

"최근 국가 R&D 예산을 앞으로 더 확대하기 위한 실태 파악 과정에서 내년 R&D 예산의 일부 항목이 지출조정 되었다. 연구 현장의 우려도 잘 알고 있다. R&D다운 R&D에 재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앞으로 R&D 예산을 더욱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윤 대통령의 발언에 따르면 R&D 예산의 삭감은 "R&D다운 R&D"를 파악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즉, 예산이 삭감된 항목들에 대해 정부는 "R&D다운 R&D"가 아니라고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R&D 예산이 삭감된 분야가 왜 "R&D다운 R&D"가 아니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R&D다운 R&D"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이러한 설명 없이 그저 "R&D다운 R&D"를 운운하는 건 과학계의 우려에 대해 설득은커녕 '과학계가 R&D다운 R&D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린 꼴이나 마찬가지다.

과연 이러한 발언에도 윤 대통령이 과학계를 설득하고 다독였다고 평할 수 있을까.

<조선>과 달리 "과학계 실망했다"고 보도한 <조선비즈>
 
이처럼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의 간담회 발언에 대해서는 별다른 평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계열사인 <조선비즈>는 온라인 기사를 통해 윤 대통령의 간담회 발언에 대해 "과학기술계는 '선 제도 개선, 후 예산 증액'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에 실망감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의 간담회 발언에 대해서는 별다른 평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계열사인 <조선비즈>는 온라인 기사를 통해 윤 대통령의 간담회 발언에 대해 "과학기술계는 '선 제도 개선, 후 예산 증액'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에 실망감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 <조선비즈> 보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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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직후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신진 연구자 7명과 간담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같은 기사에서 윤 대통령이 "'R&D 예산은 무슨 수당처럼 공평하게 나눠주는 게 아니라 연구자들이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곳에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관련 예산 재조정을 '우선 바구니를 비우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돈이 얼마가 들든지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 뒷받침하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들도 꼼꼼하게 챙기겠다", "연구 시설이나 기자재가 필요하다고 하면 신속하게 제일 좋은 제품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조달 측면을 개선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며 기사를 마쳤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의 간담회 발언에 대해서는 별다른 평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계열사인 <조선비즈>는 온라인 기사를 통해 윤 대통령의 간담회 발언에 대해 "과학기술계는 '선 제도 개선, 후 예산 증액'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에 실망감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2일 <조선비즈>는 "尹 R&D 예산 삭감 고수에 과학기술계 실망감...'이제 믿을 곳은 국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위와 같이 보도하며 "조선비즈 취재 결과 윤 대통령은 신진 연구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지금의 시스템을 언급하며 시스템만 고쳐지면 R&D 투자는 지금의 2배, 3배까지 늘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스템 개선이 먼저라는 걸 분명히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대통령실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이 간담회를 마무리하면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는 바탕이 갖춰지고 R&D 예산을 늘려가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R&D 시스템 개선 우선 발언 역시 축사의 "R&D다운 R&D" 발언과 마찬가지로 <조선일보>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

기사는 이러한 윤 대통령의 발언에 "제도 개선이 먼저라는 윤 대통령의 기조에 과학기술계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면서 "과학기술계를 카르텔로 몰았던 것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의 지적과 "R&D 예산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변함이 없는 것 같지만 지금은 국회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는 천승현 세종대 물리천문학과 교수의 발언을 인용했다.

이처럼 윤 대통령의 간담회 발언에 대해 평가 없이 발언만 인용한 <조선일보>와 달리 계열사인 <조선비즈>는 과학계 인사들의 발언까지 인용하며 과학계의 실망스러움을 강조했다.

물론 계열사라도 논조가 다를 수는 있지만 앞서 <조선일보>가 일부 발언은 무시한 채 윤 대통령의 축사를 평가한 것을 생각하면 이 역시 윤 대통령의 발언을 추켜세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학계가 반발할 간담회 발언은 인용도, 평가도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태그:#조선일보, #연구개발예산삭감, #조선비즈,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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