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도서관 앞의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는 지난 2월에 만들어졌다. 참사 당일에 이태원에 있었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존재하지 않는 회생자들과 유가족들이 함께 모여있을 수 있는 장소다.
▲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 서울도서관 앞의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는 지난 2월에 만들어졌다. 참사 당일에 이태원에 있었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존재하지 않는 회생자들과 유가족들이 함께 모여있을 수 있는 장소다.
ⓒ 임은희

관련사진보기

 
지난 2월, 작은 천막이 서울도서관 앞에 생겼다. 10.29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에는 영정사진과 향로가 놓였다. 어떤 날은 우는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날은 종교단체가 와서 기도를 했고 또 다른 날에는 언론사가 왔다. 분향소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는 시위단체도 있었고, 응원하며 위로를 전하는 단체도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분향소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10월이 되자 천막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희생자들의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어떤 날에는 방송국 이름이 쓰인 커다란 조명을 설치하고 뉴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잊지 못했지만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슬픔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분향소를 지나 세종대로 방면으로 걷다가 횡단보도를 건너 서울시의회 방향으로 가면 4.16 세월호 참사 추모 공간이 등장한다. 광화문 광장에 있던 간이 나무집을 공사 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근처의 화려한 건물들과는 대조되는 소박하고 작은 공간이다.
▲ 광화문 광장 공사 후 서울시의회 근처로 옮겨진 세월호 추모 공간 근처의 화려한 건물들과는 대조되는 소박하고 작은 공간이다.
ⓒ 임은희

관련사진보기

 
근처를 지날 때마다 아이들은 세월호 사건을 떠올렸다. 즐거운 대화는 아니지만 가볍게 넘어갈 수도 없는 주제라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그런 슬픈 일이 있었지, '라고 말하니 아이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엄마, 분향소는 원래 임시 건물이야? 천막으로만 돼 있어? 그렇게 만들게 되어 있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이었다. 내 기억에 피해자들은 언제나 길에 있었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을 외치는 글이 적혀있는 판을 몸에 걸치고 말없이 서 있거나 경찰들에 둘러싸여 울부짖던 사람들이 그보다 규모가 큰 참사로 유가족들의 수가 많아져서 이젠 천막을 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니 이전보다는 상황이 좋아졌다고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2014년부터 약 4년 동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비난까지 받으며 불법 천막에서 진상규명을 외쳤다. 2019년 서울시에서 간이 나무집을 지어 기억의 공간을 작게나마 만들자 천막 분향소는 유가족들에 의해 자진철거 되었다. 광화문 광장 공사 이후 기억 공간은 서울시의회 옆 조용한 구석으로 이사를 했다. 광화문 광장은 화려한 무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설치되는 축제의 공간으로 바뀌었고 우리의 슬픔은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졌다.

지난 2일,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과 해경 지휘부 9명 모두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관련 기사를 보는데 다시 아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그때 제대로 된 추모 공간이 공공기관의 형태로 만들어졌더라면, 팽목항이나 세종대로 한복판에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2001년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 무역 센터가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추모 시설)처럼 만들어졌다면 2022년 10월 29일의 뉴스는 달라졌을까?
 
수많은 내외국인들이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해, 때로는 정부를 향해 문장을 남기고 떠났다.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 따뜻한 위로와 연대하는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추모객들의 글 모음판 수많은 내외국인들이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해, 때로는 정부를 향해 문장을 남기고 떠났다.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 따뜻한 위로와 연대하는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임은희

관련사진보기

 
우리가 마주하는 참사는 개인의 잘못만이 아닌데 개인의 슬픔으로 범위를 좁혀버리고 제대로 슬퍼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슬픔이 사회로 확장되려 하면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개인의 추모를 위한 장소는 개인의 집이어야 하니 사회에서의 추모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는 '불법'이 맞다. 그러니 변상금을 부과한 서울특별시와 분향소를 변상금 부과 대상으로 본 국민권익위원회의 판단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분향소를 왜 그곳에 불법으로 설치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한다.

9년이 지난 세월호 참사도 아직 정리된 것이 없는데 이태원 참사는 이제 겨우 1년이 지났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배웠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국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변상금보다는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다.

빛나는 성과는 멋진 건물을 지어 위풍당당하게 전시하고 오래 남기지만 슬픔을 전시하는 곳은 우리 사회에 거의 없다. 국토교통부의 국토발전전시관은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의 이야기 대신 국내 대기업이 건설한 해외 유명 건축물을 소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대한민국의 발전사와 각종 성과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재난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그러니 행정안전부 소속의 재난 박물관이 있으면 좋겠다.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5년의 삼풍백화점 참사, 304명의 삶을 삼켜버린 2014년의 세월호 참사, 159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2022년의 이태원 참사, 2022년 한 해에만 무려 644명이 사망한 산업재해 등 재난을 기록하고 보여주고 슬퍼할 공간이 있다면 재난 예방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하다.

가장 비싸고 번화한 장소에 재난 박물관이 들어섰으면 한다. 시대의 슬픔을 사회의 역사에 공식적으로 편입시켜 누구나 되새길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람이 돈이나 땅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도록.

한때는 '우리'였던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의 변화'다. 지금은 '우리'에 속한 누군가가 '희생자'라던가 '유가족'으로 불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해진 사회에서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우리' 안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앞으로의 세상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길,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보다 안전한 세상이길 바라요. 사람들의 하굣길, 퇴근길, 친구와 놀러 나가는 길이 안전했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았건 간에 생명을 앗을 명분이란 건 그 어디에도 없는 거잖아요. (진세은씨의 언니 진세빈씨 이야기)
전반적인 시스템 자체가 마비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인정이 필요한 것도 같아요. 내가 사는 사회가 전혀 안전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은 사회라는 걸 인정해야만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을 테니까요. (희생자의 친구 누리씨 이야기)"

-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 씀, 2023

사회 곳곳에서 성실하게 살고 있었던 159명의 내외국인들이 겪은 10.29 이태원 참사는 부처님 오신 날에 인사동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12월 31일의 종각역, 5월 5일의 놀이동산, 8월 15일의 독립공원 등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장소라면 어디든 일어날 수 있는 참사였지만 내가 운이 좋아서 피했다고 생각한다.

안전불감증이었던 적이 없었는데도 나는 안전과민증인 사람이 되었다. 올해는 쇼핑몰과 백화점들이 핼러윈을 건너뛰고 크리스마스 준비에 한창인 모습을 보며 명동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고 벌써부터 걱정한다. 사람이 몰려들면 무의식적으로 아이들 손을 잡고 뒷걸음질을 친 후 안전요원의 수와 사람들 사이의 공간을 확인한 후에야 대열에 합류하는 습관도 생겼다. 아이들 손목에는 셀룰러 버전의 스마트워치를 채워주었다.

만약 나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린아이들 데리고 사람 많은 곳에 가서 깔려 죽은 무식한 맘충'이나 '자식 죽여놓고 멀쩡히 살아서 보상금이나 요구하고 있는 정치세력'이 되어버릴 텐데 살아서도 죽어서도 받고 싶지 않은 비난이다.

슬픔을 치유하는 것은 상처를 치료하는 것과 비슷하다.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위치에 상처가 생겨도 치료를 위해서는 드러내고 소독하고 약을 발라야 한다. 깨끗한 붕대로 정성스레 감싸 감염을 예방하듯이 같은 슬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문제점을 고쳐나가야 한다.
 
"도시가, 공동체가 앞으로 더 나아가려면, 그재난을 지우고 묻어버릴 게 아니라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 그리고 다시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생각하고 마음을 모으는 것, 그런 과정을 거쳐 우리는 상처를 달래고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조금 더 쌓을 수 있다."

- <정부가 없다> 정혜승, 2023

지지하는 정치세력이나 속한 정당이 달라도 추모의 목적으로 모두의 마음을 모을 수 있을 텐데 우리에겐 공식적으로 추모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추모는 언제나 불법이거나 편향적이고 유가족들이 비난을 받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현실이 슬프다.

나이, 성별, 국적,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충분히 슬퍼하고 위로할 수 있는 장소, 공동체의 안전망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장소가 우리에겐 절실하다. 엉엉 울고 소리 질러도 불법이라 비난받지 않을 합법적인 쉼터가 있어야 한다. 다음 참사가 예고 없이 찾아와 또 다른 불법 천막에 우리를 위한 향로가 놓이기 전에 말이다. 정말이지 평범하게 안전하고 싶다.

태그:#추모, #분향소, #재난, #세월호참사, #이태원참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노동자입니다. 좀 더 나은 세상,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