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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가 정말 심각하고 불평등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지금이다. (주로) 남반구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기후위기가 초래한 재난으로 인해 일터와 일상이 위협받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렸던 비극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인정하라"를 넘어, "기후정의 실현"이나 "우리가 대안이다" 등 진전된 목소리를 외치는 기후운동 세력이 부상했기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흐름 속,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하 '연구소')는 2022년부터 기후위기와 노동자 건강권을 함께 다루는 기획사업을 시작했다. 기후위기에 관심 있는 회원들을 확인하고, 다른 한편으로 기후위기와 노동자 건강권이라는 떨어져 보이는 의제들을 무엇을 매개로 엮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기후위기의 원인이다"라는, 자명하지만 넓어 보이기도 하는 이야기를 누구와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지, 다양한 현안을 가지고 투쟁하고 있는 각 현장의 쟁점과 요구안을 기후정의 기치로 어떻게더 부각할 수 있을지 찾아보고자 했다.

기후위기와 노동자 건강권 기획사업 - 책 세미나에서 414 기후정의파업까지

기후위기 공부도 시작하고 활동을 함께할 회원을 찾기 위해, 연구소는 2022년 6월부터 두 달간 기후정의동맹과 세 차례의 책 세미나를 진행했다. 세미나에선 자본의 산업전환이나 폐쇄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선 공세적인 운동이 필요하고, 기후정의 운동은 결국 노동자들이 어떻게 현장과 사회에서 권력을 가져올 수 있을지와 떼놓을 수 없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자본의 무한한 자기 증식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자연 본래의 순환 과정과 동떨어져 있기에 여기서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 변혁을 위한 운동이 기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더욱 필요하다는 점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각 현장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현안과 고민을 나누기 위해 회원/후원회원 간담회를 진행했다. 금속노조, 서비스연맹, 공공운수노조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이 상용차와 교통 공공성 확보, 야간노동 폐지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자본의 무한 생산 제동, 발전 비정규직 고용유지와 에너지 공공성 등의 현안을 공유해주었다.

연구소 차원에서도 노동자 건강권과 기후위기의 의제가 적극적으로 연결되어 제시될 필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9월 24일,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924 기후정의행진>에 연구소를 비롯해 3만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정의', '체제 전환'등이 대중적으로 제시된 집회와 행진이기도 했다. 연구소는 이후 기후정의 활동을 일상 활동으로 정착시키는 걸 목표로, 기후정의동맹 참여 단위로 결합했다.

2023년 초, 여러 지역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 지역 주민, 농민 등이 모여 "함께 살기 위해 멈춰! 414 기후정의파업"을 제안하였다. 평일에, 정부 부처가 모여있는 세종시에서 4000여 명이 모였다. 모여서, 생태 학살을 멈추고 사회 공공성 강화를 통한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한노보연은 414 기후정의파업과 420 장애인차별철폐의날, 428 세계산재사망노동자추모의날을 연결해 함께 투쟁하자는 제안을 <일터> 기사 등을 통해 얘기했다. 기후위기 시대 노동시간 단축과 야간노동 철폐, 작업중지권 확보가 더욱 필요하다는 카드뉴스를 발간하고, 당일엔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쿠팡지회)와 함께 "야간노동 보편화시킨 쿠팡 이제 STOP! 노동자 건강과 지구 모두를 갉아먹는 야간노동 철폐하라!"를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한노보연 기후정의팀 결성, 노동자 건강권의 요구가 곧 기후정의다!

기후위기를 이유로 자본이 일방적으로 자행하는 발전소 폐쇄나 전기차 전환에 맞서, 노동자 고용보장과 정의로운 전환이 주로 얘기되고 있다. 자본이 위기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시도를 막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정말 절실하다. (성공회대학교는 2023년 여름 냉방기를 틀지 않는 '에코주간'이란 명목으로, 2주간 학교를 폐쇄했다. 곰팡이가 필까 빈 강의실에 에어컨을 틀기도 한 그 '에코주간'은 청소노동자와 교직원의 인건비를 절감하는 용도로 추진되었다. 그달의 청소노동자 임금은 110만 원이었다. 이처럼 기후위기를 핑계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는 수많은 사업장에서 계속될 것이다.)

연구소는 이와 함께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노동 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 노동자들이 천천히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해 나가는 게 기후위기 시대에 더 필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아지고 예측 불가능해질,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 상황에 노동자가 즉각 대응하여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가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로켓배송이니, 24시간 365일 영업이니 하며, 불필요한 야간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며 생산과 유통, 소비의 사이클을 가속하는 자본주의를, 노동시간 단축과 사업장 셧다운을 통해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작업중지를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거나, 불안정한 소득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야간노동이 작동하지 않는 게 더욱 필요하다. 그것이 기후위기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기후위기 이후를 살아가기 위해 달라져야 하는 삶의 양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윤만을 위해 작동하며 기후위기를 초래한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자본주의로부터 빼앗긴 우리의 시간과 삶의 양식을 되찾을 힘을 만들 수 있는 현장을 만나 확장하고자 했다.

연구소 기후정의팀은 414 기후정의파업 이후 결성되었다. 기후정의동맹이 제안한 <N개의 기후정의선언>에 함께하고, 노동조합과의 간담회를 통해 공동의 활동을 찾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역대급 폭염이었던 올해 8월, 쿠팡지회는 폭염 시 노동자들에게 매시간 15분의 휴게시간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걸고 하루 파업과 농성 투쟁, 불매운동 등을 진행했다.

기후정의팀은 폭염 등 위험 상황에서 노동자의 휴식 및 작업중지 보장과 함께 쿠팡이 조장한 불필요한 야간노동을 없애고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것이 곧 기후정의의 요구이며, 이를 9월 23일에도 함께 외치자는 내용의 유인물을 가지고 간담회 및 출퇴근 선전전을 기획했다.

하지만 농성장 방문 전날, 기후위기로 인한 역대급 태풍 '카눈'이 휘몰아쳤다. 태풍은 농성장을 무너뜨렸고, 폭염을 한풀 꺾었다. 폭염을 꺾은 게 태풍이었다는 것, 그럼에도 창고 형태의 물류센터 내부는 여전히 체감온도 30도가 넘었다는 이중의 아이러니를 마주하며, 기후정의팀은 농성장 복구와 선전전에 함께했다.

2023년 초 전기·가스요금 인상에 이어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는 적자를 이유로 공공교통요금 인상 시도를 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KTX와 SRT 통합 등을 요구하며 9월 14~18일 총파업했다. 기후정의팀은 부산지하철노조 및 부산철도노조와의 간담회를 통해, 교통요금 인상 반대를 넘어 민영화 저지와 공공 교통성 강화에 관한 노동조합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교통요금 수익자 부담원칙에서 탈피하고, 이동권이 시민의 권리로서 보장받기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노동조합은 발제를 통해 강조했다.

기후정의팀은 대중교통수단의 확장을 비롯한 교통체계 전환의 그림을 시민들에게 제시하는 역할을, 버스나 지하철 노선 설계의 기준을 이윤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따라 설정하는 역할을 같이 적극적으로 해나가자고 제안했다.

연구소는 414에 이어 9월 23일,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 923 기후정의행진>에서 쿠팡지회와 함께 행진했다. 당일 사전대회로서 진행된 오픈마이크에 기후정의팀 이름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올해도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 923 기후정의행진>이 진행되었고, 연구소는 쿠팡물류센터지회와 함께했다. 일터와 시간의 통제권을 노동자가 갖는 게 기후정의라는 점을 우리는 계속 얘기할 것이다.
 올해도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 923 기후정의행진>이 진행되었고, 연구소는 쿠팡물류센터지회와 함께했다. 일터와 시간의 통제권을 노동자가 갖는 게 기후정의라는 점을 우리는 계속 얘기할 것이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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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과제

연구소 노동시간센터에서 노동시간이 감소함에 따라 탄소배출이 얼마나 감소할 수 있을지 보기 위한 독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비슷한 주제로 진행된 다른 나라 선행 연구들은, 노동시간의 길이 자체뿐 아니라 중심 산업, 불평등지수, 기반시설 등 여러 변수가 탄소 배출량 결정의 매개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걸 얘기하고 있었다.

노동시간 단축은 그 자체로 상당히 큰 의미가 있을 것이나, 그 단축의 과실을 모두가 평등하게 누리고 돌봄 중심으로 재조직하기 위해선, 또 다른 운동이 전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한국과 같이 초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 성별 불평등한 노동이 만연하여, 이러한 시도가 들어갈 틈조차 주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연구소는 기후위기와 노동자 건강권의 매개로 노동시간 단축과 작업중지권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더 많고 다양한 노동자들을 만나 함께 공동의 매개를 찾아 변주해가며, 우리 사회의 재조직 방향을 만들어가는 것 역시 지속해야 할 과제다.

한편, 기후정의동맹은 여러 단체와 함께 <N개의 기후정의학교>를 거쳐, <N개의 기후정의 선언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전 지구의 생명체가 느끼고 있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 속 노동, 여성, 빈곤, 주거, 생태 등의 운동이 부문으로서가 아니라 어떻게 연결되어 세력화할 수 있을지를 찾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이다. 연구소도 그중 하나로서, 기후정의를 환기하고 변화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계속해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조건희 상임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발행하는 잡지 <일터> 10, 11월호 합본호에도 실립니다.


태그:#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후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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