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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이 커다란 이익을 창출하고 사회 내 기득권 세력화하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한 금융시장의 여러 주체들 간의 네트워크 형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금융업은 전통적으로 집단성과 전문성을 강조하는 '그들만의 리그'성격이 강한 곳이다. 여기에 서로 공유하고자 하는 이익이 있고, 이를 유지하려는 유인이 있다면 이들 사이의 유대는 더욱 쉽게 형성된다.

금융업은 타인의 자금을 거래하므로 면허의 취득과 신뢰의 유지를 위한 외부의 규제·감독이 필수인 업종이다. 그에 따라 금융회사 입장에서 이익유지를 위한 첫 번째 강력한 유인은 '규제를 최소화'하고자 정부 당국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미국 재무부 장관을 지낸 티모시 가이트너(Timothy F. Geithner)는 "금융회사는 강물이 돌을 피해 가듯 규제를 회피하려 해 법률회사, 당국 출신을 영입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불확실성 문제를 분석한 '블랙스완'(2007)의 저자로 유명한 나심 탈레브(Nassim Taleb)는 저서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에서 "금융회사는 규제를 회피하고자 법률가의 힘을 빌려 이를 무력화하거나 관료들을 채용하여 엄청난 연봉을 지급하는데, 이때 지급하는 연봉은 현직에 있는 관료들에게는 '미래의 뇌물'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독설을 내뱉은 바 있다.

우리나라는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미국과 비슷한 나라인데, 안타깝지만 이런 면에서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 공직자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금융당국 출신들이 금융업계의 자리를 이어가는 소위 '관피아'라 불리는 관행이 있다는 세간의 평가를 부정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물론 법조계 등 규제가 강하면서 법규의 허점을 이용하기 쉬운 다른 분야도 그 차이를 논하기는 어렵다.

부실사모펀드 사태 관련 은행장의 행정제재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2021.8)에서 판결문에 어울리지 않는 '규제포획'이라는 표현이 나와 사람들의 관심을 끈 바 있다.

판결문에서는 "금융회사가 원하는 규제완화와 미약한 금융감독으로 나타나는 시장친화가 바로 규제포획이다. (중략) 금융회사 경영진이 과도한 이익추구라는 탐욕을 부리고, 규제포획된 금융당국의 고위관료들은 제대로 된 규제를 하지 못해 소비자들의 이익이 침해당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금융회사는 규제 당국 외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엄호할 세력을 위해 언론, 정치권, 법률회사 등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한 해 조 단위의 이익을 올리는 대형 금융회사에서 광고홍보비, 법률비용은 자신들의 커다란 이익을 지키는 데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작은 투자비용에 불과하다.

일부 언론은 가장 큰 광고 수입원에게 비판적인 기사는커녕 적극적으로 응원군이 되기도 한다. 금융회사와 언론의 친화적 관계의 사례는 아주 많지만, 규제와 감독 부문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일부 언론은 금융업에 필요한 규제와 감독에 대해 합리적 분석 없이 모든 규제와 감독이 금융혁신의 적인 것처럼 비판 기사를 지속적으로 내보낸다. 관치금융에 대한 비판은 이런 주장을 위한 관용적인 수사가 된다.

또한 금감원의 금융회사에 대한 정기적인 검사에 대해서도 '먼지털기식 검사', '저인망식 지적 검사'니 하는 식의 비판 기사를 시리즈로 내보내 감독당국의 정당한 감독을 약화시키는 데 큰 힘을 발휘하곤 했다. 물론 금감원이 고압적이거나 지적 위주의 부당한 검사를 한다면 당연히 강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고객의 소중한 자금을 관리하는 금융회사에 대한 정기적 검사를 사실관계나 논리에 맞지 않게 끊임없이 왜곡 기사를 내보내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신뢰성, 공정성과는 거리가 먼, 보기에 민망한 보도 행태라고 생각한다.

금융지주 회장이나 대형 금융회사 최고 경영진의 임기 말에는 이들에게 친화적인 기사가 유난히 많아진다. 이들이 감독당국의 제재라도 받으면 문책경고 등 중징계를 받을 것인지 등에 대해서만 계속 보도를 하고, 정작 제재를 유발한 금융사고의 원인, 피해자들에 대한 조치, 제도개선 등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공정한 언론 보도는 민주사회의 기본토양인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이다. 언론 보도내용은 금융업, 금융감독의 속사정을 모르는 국민의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사실에 기초해 금융사고를 심층 분석하거나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사가 부족한 현실은 건전한 금융시장 발전을 위해 무척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올바로 된 사회일수록 언론과 이익집단과의 유대를 견제하는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국회의 입법권이 커지면서 법률을 제정하고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권과 금융업계의 네트워크 형성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형 금융회사들은 정치권, 정부를 담당하는 팀을 관리하고 있는데, 이들이 중요 법률 제개정 시기에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적극적으로 로비하는 것은 불문의 사실이다.

법조계도 금융업계의 지원군 역할을 한 지는 오래되었다. 전관예우니 카르텔이니 하는 법조계의 폐쇄성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오랜 병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를 규율하려는 법규정이 촘촘할수록 오히려 법의 허점을 이용하기 쉽고, 이럴 때 법기술자들의 역할은 더욱 커지게 되는 역설이다. 더욱이 규제산업의 속성이 있고, 규모는 날로 커지는 금융업에서 법률회사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지고 금융회사와의 유대는 긴밀해지고 있다. 금융회사의 거대한 자본 앞에서 법조인으로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역할을 기대하긴 정말 어려운 일인가? 우리 사회의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법조계도 금융업계의 지원군 역할을 한 지는 오래되었다.
 법조계도 금융업계의 지원군 역할을 한 지는 오래되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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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의 객관적인 외부 주체인 언론, 법조계의 역할이 이러할진대 금융회사의 공식 후원그룹인 각 금융협회, 연구단체에게 객관적인 역할을 기대하긴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각 금융협회의 회장, 전무 자리는 금융당국과의 소통을 위해 대부분 전관 출신이 포진해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08년 금융위기 후 미국 소비자금융감독청(CFPB)을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상원의원도 그의 자서전적인 책 '싸울 기회(A fighting chance)'에서 기득권 유지, 확대를 위한 대형 금융회사의 집요한 로비, 기득권 세력의 연대를 묘사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에는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집단적 사고'가 일부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부시 행정부의 재무장관 행크 폴슨(Hank Paulson),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Robert Rubin) 모두 골드만 삭스의 경영자였고, 로버트 루빈은 후에 시티그룹의 최고임원직을 맡았다. 월스트리트 긴급구제 시 골드만 삭스, JP 모건, 시티그룹 등은 커다란 혜택을 받았고, 구제 이후에도 월가의 연방관리, 국회의원 출신 로비스트들의 영향으로 새로운 규제는 최소화되어 금융개혁은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 현안이 있을 경우 감독당국이 업권별 회사 경영진, 연구원과 개최하는 간담회는 자주 볼 수 있지만, 소비자와의 소통의 자리는 그리 흔치 않다. 복잡하고 급변하는 금융 현실에서 시장 참여자와의 소통은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소통의 자리에서 금융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참여자의 목소리는 구체적이고 집요한 반면, 소비자의 목소리는 추상적이고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다 요즘에는 공직자들이 공직 사회에 대한 낮아진 인식과 영향력, 높지 않은 처우 등으로 대형 금융회사나 법률회사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나라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공직 퇴직 후 3년 이내에는 유관단체에 취업이 제한되는 매우 엄격한 '공직자 윤리법'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법규정이 모든 상황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고, 공직자의 사회진출에 대한 동기가 현실적으로 커 이들의 민간기관 진출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론 공직자는 제도적 규범의 틀 안에서 합법적으로 민간기관에 취업하는 것이고, 이들의 개인적 진로선택을 가볍게 비난할 수는 없다. 또한 이들의 공적 경험이 사회에서 활용되는 것의 긍정적인 면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자유주의 경제사조가 지배해 온 이래 금융시장의 네트워크가 점점 더 '그들만의 리그' 성격을 띠고 심화되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물론 지금도 금도를 지키고 절제하며 금융시장이 건전하게 기능하도록 노력하는 수많은 금융인, 감독당국자, 사회적 감시자 역할을 하는 언론, 시민단체 등이 있어 금융이 그나마 제 기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공정하고 신뢰받는 금융시장을 위해서는 공직자, 금융인 모두 이익을 위해 반칙을 하지 않겠다는 책임, 윤리의식을 다지고, 엄정한 견제·책임 메커니즘을 만들어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금융정책 결정과정의 '투명성 제고'가 공정한 금융시장을 위한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 '햇빛은 최고의 방부제다'라는 말이 있듯이 정책 결정 과정이 투명해야 이익을 위한 연대구조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경쟁을 통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 또한 정책 결정 과정에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어 정책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지구의 환경을 보존하는 일도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듯 공정한 금융을 지키는 일도 금융인, 당국자의 노력뿐 아니라 금융소비자인 국민, 법조계, 언론 등 모두가 서로를 견제하고 투명함을 지키려는 행동이 이어져야 가능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익유지를 위한 '유대'가 아니라, 공정한 금융을 지키려는 사회의 '연대'이다.

덧붙이는 글 | 제 공정금융 시리즈에서 꼭 금융뿐 아니라 사회 내의 이익을 위한 여러 유대 현상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읽고 공감을 나누기를 희망합니다.


태그:#금융시장네트웍, #금융시장유대, #금융법조계연대, #금융전관예우, #금융시장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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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에서 30 여년을 근무하고 부원장보를 마지막으로 퇴직했습니다. 건전하고 공정한 금융질서 확립과 금융소비자보호라는 조직의 존재이유와 내 본성, 가치추구와의 어울림이 커 업무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올바른 금융시장을 위한 고민을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 글이 금융업의 공정성제고를 위한 생산적 논의의 장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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