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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고지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지난달 저팬모빌리티쇼(옛 도쿄모터쇼)에서 “당신이 원하는, 당신만의 차를 만드는 것이 차세대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의 미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다양한 선택지를 계속 제공하는 것이 도요타의  전략”이라고 밝했다.
 사토 고지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지난달 저팬모빌리티쇼(옛 도쿄모터쇼)에서 “당신이 원하는, 당신만의 차를 만드는 것이 차세대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의 미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다양한 선택지를 계속 제공하는 것이 도요타의 전략”이라고 밝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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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자동차의 미래다. 그리고 '바꿔나가자'고 했다. 사토 코지 일본 도요타자동차 사장이다. 지난달 25일 재팬 모빌리티쇼 무대 위에 선 그는 "미래는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간절함'을 말했다. '간절함'이 당신 만의 자동차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로 하고 싶은것들에 대한 답을 내겠다고도 했다. 물론 그 자동차는 기존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 자동차다. 그것도 순수 전기차다. 사토 코지 사장은 자신의 옆에 놓여 있던 '미래의 차'를 설명해 나갔다. 다양한 형태로 변할수 있는 목적기반차량(PBV) 부터, 고객이 직접 참여해 만드는 트럭, 스포츠다목적차량(SUV)까지…

사토 사장의 연설은 20여분 이어졌다. 그의 표정은 밝았고, 목소리 톤에는 결의가 엿보였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도요타 웨이를 걷겠다"는 각오로 들렸다. 1990년대 후반 기존 내연기관에 전기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차로 세계 시장을 공략한 자신감이 베여있었다. 게다가 최근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 가능성은 도요타 입장에선 기회다.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하이브리드 전략이 옳았다"는 발언까지 할 정도였다.

그들만의 자신감, 도요타웨이…자동차 미래를 말하다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위치한 도요타 쿠라카이게 기념관. 1937년 창립된 도요타 자동차가 누적 생산 1000만 대를 돌파한 1974년 9월에 만들어졌다. 기념관 입구에는 자동차 창립자인 기이치로의 아버지 도요다 사기치가 직접 발명한 방직기가 놓여있다. 첫 번째 제품은 1896년에 나무와 철로 만들어 제조 원가를 낮춘  역직기다(사진 왼쪽). 현재도 전원을 꽂으면 가동된다.  옆에 놓여있는 기계는 1924년에 발명된 자동직기 G타입 제품으로 논스톱으로 셔틀을 교체할 수 있다.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위치한 도요타 쿠라카이게 기념관. 1937년 창립된 도요타 자동차가 누적 생산 1000만 대를 돌파한 1974년 9월에 만들어졌다. 기념관 입구에는 자동차 창립자인 기이치로의 아버지 도요다 사기치가 직접 발명한 방직기가 놓여있다. 첫 번째 제품은 1896년에 나무와 철로 만들어 제조 원가를 낮춘 역직기다(사진 왼쪽). 현재도 전원을 꽂으면 가동된다. 옆에 놓여있는 기계는 1924년에 발명된 자동직기 G타입 제품으로 논스톱으로 셔틀을 교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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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오 회장은 도요타자동차를 창업한 도요다 기이치로의 증손자다. 기이치로의 아버지 도요다 사기치는 당대 발명왕으로 불렸다. 1896년 그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나무와 철로 만든 방직기를 선보였다. 사기치 회장이 직접 방직기를 직접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어머니가 밤늦은 시간까지 좀더 편하게 일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만해도 외국산 방직기는 가격이 너무 비싸, 구입할 염두가 나지 않았던 것. 결국 나무와 일부 철제를 이용해 방직기를 직접 제작했다. 

일본 도요타시에 있는 쿠라카이게 기념관에는 그 방직기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10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이지만, 전원만 연결하면 아직도 움직인다. 1974년 문을 연 기념관은 도요타 자동차의 창업기를 엿볼수 있는 곳이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2대의 방직기가 눈에 들어온다.
 
 도요타 쿠라카이게 기념관의 창업 전시실에는 1955년 일본 최초로 생산된 완성차, 크라운 모델 RS 등이 전시돼 있다.
  도요타 쿠라카이게 기념관의 창업 전시실에는 1955년 일본 최초로 생산된 완성차, 크라운 모델 RS 등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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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치 회장이 만든 초기 방직기와 1924년에 발명한 G형 자동직기다. 두번째 기기는 사기치의 아들인 기이치로가 함께 만들었으며 '마법의 직기'로 불렸다. 기존 방직기의 단점을 크게 개선해 현대적인 대량생산까지 가능하게 됐기 떄문이다.

기념관 안내를 맡은 미야코 요리야스 기념관 부관장은 "도요타의 첫발은 방직기계"라며 "이들 방직기계 개발 이면에는 도요타 가문의 철학인 국민을 아끼는 애민정신이 깃들여있다"고 말했다. 도요타 자동차가 만들어지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은 도요다 기이치로는 미국 뉴욕 유학시절에 도시를 넘나드는 자동차를 보면서, 자동차 개발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특히 1923년 관동대지진 일본 정부는 당시 전차가 운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포드자동차 100대를 복원사업에 활용했다. 기이치로는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자동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한다.

방직회사서 자동차회사로…창립자 2세 기이치로 사장의 3가지 원칙
 
일본 도요타자동차 창립자인 도요다 기이치로는 1933년 방직 회사 내부에 자동차부를 따로 설치하고, 1937년 자동차 사업부를 분리·독립시킨다. 사진은 초대 자동차부의 연구원들. 여성이 5명 포함돼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창립자인 도요다 기이치로는 1933년 방직 회사 내부에 자동차부를 따로 설치하고, 1937년 자동차 사업부를 분리·독립시킨다. 사진은 초대 자동차부의 연구원들. 여성이 5명 포함돼 있는 점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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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야스 부관장은 "기이치로는 1933년에 회사 내부에 별도의 자동차 부서를 만들었다"면서 "초기 15~17명으로 구성된 직원들은 오후 5시이후부터 비밀리에 지엠 쉐보레 등을 분해하면서 연구에 전념했다"고 설명했다. 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초기 자동차부의 연구원 사진에는 여성 5명이 포함돼 있었다. 요리야스 부관장은 "자동차 설계와 제작과정에서 여성들의 섬세함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이들은 뛰어난 방직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 설계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후 1935년 도요타 최초의 시제품 차량 2대가 완성됐고, 1년 뒤에는 트럭을 생산해 판매에 나섰다. 하지만 초기 차량의 불량이 수백건에 달하면서, 고객들의 불만이 높았다. 기념관 한 켠에는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은 모형을 볼수 있었다. 도요타 트럭을 구매한 고객이 매우 화를 내고, 바로 옆에는 기이치로 사장이 허리를 굽혀 사과하면서, 짐을 내려 다른 트럭으로 옮기는 장면이다.

기이치로 사장은 "도요타 상용트럭이 고장이 잘 날 것을 알면서도 (수입 트럭 대신) 구매해준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서 고객제일주의를 강조했다. 이후 1936년 9월 도요타 최초의 승용차 '도요타 AA 세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려한 곡선의 외부 디자인은 당시에도 큰 주목을 받았고, 기념관에는 복원 모델이 전시돼 있었다.  
 
1936년 도요타는  일본 최초의 AA형 승용차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도요다 기이치로의 의지가 드러난 자동차로 도요타를 상징한다.
 1936년 도요타는 일본 최초의 AA형 승용차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도요다 기이치로의 의지가 드러난 자동차로 도요타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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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도요타시에 자동차 제조 공장이 만들어지면서, 도요타자동차가 공식 출범하게 된다. 공장 인근에는 백화점을 비롯해 남여 기숙사, 세탁소, 병원 등도 함께 입주했지만, 따로 자동차를 위한 창고는 만들지 않았다. 요리야스 부관장은 "기이치로 사장이 강조한 이른바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방식 때문"이라며 "회사 비용이나 낭비를 없애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이치로 사장은 도요타자동차의 기반을 세운 사람"이라며 "그가 강조한 3가지 원칙이 있는데, 매일 하나씩 개선하자, 현장에 직접 가서 사람과 만나고 물건을 만져보라(현지현물), 고객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도요타가) 자동차 회사로 탈바꿈 한 후 37년이 지나서야 1000만대를 생산 했다"면서 "지금은 1년에 1000만대를 만드는 회사가 됐다"고 요리야스 부관장은 말했다. 

미래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꼼꼼히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다
 
도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로비에 있는 원형직기. 일반 방직기는 평면으로 된 천을 생산해 필요에 따라 자르거나 붙여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이 원형직기는 원통형 천을 이음매 없이 만들어 낸다. 1906년  도요다 사카치는 최소한의 공정으로 넓은 천 조각을 직조할수 있는 기계를 발명한 것. 전시된 제품은 1924년에 만든 것으로 현재도 가동된다.
 도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로비에 있는 원형직기. 일반 방직기는 평면으로 된 천을 생산해 필요에 따라 자르거나 붙여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이 원형직기는 원통형 천을 이음매 없이 만들어 낸다. 1906년 도요다 사카치는 최소한의 공정으로 넓은 천 조각을 직조할수 있는 기계를 발명한 것. 전시된 제품은 1924년에 만든 것으로 현재도 가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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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도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도요타 창립자인 사기치가 자동직기 연구개발을 위해 지은 시범공장 건물을 개조해 만들어진 곳이다. 1994년에 문을 연 이곳은 연면적 규모만 4만6700㎡에 달할 정도로 크고 넓다. 방직회사에서 시작한 도요타의 초기 모습부터 세계 1위 자동차업체로 성장하기 까지의 모습을 자세하게 볼 수 있다.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면 1906년 창업주인 도요다 사기치가 발명한 '원형 직기'가 보인다. 회전과 원 운동을 통해 옷감을 짜는 기술이다. 섬유기계관에는 100여대에 달하는 방적기계 등이 장관을 이룬다. 당시 세계 최고 성능의 직기를 바탕으로 일본 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에는 도요타의 상징 모델 AA 세단 차량 제작 과정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에는 도요타의 상징 모델 AA 세단 차량 제작 과정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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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관은 100년 일본 자동차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도요타의 상징인 최초의 승용차 'AA세단'의 초기 도면부터 제작과정을 그대로 재현해 놨다. 또 자동차의 차체를 만드는 프레스 과정부터 로봇 등을 이용해 차량을 조립하거나 용접하는 모습, 차량 색을 입히는 도장 공정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생산 전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밖에 1955년에 생산된 초기 크라운 모델을 비롯해 대중화의 상징인 코롤라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자동차들도 전시돼 있다. 1990년대 도요타의 친환경 하이브리드와 배기가스 감축을 위한 각종 신기술도 엿볼수 있다.

요시오카 신이치 기념관 시니어 어드바이저는 "기술혁신과 산업발전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면서 "방직이나 자동차 등 제품 제조(모노즈쿠리) 역사에 대한 학습의 장으로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기념관의 설립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들 앞에 놓여진 또 다른 기회와 위기…도요타의 미래는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의 자동차관. 자동차 공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전시실에는 자동차 사업 창업기부터 차량 개발과 차세대 기술까지 다양한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의 자동차관. 자동차 공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전시실에는 자동차 사업 창업기부터 차량 개발과 차세대 기술까지 다양한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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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저팬 모빌리티 쇼 현장. 사토 코지 도요타 사장의 연설이 끝난 후, 바로 건너편에 커다란 전시공간을 차린 중국의 전기차 업체인 비야디(BYD) 전시장에 기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몰려 들었다. 사전 언론공개 행사임에도 일본어와 중국어로만 행사가 진행됐다. 

글로벌 모터쇼에 참가하는 외국 자동차회사가 영어 지원을 하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어서 기자도 당황스러웠다. 뒤늦게 비야디코리아쪽에서 관련 내용을 별도로 국내 언론에 제공하면서 일단락 됐지만, 중국 전기차 업체의 태도를 볼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번 모빌리티에서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대체로 '미래'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의 자동차관. 자동차 제작을 다양한 각도에서 소개한다. 도요타 초기 자동차의 뼈대와 내부를 전시해놓고 있다.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의 자동차관. 자동차 제작을 다양한 각도에서 소개한다. 도요타 초기 자동차의 뼈대와 내부를 전시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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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비야디는 '현재'와 '미래', 두마리 토끼를 잡고 있었다. 도요타의 '미래'는 말그대로 '미래'다. 사토 사장의 '미래'가 현실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빨라야 2025년이다. 이미 테슬라를 비롯해 현대기아, BYD, 볼보, 폭스바겐 등은 앞다퉈 새로운 전기차를 내놓고 있다. 다양한 실험들도 계속되고 있다. 

도요타는 작년 한해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1000만대 넘는 자동차를 생산해 팔았다. 회사 매출과 이익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현재의 도요타가 미래에도 그대로 이어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는 도요타도 잘 알고 있다. 100년전 방직 공장에서 자동차를 시작하고, 한때 폐업 위기까지 내몰렸던 그들이다. 오로지 자신들만의 기술과 고객 제일주의로 세계 1위 자동차 회사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들 앞에 또 다른 기회이자 위기가 놓여있다. 

사토 사장은 말했다. "미래는 다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의지와 열정으로 힘을 합친다면, 반드시 미래는 바뀔 것이다"라고. 도요타가 만드는 미래가 궁금하다. 100년전에 그랬듯이 말이다. 
 
도요타는 미해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해  내부 공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목적기반차량(PBV) ‘가요이바코’, 고객이 제작에 참여하는 트럭 ‘IMV 0’,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FT-3e’ 등을 내놨다.
 도요타는 미해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해 내부 공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목적기반차량(PBV) ‘가요이바코’, 고객이 제작에 참여하는 트럭 ‘IMV 0’,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FT-3e’ 등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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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요타자동차, #도요타쿠라카이게기념관, #도요타산업기술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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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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