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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부터 해 온 색소폰 동호회, 어쩌다 회장이란 자리를 맡았다. 회장이라 하지만 동호회의 온갖 일을 한다. 대부분 현장에서 일하는 10여 명의 회원들, 갖가지 사연을 만들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살아가는 방법과 습관이 다르며, 성장과정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모두가 한 곳만 바라볼 수 없는 현실이기에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살 수는 없다. 지나는 길에 색소폰 소리를 듣고 찾은 사람, 전부터 꿈꿔오던 사람도 있으며 지인의 소개로 색소폰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은 근사하지 않은가? 모두가 색소폰동호회를 찾아온 이유다.

어떤 사유로든 동호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럴듯한 무대에서 멋진 연주를 꿈꾸며 가입한 동호회, 선배들은 멋진 포즈로 곡을 연주하고 있다. 10여 명이 앉아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다. 도레미파도 모르는 사람이 당황한다. 남이 하는 것은 쉬워 보였는데 두렵기만 하다. 어떤 사람은 남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있을까? 뒤돌아 나가는 사람과 멋진 연주를 하는 사람의 생각 차이다. 
 
2023년 10월, 회원들이 버스킹을 하는 풍경이다. 화창한 가을 날에 많은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선사했다.
▲ 숲속 버스킹 2023년 10월, 회원들이 버스킹을 하는 풍경이다. 화창한 가을 날에 많은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선사했다.
ⓒ 박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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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를 그만두고 나갔다

하루 종일 조용하던 전화기가 울렸다. 낯선 번호는 색소폰 동호회 가입에 관한 전화다. 동호회 사무실 외벽에 전화번호가 적혀있기 때문이다. 동호회 운영 방식을 설명하고, 언제 오라는 약속을 한 후 전화를 끊었다. 동호회를 찾아오는 사람은 50%도 되지 않는다. 찾아온 사람 중에도 80%는 발길을 돌리고 만다. 얼큰한 술 한잔에 들려오는 색소폰 소리는 너무 아름다운 밤이라 용기를 내서 전화를 했지만 움츠리고 돌아선 것이다.

또 회원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고도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음악에 관해 소질도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었다'고 설명한다. 도레미파도 읽지 못하던 사람이라는 것도 밝힌다.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신입 회원들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는다. 어느 날, 회원들 중 50%가 동호회를 그만두겠단다. 색소폰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동호회를 만들 심산이었다.

동호회가 만들어지고 몇 해동안 연주를 하며 연말 음악회가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삶의 모습이 자세하게 보였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에 상황은 달라졌다. 삶이 비슷한 사람끼리 움직이며, 식사자리가 그렇고 이야기 내용이 그러하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딴살림을 차리고 말았다. 다시 동호회를 추슬러 어느 정도의 자리가 잡히자, 다시 한 무리가 또 나가고 말았다. 남은 회원들이 허탈한 심정으로 동호회를 꾸려 나가야 했다. 사람이 어울리며 살아가기가 너무 어렵다.

다시 시작하는 동호회

동호회를 꾸려 나가기 힘겨울 정도로 재정이 불안했다. 몇 명 남은 동호회는 세월이 흐르면서 인원은 충원되었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10여 명의 인원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여러 인원이 보충됐고, 각종 연주회를 열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동호회 문을 두드리고 있을까? 여느 색소폰 동호회와는 다르게 운영되기 때문이다.
   
현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모여 동호회를 만들었습니다. 음악에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어렵게 연습한 연말 연주회 모습입니다.
▲ 연말 연주회 연주 모습 현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모여 동호회를 만들었습니다. 음악에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어렵게 연습한 연말 연주회 모습입니다.
ⓒ 박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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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다양해지면서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색소폰 동호회다. 보통 동호회는 운영하는 사람이 회비를 받고 레슨을 한다. 회원들이 가능한 시간에 찾아와 개인레슨을 받고 연습을 한다. 동일한 동호회 회원이라도 안면만 있을 뿐 전혀 상관이 없다. 운영주체가 영리를 목적으로 개인 레슨을 해주며 운영해 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찾아오고 싶어 하는 동호회의 운영방식은 전혀 다르다.

회원 각자가 회원의 도움을 받으며 스스로 연습하는 전 동호회원이 주인이다. 회원이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정해진 시간에 전문강사와 함께 합주를 중심으로 레슨을 받는다. 회원들이 이루어 내는 앙상블은 다른 동호회에서 이루지 못하는 아름다운 화음이다. 한 번 매료되면 참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 각종 행사를 수시로 진행하며 회원들 간의 유대가 돈독해지는 동호회다. 

지인들의 결혼식 축하연주를 해주고, 가까운 야외에서 버스킹을 한다. 여러 색소폰 경연대회에 참여가 가능하도록 합주연습에 중점을 둔다. 가장 중요한 연말 연주회는 시에서 운영하는 공연장을 대여해 열리는 성대한 잔치다. 예술의 전당이라는 공연장에서 전체회원이 합주곡을 연주하고, 솔로곡과 듀엣곡으로 실력을 보여준다. 연주회가 끝나면 초청객과 전회원이 식사를 함께 하는 거대한 잔치다. 어떻게 이런 공연장에서 연주를 해 볼 수 있을까?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공연을 하는 것이다. 연말 연주회로 모든 것을 보상받은 듯해 회원들이 모여들고 연습을 하게 된다. 

올해도 연말 연주회를 해냈다

수많은 사연을 안고 일 년 간이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일 년 동안 연습을 했다. 많은 지인들을 초빙해 연주회를 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숨어 있다. 사람과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 언제나 의견이 일치할 수 있겠는가? 서서히 11월이 다가오는 밤, 전 회원이 모여 마무리 연습을 한다. 기타와 드럼이 동원되고 베이스와 키보드가 합류했다.   
 
▲ 아름다운 강산 연말 연주회 공연장면입니다. 음악에 전공자도,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지난해 연주한 '아름다운 강산'의 합주곡입니다.
ⓒ 박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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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이 일 년간 연습한 곡의 최종 리허설이 끝났다. 드디어 연말 연주회를 하는 날, 날씨는 흐리지만 마음만은 산뜻했다. 여러 사람을 초빙하는 연주회장은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 모든 회원들이 서둘러 준비를 하고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소리는 달라지고 마음의 여유도 넉넉했다. 초청된 가족들 앞에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한다. 이보다 더 흐뭇한 연주가 또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감히 생각지도 못한 연주회를 한 가을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을을 두고 떠났지만 색소폰 연주는 이루어졌다. 

세상에 쉬우면서 마음에 맞는 일이 얼마나 있다던가? 좋아하는 일 하나를 얻기 위해선 어려운 일 몇 개를 버티어야 한다. 세상 살면서 쉬운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삶도 어렵지만 사람과의 어울림은 언제나 만만치 않다. 어울려야 이루어지는 화음처럼 모든 사람이 어울려서 살아 낼 수는 없을까? 어울리지 못해 떠난 사람은 있지만 색소폰은 연주되었다. 어렵지만 참으며 버티여 내면 아름다운 화음은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힘겨워 그만두고, 마음이 편치 않아 돌아선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색소폰 연주를 다시 할 수 없느냐고 물어온다. 언제든지 다시 오라 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이다. 조금 불편해도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면 멋진 화음이 만들어짐을 알게 한 연말 음악회였다. 내년을 기약하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 뉴스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글이다.


태그:#색소폰, #동호회, #연말연주회,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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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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