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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차 만화가의 밥벌이 생존기'라는 부제가 붙은 김한조의 만화 <일어나요 강귀찬>(파란의자, 2023)을 최근에 읽었다. 이 텍스트를 통해 만화가는 강귀찬이라는 인물이 냉혹하고 치열한 만화계에서 힘겹게 자신의 작품을 그리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6컷 만화로 구성해 선보였다. 이 짜임이 이분법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이유로 독자들은 마음 편히 손에 잡히는 대로 한 페이지의 장면을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다.
 
『일어나요 강귀찬』 표지
▲ 『일어나요 강귀찬』 표지  『일어나요 강귀찬』 표지
ⓒ 파란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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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작품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실제로 겪은 감정 일부를 반영해 자기 고백의 형식으로 재현하고 있으니 진정성 있게 독자에게 전달된다. 그렇다고 해서 고백의 농도가 지나치게 짙지 않다. 고백의 형식이 진중하기보다는 '즐거운 놀이'의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만화가 김한조가 의도적으로 6컷 만화를 연출했다는 점에 조금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연출은 창작자에 의해 지극히 계산된 것이기 때문이다. 6컷 안에서 가능한 재미와 재치를 담아내려 만화가가 노력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두었다. 그러니 독자들은 이 문법 안에서 즐거움과 효과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만화가는 한시(漢詩)처럼 6컷 안에 기승전결 모두를 담아 놓는다. 하나의 이야기를 6컷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 완성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쉽고 단순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그림을 그려보면 재주가 있지 않으면 따라 하기 힘든 방식이다.
『일어나요 강귀찬』 14쪽.
 『일어나요 강귀찬』 14쪽.
ⓒ 파란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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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에 수록된 <사람은 안 바뀐다>(1-10) 편은 이런 속성을 잘 담아 놓았다. 작중 화자인 강귀찬은 만화가 웹툰으로 기울어진 시대적인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 인물이다. 반대로 이러한 동시대의 흐름을 부지런히 쫓아간 몇몇은 이미 웹툰계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강귀찬은 잘나가는 동료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동료는 이런 강귀찬이 한심스럽다. "뒤늦게 물어보는 습관은 여전하구나."(16쪽)라며 진작 좀 물어봤어야 한다는 식으로 애정 어린 핀잔을 준다. 강귀찬은 좌절한 나머지 다음 컷에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는 포즈를 잡는다. 동료들은 그런 강귀찬을 익살맞게 잡으려고 달려든다.

중요한 것은 만화가가 이런 흐름의 콘티를 '창작 행위'와 '육아' 그리고 '병원'에서 있었던 소재 등을 중심으로 150편 이상 쉬지 않고 지속한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와 반복이 만화가로서의 '긍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다. 이 만화는 적당한 유머와 함께 중년 무명 만화가의 삶을 곡진하면서도 유머 있게 담았다.

무명 만화가의 삶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 명의 무명 만화가의 삶을 바탕으로 힘겹게 견디며 살아가는 일반 중년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값지다. 따라서 직종과 상관없이 이런 공통감각을 나누며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이다. 그래서 만화가는 "나이기도, 모두이기도 한 강귀찬"이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말'을 기록했는지 모른다.
 
이 이야기는 내 삶에서 겪었던 위기 후에 회복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단상들을 묶은 것이다. 강귀찬이라는 중년 만화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내 또래가 겪을 법한 후회와 불안의 기록을 담았다. 이 만화는 온전히 내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 삶에서 이야기 소재를 가장 많이 얻었기 때문에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만화를 연재하는 동안, 고맙게도 공감해 주는 독자들도 있었고 직업을 떠나 내 나이 무렵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달고 사는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도 있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책 속 인물인 '강귀찬'은 웹툰 시장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시기에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해 도태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시대의 조류에 눈치 빠르게 또는 명민하게 합류하지 못한 강귀찬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치부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시대의 트랜드를 쫓아가지 못한 '우리'들은 쓸모 없는 사람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남들보다 시대적인 감각이 조금 떨어지거나, 느리더라도 예술가의 창작행위는 지속될 필요가 있다. 이 사실이 자명한 이유는 당대의 모든 작가가 한 시대의 추세만을 쫓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이하고 왜곡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귀찬'이라는 인물이 만화계에 존재하기에 역설적으로 만화계는 빛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이런 고백으로 독자들은 만화계의 흐름을 보다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작품의 쓸모는 소중하다. 그의 고백으로 독자는 하나의 표정을, 상징을, 얻었다.

물러설 수도, 앞으로 온전히 전진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만화가는 작품 활동을 지속해 나간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예술가로의 긍지를 버릴 수 없어서다. 두 번째는 아내와 자식이 있는 가장으로서 돈벌이를 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돈벌이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돈벌이'의 어려움과 고뇌를 이 작품은 유머의 형식으로 잘 담아 놓았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떠돌이 중년들에게 직종에 상관없이 이 만화를 추천한다. 이 웃음으로 잠시나마 '그들'이 쉴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일어나요 강귀찬 - 20년 차 만화가의 밥벌이 생존기

김한조 (지은이), 파란의자(2023)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태그:#문종필평론가, #김한조만화가, #일어나요강귀찬, #파란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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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를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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