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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은 그 가문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윗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음식은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이 됐다. 전통음식은 계승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전수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집안의 전통음식, 옛 음식을 전수해 줄 경남 함양의 숨은 손맛을 찾아 그들의 요리이야기와 인생래시피를 들어본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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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간 식당을 하며 요리를 해 왔다면서 아직도 요리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여인이 있다. 부엌에서 하는 모든 일이 지겨울 만도 한데 그녀는 앞치마를 두르는 순간부터 재미있다고 한다. 그녀가 말하는 재미의 요소는 요리하는 그 자체만이 아니다. '뭘 만들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도 있다.

강원도가 고향이라고 밝힌 전영숙 여사는 고향 하면 생각나는 게 '감자'다. 감자는 가장 흔한 식재료 중 하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요리에 다양하게 활용되는 감자.

"전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릴 때 너무 많이 먹었으니까요."

가난했던 시절 어머니는 팔남매의 자식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방법으로 감자요리를 택한다. 삶고 볶고 갈아서 만든 감자 요리를 전영숙 여사는 어릴 때 모두 맛보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감자껍질을 자주 벗기도록 시켰다. 감자요리의 첫 단계가 바로 껍질 벗기는 일이니 말이다. 지금이야 채칼이 있어서 금방 할 수 있는 작업이지만 그 시절엔 감자껍질을 벗길만한 요긴한 도구가 없었다.

"학교 갔다오면 감자를 깎아 놓으라고 시키셨죠. 채칼이 뭐예요, 그땐 숟가락이나 칼을 썼는데 감자껍질 벗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에 대한 기억은 '너무 많이 먹어서, 지겨워서 먹지 않는다' 또는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로 나뉜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처럼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음식은 이렇게 좋거나 또는 싫은 기억으로 뇌에 저장된다.

감자는 싫어도 감자부꾸미는 좋다
 
   
감자가 싫다던 전영숙 여사지만 '감자부꾸미' 만큼은 예외의 음식이다. 매일 먹는 감자요리가 지겨울 때쯤 어머니가 해 주시는 감자부꾸미. 부꾸미는 반죽을 동글납작하게 빚어서 소를 넣고 반으로 접은 다음 번철 같은 곳에 기름을 둘러 지진 떡이다. 반죽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수수부꾸미, 감자부꾸미 등 다양한 부꾸미로 완성된다.

그녀가 어릴 때 먹었던 감자부꾸미는 감자만 갈아서 먹었던 감자전에 불과했다. 팥도 귀해서 팥앙금을 소로 넣는 것도 드물었다.

"감자부꾸미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지요. 그땐 강판도 없었어요. 못으로 함석을 뚫어서 강판을 만들었어요. 감자를 갈다보면 손도 많이 다쳤어요. 지금은 그 모든 게 추억이네요. 그땐 소를 넣을 것도 없이 그냥 반으로 접어 솥뚜껑에 부쳐 주신 게 전부였죠. 그래도 어찌나 맛있었는지..."

고향을 떠나고 결혼하여 엄마가 되고 보니 없는 형편에 농사지은 걸로 배불리 먹이려는 어머니의 노력이 눈에 보였다.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감자부꾸미와 오버랩 된다.
 
강원도댁 전영숙 여사
 강원도댁 전영숙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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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잔치마다 불려 다닐 만큼 음식솜씨가 좋았다는 어머니를 그대로 닮은 건 팔남매 중 둘째였던 전영숙씨다. 그녀는 어머니를 도와 일도 참 많이 했다. 어머니의 요리솜씨를 닮아서인지 그녀는 음식을 보기만 해도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눈으로 그려졌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음식솜씨로 그녀는 30여년 간 식당을 운영할 수 있었다.

강원도댁이 함양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남편이 이곳으로 귀촌을 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따라오긴 했지만 그녀는 함양을 제2의 고향이라 여긴다고.

"제 고향 강원도도 산골이지만 함양도 산이 많고 고향과 비슷해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함양이 공기가 너무 좋아서인지 오랫동안 앓았던 천식이 사라졌다니까요."

"함양 농산물만 보면 요리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전영숙씨는 식당을 하면서 함양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식재료로 사용했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라도 농사를 짓지 못한다면 소비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러한 그녀의 마음이 고향음식 감자부꾸미를 산양삼부꾸미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제가 엄마가 되어보니 아이들에게 먹이고 손주들에게 먹일 음식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감자부꾸미를 떠올리면서 '깻잎을 넣어보면 어떨까', '파프리카를 넣어보면 어떨까', '산양삼이나 치즈를 넣어보면 어떨까' 하면서 감자부꾸미와 어울리는 채소를 찾게 됐어요."

전영숙표 감자부꾸미는 우선 감자를 강판에만 간다. 믹서기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감자덩어리가 있어야 씹히는 맛이 좋기 때문에 강판을 고집한다. 감자 전분으로 만드는 부꾸미에는 밀가루를 조금 섞어 반죽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팥앙금 대신 다양한 채소를 넣어 색과 향과 식감에도 변화를 주었다.

"흔한 음식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요. 감자부꾸미도 산양삼을 넣으니 귀한 음식이 되잖아요."

그녀의 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감자부꾸미. 감자부꾸미에 함양의 색을 입혀 산양삼부꾸미를 선보인 전영숙씨. 어머니에게서 배우고 싶었던 음식을 더 이상 알 길이 없어 아쉬워 하지만 그녀의 기억이 어머니의 맛을 소환해 내지 않을까.

함양에 살면서 함양을 사랑하게 됐다는 전영숙씨는 요리가 취미이다 보니 함양농산물을 보면 새로운 음식으로 개발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언젠가 함양양파를 이용한 요리도 개발하고 싶은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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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부꾸미 레시피]

-재료

감자, 산양삼, 팥, 깻잎, 파프리카, 계란, 감자전분, 설탕, 소금

-알아두기

감자전이 채소와 벌어지지 않도록 잘 구워주면 제대로 모양이 나온다. 반죽은 감자 1kg, 감자전분 2스푼, 계란 2개, 설탕과 소금 약간을 넣어 섞으면 너무 묽거나 되지 않게 알맞은 농도가 나온다. 100% 전분 가루만 넣으면 좀 딱딱하기 때문에 밀가루와 감자가루가 섞여 있는 걸 사용하면 좋다. 물은 절대 넣지 않는다. 채소를 다양하게 넣어서 만들면 재미 있다. 프라이팬을 센불로 달군 다음 감자전을 구울 때 중불로 낮춘다. 아이들이 먹지 않는 채소를 넣어도 좋다. 치즈를 넣어도 어울린다.

-순서

1. 감자를 강판에 갈아준다. 감자갈 때 손을 조심해야 한다. 믹서기에 갈지 않고 강판에 가는 이유는 입자를 살리기 위해서다. 강판에 갈아서 입자가 좀 씹히는 맛이 나도록 하는 게 좋다.

2. 감자 갈아준 걸 채에 받친다. 윗물은 버리고 가라앉은 전분을 섞어서 쓴다. 물이 어느 정도 빠져야 한다.

3. 반죽에 계란과 밀가루 2스푼, 소금 약간, 설탕 2스푼을 넣어서 양념이 섞이도록 저어준다.

4.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반죽을 최대한 펴서 얇게 감자피를 굽는다. 한쪽 면이 익고 나면 뒤집어서 감자전이 모두 익힌다. 살짝만 익어도 된다.

5. 감자전 위에 넣고 싶은 채소(산양삼, 깻잎, 파프리카)나 팥을 넣고 김밥 말듯이 돌돌 말아준다.

6. 감자전을 접어준다는 느낌으로 돌돌 말고 난 다음 살짝 눌러준다.

7. 노릇노릇하게 전을 굽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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