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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은 무릇 '기회의 균등'과 함께 '결과의 형평'이 중요하다고 할 때 금융의 공정성 논의에서 금융상품의 가격, 금융업 종사자 보수의 적정성은 논점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금융은 소비재가 아니라 중개 서비스이므로 적정한 비용 산정은 의미가 크다. 특히 금융회사의 커다란 이익창출이 있고, 그 뒤에 동전의 양면처럼 국민의 과도한 금융비용 부담이 존재하는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금융상품은 기본적으로 가격 탄력성이 작고 상품 공급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큰 특징이 있다. 금융상품의 가격이 금융서비스의 효용보다는 회사의 가격 결정능력에 더 큰 영향을 받는데, 이는 독과점 상품이 가지는 기본적인 특성과 더불어 가격 자유화의 흐름이 금융회사에 유리한 지형이 된 데에도 영향이 있다. 또한 금융상품이 복잡화, 증권화되면서 금리, 신용리스크를 소비자 등 타 경제주체에 전가하고, 금융회사는 소비자의 부채 규모를 키워 수익을 키우는 방식으로 진화되어 더욱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었다.

금융업은 시장 참여자가 다수이고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어 가격이 균형을 찾아가는 완전경쟁 시장은 되기 어렵지만, 금융업의 경쟁 강화, 상품감독 기능 제고, 소비자의 선택 능력 향상 등의 노력으로 한계점을 보완해야 한다.

첫째, 경쟁 강화 측면에서는 우선 사업자 확대를 생각할 수 있다. 금융업 중에서 은행업은 특히 국가경제 리스크에 미치는 영향으로 규모가 대형화되고 과점 성격이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3개 인터넷 전문은행이 활동하고 있으나, 기존 은행과의 차별성이 부각되지 않는 등 기대보다 경쟁효과가 크지 않은 상태이다.

이에 과점체제를 약화시키는 대안으로 영국의 Challenge Bank와 같은 Small License를 허용하는 방안이 있으나,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SVB) 사례와 같이 소형 금융회사는 안정성에 취약할 수 있고, 소형 회사의 파산이라도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시스템 리스크를 가져올 수 있다. 이렇듯 금융시장의 과점해소는 거시경제의 안전성, 소비자보호의 가치 등이 맞물리는 사안으로 해결이 매우 어려운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일부 언론이 언급하듯 대형 금융회사의 진입을 위해 금산분리 완화를 쉽게 떠올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는 과도한 경제력 집중, 금융회사 고객과 산업자본 주주간 이해상충, 사업위험의 전이 가능성 등 리스크는 크고 명확한 반면 기대효과는 불확실하다.

최근 도입 중인 대환대출 플랫폼 확대, 온라인 예적금 중개서비스 등은 가격 경쟁을 강화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실효성 제고를 위한 세부 방안 마련에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다만, 플랫폼은 많이 연결될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네트워크 효과'로 승자독식 효과가 커 면밀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모두가 플랫폼 경제에 종속되어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제도 시행 후에도 정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지난 2022년 주택담보대출 판매를 시작했다.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지난 2022년 주택담보대출 판매를 시작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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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금융업의 경쟁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금융상품 가격구조에 대한 감독강화를 생각해야 한다. 감독당국은 금융상품을 이해하기 힘든 소비자를 대신해 상품의 적정성을 철저히 점검해야할 의무가 있다. 은행의 금리 산정 구조, 금리조정의 일관성과 합리성, 증권의 각종 수수료, 증권예탁금 이자산정, 보험의 사업비·보험료 구조 등에 대해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은 가격 산정과 경쟁 저해요소는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소비자의 선택권 제고, 창의적 상품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가격 자유화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점검해야 한다.

셋째, 금융상품에 대한 공시도 개선되어야 한다. 금융상품은 구조가 복잡하고 회사마다 다양한 상품을 판매해 공시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형식적인 상품 공시는 바뀌어야 한다. 상품 가격구조, 수수료 수준을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회사간·시계열간 비교가 가능하도록 실효성 있는 공시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가격 투명성이 제고될수록 불합리한 금융지대는 축소될 것이다.

이렇듯 금융상품의 합리적 가격 산정은 금융 업권별 특성, 여러 이해관계자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이다. 더구나 가격은 금융회사의 이익에 직결되는 민감한 사항으로 이의 개선은 회사뿐 아니라 학계, 협회, 언론 등 금융권 네트워크가 단합해 반대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이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문제는 결국 국가가 국민의 지혜를 모아 정의를 세워나가야 한다. 금융상품 가격에 대한 논의를 경쟁력 강화의 측면, 감독적 측면, 소비자 보호의 관점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국민의 입장에서 엄정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금융업 종사자의 보수 문제를 살펴보자. 금융업과 같은 독과점 업종일수록 성과에 따라 보상규모가 크게 좌우되고, 소득 불평등이 커져 공정성 문제가 부각된다. 특히 최고 경영진의 보수는 그 증가 폭이 지속적으로 커져 생산성에 의해 정당화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금융업 친화적인 일부 언론이 재벌총수, 미국 금융회사 CEO와 비교해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경영진 보수가 높지 않다고 언급하는 것은 국민이 공감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금융업 종사자에 대한 보수 규모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금융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단기성과인 '돈'이라는 점이다. 금융업이 본래 기능을 다해 실물경제에 도움을 주는 정도, 소비자보호·취약계층 지원 등 공공성은 낮게 평가하고 회사수익 기여만을 크게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 원인으로 잘못된 인센티브에 기초한 단기 성과급 보수체계가 지목되었다. 경영진은 리스크는 타 경제주체에게 전가하거나 뒤로 미루어 영업성과를 부풀리고, 금융위기로 인해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불러일으켰음에도 거액의 성과보수만 챙겼다.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부실 사모펀드 사태를 통해 비슷한 문제가 노출되었다. 금융회사의 단순 매출과 이윤 규모에 의한 성과평가제도(KPI, Key Performance Index)에 따라 고객에게 제대로 상품설명도 하지 않은 채 판매에만 신경 써 커다란 소비자 피해를 일으켰다. 당시 일부 금융회사는 DLF(파생결합펀드) 같은 고위험 투자상품을 확정금리 상품같이 설명하고 팔았는데, 일선 창구에서는 그 상품구조를 이해하고 팔았는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었다. 부실 사모펀드 판매 결과 수많은 소비자 피해가 생겼어도 판매 직원은 수년간 성과평가 보수를 받았다.

얼마전 모 은행 직원들이 고객 몰래 문서를 위조해 불법계좌를 개설한 행위가 적발되었는데, 이는 2016년 미국 Wells Fargo 은행이 수백만 개의 계좌를 고객 동의 없이 개설해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과 아주 유사했다. 두 사건 모두 개인실적(KPI)을 올리기 위한 행위가 사고배경이 된다.

금융업이 아무리 수익을 내고 성장하더라도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직 이익만 좇으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손실을 다른 사람에 전가한다면 그것이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1980년대 이후 자유주의 경제철학에서는 자유, 효율성 외에 성과주의, 능력주의 사고가 기본이 된다. 능력주의는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능력에 따른 성과를 배분한다는 생각인데, 이러한 성과가 단순히 나의 재능, 기여도에 따른 대가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봐야한다.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의 저서에서 "개인이 재능을 갖게 된 것과 시장이 재능을 후하게 보상하는 것은 노력에 덧붙여 우연의 결과일 수 있으며, 능력주의의 폐해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배자에게는 굴욕감을 안겨주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금융업의 성과가 제 역할의 성취에 따른 것인가, 혁신에 의한 것인가, 세계 유동성 과잉 상황에 따른 우연한 힘이 작용한 것인가.
 금융업의 성과가 제 역할의 성취에 따른 것인가, 혁신에 의한 것인가, 세계 유동성 과잉 상황에 따른 우연한 힘이 작용한 것인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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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금융업의 성과가 제 역할의 성취에 따른 것인가, 혁신에 의한 것인가, 세계 유동성 과잉 상황에 따른 우연한 힘이 작용한 아닌가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정부, 금융회사 등 시장 참여자의 성찰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금융회사의 올바른 경영은 정당한 성과평가(KPI)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KPI 산정이 어긋나면 부실경영은 눈덩이가 비탈길을 굴러가듯 커질 것이다. KPI 기준에서 금융업 본연의 가치창출, 소비자보호 등 공공성의 비중을 강화하고, 회사, 당국의 실증적 분석, 개선이 지속되어야 한다.

금감원에서 2022년 중 증권회사의 부동산 PF관련 임직원 성과보수체계를 점검한 결과 일부 회사의 경우 이연지급 대상을 임의로 제외하고, 지급 기간도 단축하는 등 단기성과를 우선시하게 운영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근래 당국에서 금융업권별로 성과급 보수체계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앞으로 성과보수체계는 중장기적 성과를 반영하고, 회사에 손실을 발생시키거나 금융사고로 사회에 피해를 끼쳤을 경우 나중에 이익을 환수할 수 있도록 면밀하게 보완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임원 이상의 보수는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 없도록 미국, 영국의 Say-on-pay(주주투표로 경영진보수 결정)와 같은 주주의 경영진 보수 감시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경영진 보수를 자기들에 우호적인 이사들이 결정한다면, 운동선수가 자신의 기록을 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한 보상 관련 정보는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당국이 회사의 보상체계 결정시스템을 리스크 평가에 반영하는 등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금융서비스에 대한 가격이 합리적으로 산정되고, 집행되어 내게 그 혜택이 온다는 '사회적 신뢰'가 형성된다면, 금융업은 더욱 공정해질 것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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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에서 30 여년을 근무하고 부원장보를 마지막으로 퇴직했습니다. 건전하고 공정한 금융질서 확립과 금융소비자보호라는 조직의 존재이유와 내 본성, 가치추구와의 어울림이 커 업무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올바른 금융시장을 위한 고민을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 글이 금융업의 공정성제고를 위한 생산적 논의의 장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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