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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지금부터 종이 위에 자기의 손가락 모양을 그려보세요. 그리고 그 속에 여러분의 학교 이름 앞글자를 넣어서 삼행시를 지어볼까요? 일명 손바닥 동시를 지을거예요."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과 함께 지난 6일부터 20일까지(주1회 4시간씩) 지난 3주간에 걸쳐 '동시로 시화 작품 만들기 수업'을 했다. 작년부터 책방 행사 중 하나로 초등학생들이 참여하는 시낭송과 시화 작품 만들기를 했었는데, 소문이 난 건지 모 학교의 초대를 받았다.

6학급 150여 명의 학생들에게 시를 들려주고, 자작시를 짓도록 지도하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 나의 마음이 학생들에게도 전해지고 이번 기회에 문학 중에서도 시의 매력에 대하여, 특히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글 세상, 동시에 자긍심을 갖도록 수업 지도안을 구성했다.

"여러분, 혹시 시인의 이름을 알고 있거나 시의 제목을 알고 있는 시가 있나요?"
"윤동주요. 별 헤는 밤인가? 한용운 시인도 알아요."


뜻밖에 근대 시인들의 이름을 말하는 학생들을 보고 신이 나서 준비해 간 시화엽서를 꺼냈다.

"윤동주 시인이 쓴 <서시>라는 시에요. 혹시 누가 읽어볼까요. 용기 있는 학생에게는 선물이 있지요."

한 학생이 낭독하는 목소리는 어느 드라마의 배우처럼, 극적인 효과를 넣기도 하여 함께 계신 담임 선생님도 '호올' 하며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현정담 학생 시
▲ 동시 <겨울밤 불꽃> 현정담 학생 시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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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간에는 '손바닥 동시'라는 용어를 처음 말한 유강희 시인의 작품을 소개했다. 몇 작품들의 뽑아, 시의 제목 맞추기 등의 퀴즈로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시를 알도록 유도했다.

'내가 가장 열어보고 / 싶은 OO은, 내가 / 좋아하는그 애 마음 OO'

한 여학생이 손을 들어 정답! '상자'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렇게 손바닥 안에 들어갈 만큼의 짧은 3행으로 된 글쓰기로 '시인 되기'를 1차 목표로 정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자작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서 도화지에 시화 작품을 만들도록 지도했다.

"선생님, 뭐를 써야 해요? 저는 원래 글쓰기 못해요. 3줄도 너무 많아요. 아무 생각이 안 나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때마침 대설주의보가 내려서 창밖에는 앞도 보이지 않게 눈이 내렸다.
 
"우리 지금부터 마인드 맵이나 말 이어가기 방식으로 단어놀이 해볼까요. 겨울이면 생각나는 단어들을 말해보세요. 또 6학년의 마지막인 이때, 떠올려지는 말들은 어떤 말들이 있을까요."

"겨울이니까, 흰 눈, 추우니까 붕어빵, 붕어빵은 빨간 팥, 팥하면 팥죽, 팥죽은 동지날, 동지날엔 가장 긴 밤, 밤에는 밤을 구워먹고요, 할머니도 생각나고요, 졸업식 날 오신다고 했어요..."


학생들의 말 이어가기는 끝이 없었다. 칠판에 주요 단어들을 써 주었더니, 그 말을 활용해서 첫 줄을 쓰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심지어 3줄만 써야 하는지 묻는 학생까지 생겼다.

어떤 학생들은 준비해간 동시집을 읽어보더니, 제목에서 힌트를 얻어 단어를 바꿔쓰기도 했다. 또 어떤 학생들은 근대 시인들-윤동주, 김영랑, 김소월, 박목월, 조지훈-의 작품이 써진 엽서를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했다.
 
이지우 학생 시
▲ 동시 <집밥> 이지우 학생 시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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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연습 삼아 쓴 시작노트를 가지고 나왔다. 그 중 한 학생이 물었다.

"'집밥'이라고 제목을 써도 돼요?"
"좋지. 어떻게 쓰고 있어?"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란 말이랑 온도라는 말로 썼어요. 세 줄 썼어요."
"어디 보자. 와 끝내주네. 3줄로 1연을 썼으니까, 또 3줄을 써서 2연 짜리 시를 써보자."

 
송서윤 학생 시
▲ 동시 <사과> 송서윤 학생 시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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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학생이 물었다. "먹는 사과랑 싸운 후 사과랑 쓰면 이상할까요?" 학생의 연습노트를 보니 더 이상 손댈 것이 없을 만큼 멋진 시였다. 수업 마침 시간을 알려주며, 시화 작품 제출을 서두르고 있을 때, 조용한 학생이 도화지를 내밀었다. 시작 노트를 보여주지 않아서 부끄럼이 많은가 보다 생각했던 학생이었다.
 
고제인 학생 시
▲ 동시 <그냥 세 글자> 고제인 학생 시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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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세글자 – 고제인

평소엔 툭툭 잘 나오던 말
'미안'이 꽁꽁 숨는 날이 있어

너무 잘못해서
뭔가어색해서

'미안'이 숨으면 네 힘으로
'미안'을 데리고 나와

조심조심
'미안'의 손을 잡고
용기내어 말 해

"미∙안∙해."


깜짝 놀란 건 나만이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도 1등 작품으로 뽑아주셨기에. 선물로 준 초콜릿 하나로는 너무도 미안했다. 그리고 시화 수업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에게 한없이 고마웠다. 새해에는 '초등학생들과 함께 시화와 시낭송'을 계획하여 지역어린이들과 자주 만나길 소망한다. 

태그:#초등학교시화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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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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