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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좌포리 마을의 병풍, 삼각주 퇴적암
 진안 좌포리 마을의 병풍, 삼각주 퇴적암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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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관촌면 방수리에서 진안 마령면 강정리까지는 10km의 섬진강 물길이 감입곡류 물돌이동으로 7번이나 휘돌아 흐르는 험애 지형이다. 진안 마령면 강정리 강변에 있는 정자 쌍벽루(雙碧樓) 옆에는 암각서 '삼계석문(三溪石門)'이 새겨진 퇴적암 절벽이 있다. 

12월 하순에 섬진강 계곡을 '무릉(武陵)에 사는 한 어부'처럼 거슬러 올라가며 마령면 강정리의 쌍벽루를 찾아갔다. 쌍벽루 찾아가는 중에 성수면 좌포리 봉좌 마을 뒷산 능선의 우뚝 선 절벽이 예사롭지 않다. 병풍처럼 수려하다는 이 절벽은 마이산 퇴적암의 삼각주 층리 절벽이다. 진안 지역의 섬진강 상류 곳곳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큰 호수에서 형성된 역암, 사암과 이암 등의 퇴적암이 산재한다.
 
진안 쌍벽루의 강정대 암각서
 진안 쌍벽루의 강정대 암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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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벽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강정 마을에서 진안 읍내로 향하는 임진로를 따라가는 강변의 산허리에 위치한다. 이곳은 백운동 계곡의 백운천, 마이산의 은천과 주화산의 세동천 등 세 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산기슭의 퇴적암 위에 세워진 정자는 푸른 강물과 푸른 소나무가 아름다운 풍경이어서 쌍벽루라 하였다.

쌍벽루 서쪽 암벽에 '江亭臺(강정대)' 암각서가 있는데, '都隱先生杖屨之臺(도은선생장구지대), 葵庵先生考槃之臺(규암선생고반지대)'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장구(杖屨)와 고반(考槃)은 은자가 숨어 살며 머물렀던 자취를 비유하는 관용적인 어휘이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인 600여 년 전에 도은 선생이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으며 오른 누대이다. 조선 중기인 400여 년 전에 규암 선생이 은거한 개울가의 오두막이라는 의미이다. 
 
진안 쌍벽루의 삼계석문 암각서
 진안 쌍벽루의 삼계석문 암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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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벽루로 오르는 산비탈 아래에 집채만 한 역암에 '삼계석문(三溪石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신라 시대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글씨를 탁본하여 1590년에 새긴 것으로 금석학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이 쌍벽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쌍계정(雙磎亭)이 자리한 퇴적암 동굴에는 '쌍계석문(雙磎石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진안 마령면의 삼계석문, 쌍계석문의 암각서는 이 지역의 선비들이 최치원을 흠모하고 추앙하여 그의 글씨를 본떠서 바위에 새겨놓은 것이다. 

지리산 자락의 하동 화개면 쌍계사 입구 계곡에 고졸(古拙)한 필체의 '쌍계석문(雙磎石門)' 4자는 최치원의 친필로 전해진다. 쌍계사 앞으로 흐르는 두 개울에서 비롯한 '쌍계석문' 4자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승려나 선비들이 선망하고 희구하는 대상이었다.
 
진안 쌍벽루 절벽의 퇴적암 타포니
 진안 쌍벽루 절벽의 퇴적암 타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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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쌍계석문'의 발상은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기원한다. 이 설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청학동(靑鶴洞)이라는 이상향을 만들었는데, 그 청학동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석문(石門)'인 셈이다.

고려 시대의 문신 이인로(李仁老:1152~1220)는 <지리산청학동기(智異山靑鶴洞記)>에서 청학동을 이상향으로 묘사하였다. 지리산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서 겨우 드나들 수 있다. 웅크리고 몇 리쯤 가면 탁 트인 동네가 나타나는데, 둘레가 모두 좋은 농토이다. 푸른 두루미가 그곳에 살기에 청학동이라고 한다.
 
진안 쌍벽루 절벽의 역암 동굴 형상 타포니
 진안 쌍벽루 절벽의 역암 동굴 형상 타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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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고승인 소요逍遙) 태능(太能)[1562~1649]은 서산 대사의 전법 제자였다. 그가 1647년 9월에 지리산을 여행하며 하동의 쌍계석문을 보고 지은 한시 '제쌍계사최고운석문필적(題雙溪寺崔孤雲石門筆迹)'에는 석문과 청학동의 정경이 간략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頭流方丈眞仙界(두류방장진선계)
鼓翼淸吟付石門(고익청음부석문)
石門筆迹人間寶(석문필적인간보)
遊戱金壇銷白雲(유희금단소백운)

두류산의 방장은 선계 그대로이고,
새가 활개 치듯 맑은 계곡물 소리가 석문에 새겨졌구나.
석문의 필적은 세상의 보배가 되었고,
신선이 노닐고 있으니 흰 구름이 가려주네.



무릉도원이나 청학동은 좁은 계곡의 개울물을 따라 올라가서, 동굴이나 석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이상 세계인 선경(仙境)이었다. 섬진강 상류인 진안 마령면에 세 갈래 냇물이 모이는 곳에 '삼계석문', 두 갈래 냇물이 모이는 곳에 '쌍계석문'을 바위에 새겼고, 이곳을 이상향으로 인식하였다.
 
진안 쌍계정 석문 암각서
 진안 쌍계정 석문 암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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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마이산의 역암은 지표면에 노출되면 풍화되어 풍화혈(타포니 Tafoni)을 무수히 형성한다. 마이산 퇴적암에 형성된 동굴 형상의 풍화혈은 1억 년의 지질 시대가 빚은 자연의 예술품이며 영원한 세월 동안 고요하고 평화로운 무위자연이다. 이 풍화혈은 이상향을 향한 석문을 상징하는 도상(圖像, 아이콘)처럼 보였다.

이끼 낀 절벽 아래에 신선 같은 풍모의 선비가 짚신을 끌고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거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푸른 소나무 아래의 널찍한 바위 위에 쌍벽루는 맑은 강물을 굽어보는 듯하다. 청학동을 찾는 것은 결국 이 세상이 평화로운 이상향이 되기를 간절히 희구하는 바람이고 실천일 것이다. 쌍벽루 오르는 비탈길에 서서 퇴적암 절벽의 풍화혈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 섬진강 상류 석문 계곡의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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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진안쌍벽루, #진안쌍계석문, #진안삼계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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