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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드러내는 게 힘들어요"라고 K님이 말했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는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아요"라고 나는 답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 역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를 드러내는 데에 주저했다. 아무도 관심 없을 텐데 그냥 혼자 꼭꼭 숨기며 글을 썼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글을 쓰는 데에는 한계가 너무 빨리 왔다. 처음 나를 드러내는 글을 썼을 때 글벗은 "처음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쓰셨군요"라고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온전히 보여주는 데에는 자신이 없다. 비록 익명일지라도.
 
'나를 드러내기'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나를 드러내기'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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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글을 쓰지 않아 명맥만 유지하던 글쓰기 모임 회원들과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나를 포함 총 4명의 회원 중 참석자는 3명이었다. 한 명이라도 오면 괜찮다 싶었는데 두 명이나 참석했으니 출석률이 좋다고 해야 하나? 싶다.

글은 써본 적 없지만 의욕을 보이는 P님. 두 번째 만난 K님. K님은 볼펜으로 손 일기를 쓸 정도로 글에 진심인 편이다. 글 쓰는 방법도 일기를 써서 그 글을 확장시켜 나간다고 한다.       

글에 대한 이야기 중 공통된 의견은 자신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다는 고민이다. 꼭 글 쓰는 사람이 아니어도 자신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P님은 가정주부다. 평소 참으며 생활했던 그녀는 어느 날 "내가 왜 참아야 하지" 하는 회의감에 도달했다고 한다. 최소한의 표현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짐작한다.

20대 P님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중3이 쓴 기사 <나의 보호자는 할머니 할아버지 >에 대해 그 학생의 가정사가 다 드러난 것에 주목했다. 보기 드문 감동적인 기사여서 링크를 걸어 모임 전 읽어 보기를 권했던 글이었는데 그런 소감을 주었다.       

모든 글은 작가를 닮아있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쓸 수 있는 글은 없다는 뜻이다. 브런치북 대상자 중 한 명은 소감으로 " 호외요 호외 여러분 저는 엄마가 없어요"라고 전국에 까발린 기분이라고 했다. 고졸이라고 커밍아웃을 하는 바람에 인신공격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공격을 당한 셈이다. 그마저도 농담으로 풀어낼 내공자였지만 그 속이 어떨지는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을 내보임으로써 감동도 진정성도 모두 잡았다.

우스개 말로 작가들은 처음엔 자신을 쓰다가 가족을 쓰고 그러다 점점 사돈의 팔촌에 16촌까지 쓴다고 한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지만 그마저도 결국은 자신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나 역시, 처음엔 나를 쓰다 점점 가족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쓸수록 대범해지고 있다. 겁 없이 무모해지기도 한다. 아직 사돈의 팔촌까지 가지 않았지만 언젠간 나도 소설이라는 부캐를 덤으로 꺼내 들지 모를 일이다.

한동안 글감으로 유행했던 주제가 있다. 바로, 이혼 퇴직 육아 같은 것들인데. 평범한 일상으론 주목받지 못하니 글쓰기 위해서 가짜 이혼, 가짜 퇴직이라도 해야 될 것 같다며 성토하는 글도 있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는 절대 쓸 수 없는 주제들이다. 그런 면에서 K님이 고민한 '나를 드러내기'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단한 알을 깨고 나와야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글쓰기는 나를 보임으로써 시작한다고 믿는다.        
글쓰기의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어쩌면 나를 드러내지 않고도 쓸 수 있는 글의 통로는 많다. 그럼에도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작업이 가장 좋은 것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그 목적에 가장 호응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쓰고 싶어요. 쓰면서 감정을 치유하고 싶어요." 글 쓰는 모임에 참여한 이유를 묻자 P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그녀에게 '긴 글 쓰기'를 권유했다. 끄적임에서 시작하다 보면 뭐라도 나오기 마련이니.

그리고 주어진 주제를 쓰지만 온전히 자신을 보이기 쉽지 않다는 K님의 말을 곱씹어 보니 나는 그 이유가 타인의 시선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누군가 나를 알아보기 시작하면 글쓰기가 불편해질 수도 있고 등장인물에 대한 배려도 해야 하니 조심스러운 것은 맞다. 그러니 글을 쓰면서 차분하게 나아가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목표를 향해.         

글쓰기 전문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타인의 어떤 시선에도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한 무게감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악플에 반응하지 않는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나아가기를 주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초라한 글은 없으니까. 자유롭게 거침없이 써 내려가야 한다고. 도전하는 자세로.

여전히 배울 게 많은 나의 글쓰기도 끊임없이 나아가기 위해 도전 중이다. '안 해 본 도전은 실패, 망설인 기회는 낭비'라고 노래하는 그룹 골든걸스의 울림이 오늘따라 큰 힘으로 다가오는 날이다.

태그:#글쓰기, #골든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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