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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밤 무작정 걷다가 발견한 눈사람 너무 예쁘지 않나요?
▲ 공원풍경이 된 눈사람 눈내리는밤 무작정 걷다가 발견한 눈사람 너무 예쁘지 않나요?
ⓒ 전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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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나갔다 장 몇 가지를 봐왔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은 바로 '눈사람'이다. 30일 밤. 서울 적설량 32년 만에 최고치라는 뉴스 타이틀이 뜬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꿉꿉한 하늘이더니 결국 눈을 만들어 내고 있다. 눈이 온다고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을 하고, 괜스레 기분이 들떠 있는 사이 창밖엔 벌써 어둠이 깔렸다. 눈 내리는 풍경이 보고 싶어 방 불을 껐다. 어두워진 밤 풍경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내가 있는 이곳이 더 어두워야 한다.      

한 폭의 그림처럼 프레임 속 풍경은 조명과 어우러져 제법 운치 있는 모습으로 들어온다. 순간의 찰나처럼 눈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흩날렸다. 소나무 위에 쌓이고 어둠 속에 쌓였다. 이럴 땐 그냥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간다. 어떤 표현도 지금 내 감성이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 내리는 밤길을 걸어본 적이 언제던가. 발자국을 내며 눈길을 걷는다. 한 마리 외로운 동물처럼 어슬렁거리다 그냥 들어오기 뭣해 몇 가지 식료품을 산 것이다. 옜다 아이스크림도 하나 샀다. 평상시 먹지 않는 아이스크림을 샀다는 건 내게 큰 인심을 쓴 것이다. 눈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눈사람 만드는 아이들을 만났다. 갑자기 내린 눈에 장갑 낄 시간이 없었던 걸까. 아이들은 신이 나서 맨손으로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과 시시콜콜한 눈사람 얘기를 하고 발길을 돌렸는데 문득 '눈사람은 왜 만드는 걸까' 시 제목 같은 문장이 불빛처럼 반짝였다. 
       
내내 그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는데 공원 마루 위에 제법 큰 눈사람 하나가 떡하니 서 있다. 누가 만들었을까. 너무 예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눈사람이다. 이렇게 근사한 눈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 요리조리 살펴보니 분명 나이가 있는 사람의 작품이다. 눈뭉치 굴린 솜씨를 보면 알 수 있다. 멋스럽게 소나무 가지 모자도 썼다. 외로울까 꼬마 눈사람도 옆에 나란히 있다. 녹으면 금방 사라질 눈사람인데 꽤나 정성스레 공들인 모습이다. 눈사람에게도 정이라는 게 있었던 걸까. 그래 그러고 보니 눈사람도 사람이다. 온기가 없는.        

올라프. 엘사와 '렛잇고' 노래 열풍을 가져왔던 영화 겨울왕국에 나오는 눈사람이다. 올라프는 눈사람임에도 여름을 상상하며 즐겁게 노래한다. 관객들은 그런 올라프가 안타깝지만, 올라프에겐 간절한 소원 같은 그리움이다. 그래서였을까. 올라프는 자신의 상상처럼 마법 속에서 여름을 살 수 있게 된다. 꿈꾸는 아이들을 손뼉 치게 만드는 동심으로선 최고의 장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런 올라프 닮은 눈사람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결국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내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 느낀 겨울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길을 따라 걸었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밤이면 영화 <러브스토리>에서처럼 마구 뛰어다니며 눈밭을 구르고 싶다. 눈 뭉치를 굴려 눈사람도 만들고 싶다. 그래, 그랬던 적도 있었다. 흰 눈이 오면 한밤중에도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놀았다. 눈싸움을 하다 진짜 싸움이 될 뻔한 적도 있고 경계선이 분명한 다리 위에서 어미소새끼 놀이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거 같다.            

가로등 조명에 떨어지는 찰나의 눈을 볼 때면, 그 눈발이 조명을 벗어나 땅이라는 목표 지점을 향해 도달하기까지의, 그 어느 구간이 되었던 조명 안의 눈발은 언제나 더 아름다웠다. 가로등이 만든 환한 보름달 속의 눈밭, 그 구간은 여전히 선명하게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또렷이 기억한다. 쌓이는 함박눈도 다리 위에 떨어질 때면 바로 녹아 사라지는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의 머리 위에 어깨 위에 닿아 없어지는 수많은 눈을 깜박이며 쳐다본다. 금세 사라지는 눈이 그리워질까, 눈사람을 만들어 다릿발 위에 세워뒀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꼽아 장식했다. 아쉽지만 다리 위에 홀로선 눈사람을 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밤새 혼자 있을 눈사람이 걱정되었지만 내일 다시 볼 수 있을까 따뜻하고 설레는 밤이었다. 폭설을 걱정하는 어른들과 달리 눈 내리는 밤은 언제나 그리움이다.       

사라지는 것들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리운 것들을 잊지 않으려 기록하는 바로 지금. 눈사람이 눈의 기록이라면 나의 삶은 나의 기록이다. 모든 찰나의 순간은 가로등 조명 프레임 속 눈밭처럼 어느 구간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눈사람'에서 시작한 어느 '구간'의 그리움과 '눈사람은 왜 만드는가'에서 '눈물은 왜 짠가'를 떠올렸다면 무모한 연결인 걸까. 고백하건대 그렇게 연결된 순간이 지금의 시작이었다. 눈사람과 눈물의 연결고리가 억지스럽다 해도 그냥 넘어가고픈 눈 내리는 밤이다.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눈사람' 때문에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들기 쉽지 않을거 같다. 눈이라도 밤새 내리면 좋겠다.     

겨울을 노인의 겨울(old Man Winter)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노인을 의인화했다는 눈사람은 어쩐지 노인의 삶을 닮아 있는거 같아 조금 슬픈거 같다. 그런데 눈사람은 모두 웃고있다.    

태그:#눈사람, #눈내리는밤,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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