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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월호 생존자 중 한 명인 김동수씨(파란바지의 의인이라고도 불리는)와 함께 세월호 참사 10년을 기억하며 416챌린지를 펼칩니다. 4.16km이상을 걷거나 뛰고난 뒤 sns 등에 #416챌린지 등의 태그와 함께 인증사진을 올려주셔서 함께 힘을 실어주시길 바랍니다.[편집자말]
"달려 본 사람은 숨이 차고, 온 몸이 고통스럽게 아프고, 외로운 걸 잘 알아."

서울에서의 마라톤 모임 때문에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김동수씨를 만나 4시간 넘도록 수다를 떨었다. 수다의 내용은 정말 다양했다. 당시 내가 제주에서 몇 년간 운영해 온 사업을 정리하며 겪었던 마음 속 이야기부터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 가족에 대한 마음 등 수다가 이어졌다. 특히 며칠 전 내가 처음으로 20km를 쉬지 않고 달렸다는 소식을 알렸던 터라 우리는 달리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중년의 남자 둘이서 카페에서 4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랍기도 했다.
 
2023년 1월 서울의 한 카페에서 김동수씨로부터 받은 신발을 바라보고 있다.
 2023년 1월 서울의 한 카페에서 김동수씨로부터 받은 신발을 바라보고 있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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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가 김동수씨를 안 것은 2019년 제주에서 기억 공간이자 게스트하우스인 '수상한 집'을 시작할 때였다. 그 전에는 언론에서 본 모습 정도였다. '세월호 의인'으로 알려진 그는 세월호 청문회에서 자해를 하거나, 국회 앞에서 자해를 하거나, 광화문에서 자해를 하거나, 집에서 자해를 했다.

그래서였는지 첫 만남은 매우 긴장되었다. 혹시라도 내가 실수하지 않을지, 혹시나 나의 말과 행동으로 오해를 사지 않을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나 자신 상처받은 다양한 피해자들을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만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인명을 구조하다 그 배 안의 모습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야 하는 생존자를 대면한다니 무척이나 떨리고 긴장되었다. 누구도 일평생 못해본 경험을 지닌 그를 대면하는 게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워낙에 말수가 없는 김동수씨였기에 그와 오랫동안 대화를 할 기회가 적었다. 김동수씨 역시 늘 정신과 약을 복용했기에 온전히 맑은 정신으로 사람을 대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잠을 자기 위해 다량의 약을 먹고 나면 당일 저녁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몽롱한 상태가 되어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과의 접촉 시간이 적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줄어들고 사람과의 접촉도 줄게 된다.

그런 그에게 마라톤은 어쩌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김동수씨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 제주라는 섬은 거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사람들에게 가깝지 않다. 바다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가깝지 않은 곳에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와흘이라는 곳은 제주시에서 차량으로 30~40분 이상 달려야 도착하는 중산간 마을이다. 사람이 많지 않은 호젓한 마을에 사는 그가 일하는 곳은 산 속이다. 그가 일하는 한라산둘레길 안내소는 서귀포에서 가까운 곳으로 하루에 채 10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이동하는 곳이다. 사람 구경이 귀한 곳이다. 세월호 참사를 경험한 트라우마 피해자이기에 자연과 함께 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세월호에 있던 김동수씨 아니냐, 파란바지 의인 아저씨 아니냐고 할 때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당연히 아이들을 구한 것인데 의인이라고 하면 내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에요. 세월호 의인이라고 나를 알아보는 순간, 나는 그 배에서 내가 더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막 떠올라요. 오히려 죄스럽고 고통스럽죠. 그래서 사람들을 붙잡고 해명하고 이야기 하고 싶은 거예요. 세월호 참사가 사실 이랬다, 그래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우리 같은 생존자의 문제는 이런 것이다라는 걸 다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을 붙잡고 몇 시간을 떠들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은 산처럼 많지만 내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점점 더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가게 되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세월호 참사 후유증으로 늘 악몽에 시달리고, 불안과 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약을 먹지 않으면 3~4시간의 잠도 자지 못한다. 복용한 약 때문에 온전한 정신으로 일상을 사는 것도 어렵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전날 밤에 냉장고를 뒤져 음식을 먹은 흔적이 역력하고, 집안의 가구나 물건의 배치가 바뀌어 있기도 하다. 또 기억에도 없는 금융거래를 한 경우도 허다하다. 갑자기 문 앞에 택배가 와있
기도 했다.

김동수씨는 약에 의존하지 않고 잠을 자고 싶어 한다. 먼 거리를 매일 달리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라도 근육을 움직이고, 조금이라도 더 몸을 피곤하게 해 잠을 자고 싶어서다. 가만히 있으면 신체가 손실되는 것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움직여 신체 손실을 줄이려 애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라톤은 김동수씨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딱 들어맞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마라톤은 김동수씨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그는 달릴 때 항상 세월호 로고가 새겨진 작은 천을 상의에 부착하고 달린다. 세월호 참사의 실상을 알리고,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길 바라는,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다.

나 역시 당시 주변에서 여러 일들이 겹치며 힘들었다. 그래서 1월이 시작되던 날 밤, 복잡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잊고 수면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 한밤중에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 몇 킬로미터만 달리려고 했는데 20km의 거리가 되고 말았다. 사실 마라톤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지만 뛰는 동안 온몸으로 전해지는 통증과 고통 탓에 다른 생각은 비집고 들어올 여유가 없다. 그저 내가 목표한(누가 정해주지 않는) 곳까지 묵묵히 걷지 않고 달리자는 마음, 그 자체가 좋았다. 복잡한 계산이나 예측이 아닌 내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에 집중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온 몸에서 고갈되는 에너지는 오히려 필요없는 것을 모두 밖으로 내던지는 경험이다. 텅 비어지는 그 기분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이대로 계속 달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비루한 체력은 딱 거기까지였다. 달리기를 마치고 조금 천천히 걷거나 뛰면서 호흡을 정리했다. 원래의 호흡이 조금씩 돌아올 때 가장 먼저 김동수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답 문자가 왔다.

'대단합니다 ♡♡♡♡'

단 한 줄의 답이었다.

뭐가 대단한 걸까?

그날 카페에서 김동수씨로부터 그 대답을 들었다.

"마라톤을 뛰는 사람은 누구보다 고통을 잘 알아. 달려 본 사람은 숨이 차고, 온 몸이 고통스럽게 아프고, 외로운 걸 잘 알아. 그래서 다른 사람이 힘들다고 하면 공감이 잘 되는 거야. 사람이 힘들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아니까. 그래서 그렇게 뛴 것이 대단하다는 거야."

그가 말한 대단하다는 의미는 대견하기도, 고맙기도 하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잃지 말라는... 그래서 꾸준히 달리면서 그 의미들을 잊지 말고 살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날 나는 신발을 한 켤레 선물 받았다. 김동수씨가 신고 달리던 신발이었다. 그 신발을 받으니 앞으로 그와 함께 달려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겼다.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함께 뛰자는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약속의 징표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신발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매년 4월 16일만 되면 홀로 뛰었다는 마라톤에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짧은 거리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마음을 다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애도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진실을 함께 알리면서, 더불어 그 길을 달리는 김동수씨가 더는 외롭지 않게 달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같이 들었다.

할 수 있다면,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길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날 이후 나와 김동수씨는 또 다른 달리기를 꿈꾸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태그:#파이팅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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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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