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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화천산천어축제에서 동물학대가 자행되는 모습과 이를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들
 2024 화천산천어축제에서 동물학대가 자행되는 모습과 이를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들
ⓒ 이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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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다.'

2024 화천산천어축제장에 도착해 느낀 첫인상이었다. 포스터도 똑같다. 현수막도 똑같다. 높이 띄운 애드벌룬도 똑같다. 심지어 '산천어 맨손잡기장'에서 마이크를 쥔 진행자가 입은 하얗고 긴 외투까지 작년과 같았다.

수년째 똑같은 위치, 똑같이 동그란 맨손잡기장, 그 얼음장 같은 물속에 산천어가 득실거렸다. 그때 꽥꽥거리는 고함이 들려왔다. "믿습니까!" "...네!" "목소리가 작아. 다시 한번, 믿습니까?" "네!" 추위와 어류가 두려워 주춤거리는 참가자 수십 명의 정신을 쏙 빼놓으려 하는 진행자의 목소리였다. 아, 그 장난스러운 말투까지 변함이 없었다.

산천어축제 현장에서 마주한 의아한 장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는 축제장을 뛰어다니며 필사적으로 작년과 달라진 것을 찾았다. '변화'만이 우리가 이곳에 온 유일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참여자가 줄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축제가 개막하는 6일, 예약 낚시터 티켓은 이미 매진되었고 현장 낚시터 티켓은 대기 번호가 1000번을 넘어갔다.

산천어를 살아있는 동물로 다루긴 할까? 역시 아니었다. 낚시터에서 잡고 남은 산천어는 물 한 방울 담기지 않은 '나눔통'에 버려졌다. 모든 어류가 숨을 쉬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다는 간단한 생물 법칙도 이곳 화천산천어축제장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듯했다.

나는 낚시터 앞 쓰레기통 안에서 작년과 달라진 것 하나를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산천어를 담는 비닐 주머니의 디자인이었다. 작년이 끈으로 조이는 방식이었다면, 올해의 것은 '손잡이가 달린 지퍼백'이었다. 축제장의 사람들은 깨끗하고 하얀 손으로 한층 더 편리해진 비닐 주머니를 쥐고 천천히 질식하는 산천어 서너 마리를 달랑달랑 들고 다녔다.
 
2024 화천산천어축제 앞에서 시셰퍼드 코리아 활동가가 반대 목소리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2024 화천산천어축제 앞에서 시셰퍼드 코리아 활동가가 반대 목소리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 시셰퍼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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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의아한 일이다. 산천어 축제장에 들어서면 모두 마취라도 되는 듯하다. 죽어가는 물고기를 물 없이 비닐에 담아 다니는 행위는 축제장에서 몇 발자국만 떨어져도 용인되지 않았다. 우리는 축제 시작 한 시간 전,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비닐봉투에 움직이는 물고기 장난감(고양이용 충전식 장난감으로, 툭 건드리면 진짜 물고기처럼 펄떡거린다)을 넣고 축제장인 화천천으로 들어가는 터널 입구에서 피켓과 함께 이를 들었다.

펄떡이는 무언가를 들자, 행인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반응은 다양했다. 한 어린이는 비닐 주머니와 시위하는 활동가를 번갈아 지켜봤다. 또박또박 피켓 글을 읽는 중학생도 있었다. '아.이.들.은. 동.물.학.대.를. 배.웁.니.다.' 지나가던 중년 여성들은 물고기 장난감이 꿈틀거리자 "이게 동물학대 아니냐"며 경악스러운 얼굴로 쳐다봤고, 한 중년 남성은 "이거 살아있는 거요?"라며 삿대질을 하기도 했다.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라 인형이라고 말하고 나니 행인들은 머쓱해했다.

'살아있는 걸 들고 있는 줄 알았다' 말하거나, 안도한 얼굴로 활동가에게 다가와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시선을 주고, 소리를 내고,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문제로 보이는 것을 비난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 보이는 어류에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했다. 화천천으로 향하는 터널이 망각의 터널이라도 되는 걸까, 밖에서는 동물학대로 보이는 것이 안에서는 버젓이 자행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화천군이 만든 '윤리적 진공상태'

우리가 화천군을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람들의 감각이 터져 나오는 그 지점에 소음과 산만함이라는 댐을 짓고, 매년 수십만 명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화천군이 '산천어 패대기 워크숍'을 벌인다고 그들을 고소한 게 아니다. 화천군은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대신 지자체의 권위를 사용하여 사람들 사이에 무감각을 확산하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동물을 학대하고 나아가 그 행위를 즐기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이 윤리적 진공상태에서 화천군은 60억 원(2019년 기준)에 육박하는 돈을 번다.

그들이 디자인한 거대한 지퍼백 안에서 사람들의 감각은 산천어와 함께 천천히 질식한다. 화천군은 무더기로 죽은 감수성을 가방처럼 손에 쥐고 달랑달랑 들고 다닌다. 그리고 그걸 팔아 이듬해 축제에서 사용할 산천어 치어 10만 마리를 생산한다. 악독하기 짝이 없다.

2년 전 최문순 화천군수는 자신에 대한 동물보호법 고발 건이 각하된 이후 "이번 검찰 결정으로 화천산천어축제를 향한 논란이 완전히 종식되길 기대한다. 흠집내기식 비난이 금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외부자에 대한 경계와 배제, 그것은 최 군수가 얼마나 일방적으로 축제를 지배하고 있는지 방증한다. 합리적 근거가 있는 의견조차 '흠집 내기'로 치부하며 일축하는 그가 말도 못 하는 동물의 고통을 이해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희망을 거는 것은 장난감 물고기에도 걱정하는 시선을 보내던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숨을 잔인하게 앗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던, 그저 지역 축제에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쌓으려는 것뿐이었던 사람들 말이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산천어가 고통받고 있다는 깨달음, 그런 축제는 거부하겠다는 실천적 앎. '인지'의 문은 서서히 열리고 있다. 

산천어의 저항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가 2024 화천산천어축제 앞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 2024 화천산천어축제 앞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가 2024 화천산천어축제 앞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시셰퍼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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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부터 예산, 언론까지, 화천 내의 모든 자원을 통제할 수 있는 최문순 화천군수가 이 축제장에서 지배하지 못하는 것이 단 하나 있다. 바로 산천어가 몸으로 고통을 표현하는 것, 그것은 군수가 아니라 그 누가 와도 막지 못한다. 산천어는 화천군이 시키는 대로 유순히 죽지 않는다. 척추를 뒤틀고, 아가미를 쩍쩍 벌리고, 온몸으로 얼음판 위에서 튀어 오른다. 튀어서 튀어서 물 쪽으로 가고자 한다. 살고자 한다. 

화천군이 우량종자 수십만 마리를 선택적으로 생산하고, 양식장에 항생제와 구충제를 들이붓고, 찌를 물라며 수일간 산천어를 굶길 수는 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을 맞은 산천어가 능동적인 행위자로서 자신에게 가해진 고통에 끝까지 저항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의 표현은 아직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방식은 아닐 테지만, 축제장 앞 비닐봉지에 담긴 물고기 장난감을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산천어로 시작한 축제, 산천어가 끝낼 것이다.

아직 어류는 우리가 공감할 수 없는 먼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수많은 과학자가 어류의 쾌고감수능력을 연구 결과로 증명하고 있고, 스위스·뉴질랜드 등은 법적으로 문어 등의 지각력을 인정하고 있다. 어류를 게임으로 이용하는 게 나쁘다는 것, 어류를 물 한 방울 없는 비닐봉지에서 죽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것, 놀이를 위해 생명을 생산하면 안된다는 것은 언젠가 우리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될 것이다. 소싸움과 개 도살, 고래 사냥이 이러한 감수성의 확대 과정에서 상업성을 잃었다. 

축제의 종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

이러한 '주장'이 없어도, 산천어 축제의 종말은 이미 다가오고 있다. "화천 산천어축제 왜 이렇게 변했나요?"는 업로드 후 7일 만에 19만 회 조회수를 달성 중인 한 낚시 유튜버가 올린 영상 제목이다. 유튜버는 축제 개막일 8시 30분부터 긴 줄을 서 '오픈런'해 얼음 낚시장에 들어갔지만 수중 카메라로 물속을 들여다보니 산천어가 많이 없었다고 전했다. '올해는 방류를 많이 안 한 건지 고기가 많이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았다'고 설명한다. 

이어 호기롭게 문을 연 2024 산천어 축제 안내 방송에서는 '산천어를 세 마리 잡으신 관광객은 퇴장하라'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작년부터 새롭게 생긴 이 규칙 때문에 현장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다툼이 이어졌다. 현장 관계자는 "산천어 단가가 (높아서) 세 마리 잡으면 밑지는 장사"라고 표현했다(축제가 아닌 '장사'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이상기온으로 얼음이 얼지 않아 얼음 낚시 자리를 많이 확보하지 못했고, 따라서 자리가 한정적이니 세 마리를 잡은 관광객은 나가 달라는 읍소였다. 관광객들은 '사전 예약할 때는 보지도 못했던 규칙'이라며 항의했다. 

겨울 축제들은 이미 속속이 취소되고 있다. '장사항 오징어 맨손 잡기 축제'는 몇 해 전부터 어획 부진으로 오징어가 귀해지며 2020년부터 열리지 못하고 있고, 오는 19일부터 인제군 남면 일대에서 개최하려던 2024 인제 빙어축제는 기상 여건으로 취소됐다. 꽝꽝 얼었어야 할 하천은 보란 듯이 찰랑이고 있다. 이것이 기후위기를 맞은 지금, 자연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태어난 '축제'의 결과다. 생명을 만들어 내고 파괴하며 신을 흉내내기라도 하는 듯한 축제의 종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2024 화천산천어축제장을 보고 '똑같다'고 느낀 첫인상은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산천어축제는 이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산천어가 비닐 봉지에 담겨 있다. 축제장 밖에서는 비닐봉지에 담긴 물고기 장난감만 보아도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던 시민들이, 축제장에 들어가서는 동물학대에 가담하게 된다.
 산천어가 비닐 봉지에 담겨 있다. 축제장 밖에서는 비닐봉지에 담긴 물고기 장난감만 보아도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던 시민들이, 축제장에 들어가서는 동물학대에 가담하게 된다.
ⓒ 이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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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산천어, #화천, #화천군, #시셰퍼드코리아, #산천어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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