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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무기한 단식을 통해 지방분권을 이뤄냈지만 서울은 여전히 블랙홀처럼 인구를 빨아들인다. 학교도 병원도 문화공간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방의 문화공간은 지독한 가뭄을 겪고 있다.

수도권인 의정부 백영수 미술관 방명록 한 페이지가 모두 차는 데 수 개월이 걸릴진데, 전라남도 영암의 이안미술관은 말해 무엇하랴? 서울시립미술관 주최의 호퍼전에 물밀듯이 밀어닥치던 관객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장욱진 회고전의 인파에 견주면 더욱 극명하게 대조된다.

백 명이 한 번 읽는 책보다 한 명이 백 번 읽는 책이 더 가치롭듯 이안미술관에는 소수의 몇 명이 수 차례 찾는 지방의 미술관이다. 한 번 발길을 들인 관람객들은 입소문을 내면서 한 명씩, 두 명씩 끌어당겨 한적한 가운데 오롯이 작품 감상 속에 빠질 수 있게 해준다.
 
#이안미술관 전시
 #이안미술관 전시
ⓒ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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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김정희
ⓒ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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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맨드라미와 나팔꽃이다(나혜진 개인전 '그중의 너' 1월 27일까지). 원시의 빨강으로 빛나며 장독대를 지키는 맨드라미와 달항아리를 우주삼아 빛나는 나팔꽃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이안미술관은 현대인의 당구공같은 마주침을 허락하지 않는다. 방사선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로 단단히 묶는다. 때로는 오카리나 연주도 들려주고, 월출산 둘레길도 가이드해주면서, 작지만 알찬 문화적 체험으로 확장시킨다.

아무리 부자라도 신발을 두 켤레 겹쳐신을 수 없듯, 이 세상 모든 미술관을 전부 관람할 수는 없다. 지방은 지방대로 끈끈한 연대 속에서 내밀한 기쁨을 누리면서 이 공간을 향유할 수 있다. 문화적인 안빈낙도다.

서해랑길 철새도래지 영암호 인근에 위치한 이안미술관은 목포와 영암, 광주, 심지어 타 지역 사람까지 우정으로 잡아당겨 독특한 위상을 구축했다.

멀리서 보면 천문대처럼 보이는 신성한 이안미술관이 지방분권의 시대에 걸맞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남에 박수를 보낸다.

태그:#이안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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